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헴프 대마, 안동포에서 의약품 원료까지

2024. 9. 13.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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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자 KAIST 이사장·전 환경부장관

인공지능(AI)이 인터넷처럼 세상을 바꿀 것이라며 반도체 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안동포(安東布) 삼베 원료인 헴프(hemp) 관련 칼럼을 쓰는 이유는 사정이 다급하기 때문이다. ‘경북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 사업’ 덕분에 스타트업(네오켄바이오)이 KIST의 특허기술로 2021년에 고순도 CBD(Cannabidiol) 추출에 성공했다는 보도가 나왔다(중앙일보 8월 2일자 24, 25면). 2020년 경북 안동과 경산 일대 6개 지역에 의약품 원료 제조와 수출을 위해 산업용 헴프의 재배를 허용하는 등 규제를 풀어준 결실인데, 이 사업은 오는 11월 30일 종료된다.

「 환각 대마류는 엄격 관리 대상이나
헴프서 추출한 CBD는 산업용 원료
CBD 제품 글로벌 시장규모 급신장
CBD 합법화 위한 규제혁신 필요

청년 스마트팜 기업 상상텃밭은 경북 안동 '경북산업용헴프규제자유특구'에서 첨단 농법으로 산업, 의료용 대마를 재배하고 있다. 상상텃밭 헴프 재배동의 외부 모습. 김성룡 기자

CBD는 시장 규모 4억6000만 달러의 뇌전증 치료약 에피디올렉스(Epidiolex) 원료다. 하루빨리 관련법과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개정, ‘산업용대마육성및안전관리에관한법률’ 제정을 서둘러야 할 때다. 규제를 선진 수준으로 맞춰 GMP(제조품질관리기준) 설비를 구축해야 의약품 원료급 CBD의 제조판매, 수출의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이런저런 마약 기사가 잇따르고 있다. 청소년 대상의 마약 음료 사건이 발생하고 마약 사범이 크게 늘고 있어 마약류의 엄격한 통제 관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한편으로 마약관리법 개정으로 산업용 헴프에서 CBD를 얻어 의약품 원료 등으로 활용하는 일도 미룰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마약과 마약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마약 성분이 들어있는 식물로는 양귀비(아편), 코카나무, 카나비스(cannabis sativa) 등이 있다. 양귀비에서는 모르핀, 코카나무에서는 코카인이 추출된다. 카나비스(학명)라는 대마초 식물군에서는 THC(Tetrahydrocannabinol)가 추출된다. 이 세 가지는 모두 환각성과 중독성이 있다. 그런데 카나비스에서 THC 함량이 0.3% 이하인 품종은 산업용 헴프이고, 0.3% 이상인 환각대마가 마리화나(Marijuana)다.

CBD와 THC의 차이를 처음 밝혀낸 것은 1964년 이스라엘 생화학자 메쿠람(Raphael Mechoulam)의 연구진이었다. 그는 카나비스에서 THC를 분리해내고, 가족과 친지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그 결과 향정신성이며 개인차가 크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또한 카나비스에서 CBD를 분리해내고, THC와는 전혀 다르게 향정신성과 중독성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90년대 이후에는 CBD가 뇌의 카나비노이드 수용체에 작용해 통증·염증·불안·불면 등을 조절한다는 메커니즘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규제 완화와 산업화로 의료용 대마 시장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가운데 국내 의료용 대마 연구가 2022년 결실을 맺었다. 사진은 농촌진흥청이 육성한 (좌) 의료성분인 ‘칸나비디올(CBD)’ 와 (우) 도취(중독)성분인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 농촌진흥청


미국은 최대 CBD 시장으로 2018년 농업법으로 연방 차원에서 CBD 사용을 합법화했다. 카나비스는 THC 함량이 0.3% 이하, 즉 헴프인 경우에 한해 재배와 판매가 가능하도록 했다. 의료용 카나비스를 합법화한 나라는 57개국이다. 의료용이나 일반용에 CBD 사용을 합법화한 나라도 50여 개국이다(Kana Wonders). 핵심 규제는 CBD에 섞여 있는 THC 함량 기준이다. 일본은 THC 0%이고, 대부분 국가는 0.2%~0.3%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우리나라 마약류관리법은 대마초의 재배·판매·소지·사용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환각성과 중독성이 없다고 밝혀진 순수 CBD도 헴프 대마에서 추출된다는 이유로 어떤 형태로도 사용할 수가 없다. 과학자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CBD 연구를 하기가 어렵고, 연구 자체를 꺼리게 된다. 특구사업으로 추출한 CBD도 상용화할 수가 없다.

CBD는 화장품·식품·음료·보충제·의료용 원료로 널리 쓰이고 있다. 2024년 CBD 제품 시장은 213억 달러, 2032년에는 최고 2024억 달러로 예상된다(Global Market Insights Inc.). CBD 함유 화장품 시장은 2023년 19억 달러에서 2032년 126억 달러로 전망된다(Fortune Business Insights).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소비 성향이 천연소재와 오가닉 제품 선호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써본 경험담으로는 CBD 화장품을 바르면 잠이 쏟아진다고 한다. CBD의 모발 성장효과 연구에서는 안드로겐성 남성 탈모환자 대상으로 하루 3~4mg CBD 함유 제제를 6개월 사용한 결과 모발 개수가 평균 93.5% 증가했다(G. L. Smith et al. Cannabis, 2021.4).

네오켄바이오 함정엽(왼쪽), 김정국 사장이 7월 25일 경북 안동 임하면에 위치한 의료용 대마 재배 시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CBD 웰빙 산업은 규제 변화로 급성장하고 있다. 2018년 우리 정부가 의료용 대마 수입을 일부 허용하고 엄격한 규제 아래 간질 등 치료에 쓸 수 있게 한 것은 진일보한 조치다. 이제 헴프 규제자유특구사업 종료를 계기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할 때다. 마약으로 오해받고 있는 CBD를 합법화하려면 사회적 합의도 중요하다. 선진국에서 축적된 과학적 성과를 확인하고, CBD 안전성과 효능에 대한 과학연구를 활성화하고, 규제 차이에 대한 국제 표준화를 논의하는 등 기반 구축에 나서야 할 때다. 불면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웰빙을 돕고, 농업을 살리고, 바이오 신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규제혁신이 절실하다.

김명자 KAIST 이사장·전 환경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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