[살며 사랑하며] 잠 못 드는 이에게 쓰는 편지

2024. 9. 13.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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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체 기세를 꺾을 줄 모르는 늦더위가 마냥 성가시다.

잠 못 이루고 서성이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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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좀체 기세를 꺾을 줄 모르는 늦더위가 마냥 성가시다. 늦은 밤. 뭔가 찾을 게 있는 사람처럼 거실을 서성거린다. 창밖에 자동차 불빛이 방사형으로 도로를 훑으며 지나간다. 텁텁한 입안을 헹구려 찬물을 한 잔 마신다. 이상스레 고적한 밤이다. 매미 소리도, 간간이 들리던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손으로 훑는다. 어떤 책은 힘이 세다. 덮어 두어도 반도네온처럼 활짝 펼쳐지려 한다. 책(冊)이라는 한자도 반도네온의 주름을 닮지 않았는가. 딴청 부리듯 시선을 거둬도 마치 “이봐요, 나 여기 있소! 언제쯤 나를 집어들 거요?” 하고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책장에서 전동균 시인의 시집 ‘한밤의 이마에 얹히는 손’을 꺼내 든다.

“빈집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을 사랑하였다/ 저문 연못에서 흘러나오는 흐릿한 기척들을 사랑하였다/ 땡볕 속을 타오르는 돌멩이, 그 화염의 무늬를 사랑하였다//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어/ 창틀에 낀 먼지, 깨진 유리 조각. 찢어진 신발, 세상에서 버려져/ 제 슬픔을 홀로 견디는 것들을 사랑하였다/ 나의 사랑은/ 부서진 새 둥지와 같아/ 내게로 오는 당신의 미소와 눈물을 담을 수 없었으니/ 나는/ 나의 후회를/ 내 눈동자를 스쳐 간 짧은 빛을 사랑하였다.”

당신도 ‘제 슬픔을 홀로 견디느라’ 푸르스름한 새벽을 맞이한 적이 있었는가. ‘나는 나의 후회를 사랑하였다’라니. 어떤 문장은 읽는 사람에게 발을 건다. 마음을 넘어뜨린다. 잠 못 이루고 서성이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후회를 뒤적이며, ‘부서진 새 둥지’ 같은 황폐한 자리를 더듬기 때문이다. 후회란 새가 떠난 새 둥지의 허전함을 들여다보는 일인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순명’은 얼마나 어렵고 큰 숙제인가. 후덥지근한 밤. 소나기라도 후련하게 내렸으면 좋겠다. 늦더위에 잠 못 드는 이에게 전하고 싶다. 앞서 소개한 시의 제목은 빗소리라고.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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