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내가 만든 집, 내가 찾은 가족

2024. 9. 13.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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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따뜻하게 받아주는 안도감
같이 살아서 좋다는 편안함
가족과 풍성한 추석 보내길

좋아하는 가사가 있다. ‘내가 만든 집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지난해 혜윰노트에서 언급한 적 있는 ‘요즘 대세’ 밴드 실리카겔의 노래 ‘NO PAIN’의 첫 가사다. 2022년 3월 노들섬에서 열린 단독 공연에서 이 곡을 처음 듣던 순간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곡이 좋기도 했지만 가사 첫 문장이 어떤 왜곡도 없이 들린 게 무엇보다 신기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건 실리카겔 음악에서는 사건에 가까운 일이다. 평범한 단어나 안정적인 주술 관계로 이루어진 가사는커녕 낮고 퍼지는 보컬 김한주의 가창마저도 굳이 노랫말을 전달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진 적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몇 년 사이 ‘NO PAIN’은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고, 이제는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고단한 삶을 위무하는 송가가 되었다. 아마 곡을 만든 사람들도 이 곡이 이렇게까지 큰 사랑을 받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노래가 이제 곧 활동 10주년을 앞둔 밴드의 대표곡이자 이들이 이끄는 ‘밴드 붐’의 상징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 가운데 노랫말이 가진 힘을 꼭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만든 집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뒤로 이어지는 ‘소외됐던 사람들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가 주는, 적어도 이곳만큼은 나를 내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따뜻하게 받아줄 것 같다는 체온 어린 안심. 잔뜩 낡고 지친 몸과 마음을 다음 가사인 ‘우리만의 따뜻한 불, 영원한 꿈, 영혼과 삶’이 감싸안는다. 이 곡을 소리 높여 함께 부르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내가 만든 집’이었다. 그 집 안에서는 누구나 평화롭고 평등했다.

이달 초 열린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밴드 허클베리핀을 만났다. 음원 사이트 댓글을 보면 래퍼 허클베리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아져 조금 속상하지만 그런 속상함 따위 허허 웃으며 넘길 수 있는 활동 27년 차를 맞이한 관록의 밴드다. 1997년 처음 결성됐고, 긴 세월만큼이나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지금은 기타와 보컬을 담당하는 원년 멤버 이기용을 중심으로 보컬 이소영, 신시사이저, 드럼, 프로그래밍 등을 담당하는 성장규를 포함하는 3인조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만난 건 보컬 이소영이 직접 감독한 다큐멘터리 ‘더 리프(The Riff)’의 상영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드문 1세대 밴드이자 한국대중음악상을 비롯해 음악적 완성도와 깊이를 중심에 둔 각종 지면이나 시상식의 단골인 이들로 조금 더 과시해도 좋으련만, 60분이 조금 넘는 시간에는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밴드 허클베리핀의 현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더 리프’는 깨끗하게 씻고 나온 밴드 허클베리핀의 오늘 자 민낯이었다. 공연을 준비하며 작업실에 직접 조명을 달고, ‘우리 음악을 전보다 사람들이 안 듣지 않냐’는 말을 멤버들과 있는 그대로 건조하게 나눈다. 그럼에도 밴드를 계속 유지하려는 이유를 어떻게든 찾아보려는 순간, 보컬 이소영이 말한다.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이 사람들과 조금 더 살아봐도 좋겠다’고. 영화 상영이 끝난 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그 말이 마치 ‘내가 찾은 가족’을 품는 말 같았다고 하자 그는 ‘크게 틀린 말 같지 않다’며 쑥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밖에서 가족 이야기를 할 때 여느 사람들이 짓는 그런 표정이었다.

사람은 살아가며 끊임없이 내 집, 내 가족에 대해 생각한다. 요즘처럼 명절이 가까워지는 시기가 되면 상념은 더욱 뚜렷해진다. 마음을 기대는 범위가 넓을수록 아픔의 크기도 커질 수밖에 없는 관계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니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내가 만든 집’ ‘내가 찾은 가족’ 안에서 더 마음을 기대고 덜 아플 수 있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이번 명절에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누구와 있든 더 많은 이들이 내가 만든 집, 내가 찾은 가족과 풍성한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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