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이 제일 쉬운 나라 [강주안의 시시각각]

강주안 2024. 9. 13.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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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안 논설위원

탄핵은 최후의 보루다. 헌법 조문을 보면 그렇다. 탄핵소추 요건 등을 규정한 헌법 65조 1, 2항은 무난하다. ‘탄핵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 행사가 정지된다’는 3항이 무섭다. 최상위법인 헌법에서 공직자 직무 정지를 명기했다. 국회 의결만으로 해당 공무원을 무력화하는 조항이다. 탄핵소추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 절제된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무게가 실렸다.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첫 의결이었으니 오랜 세월 국회가 품고만 있었던 칼이다.
22대 국회에만 탄핵소추안이 7번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했다. 타깃이 된 공직자는 곧바로 직무가 정지됐다. 지난달 29일 헌법재판관 전원 일치로 기각 결정을 받을 때까지 272일간 업무에서 배제된 이정섭 검사가 대표 사례다.
탄핵소추의 엄밀성은 역시 헌재 소관인 권한쟁의심판과 비교하면 두드러진다. 2022년 5월 국회는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한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에 대해 ‘30일 출석정지 징계안’을 의결했다. 그러나 징계안은 곧바로 힘을 잃었다. 김 의원이 헌재에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내면서다. 헌재는 헌법재판소법 65조에 따라 신청을 인용했다. 30일 출석정지도 가처분 판단을 받는데, 장기간 직무를 못하는 공직자의 불이익은 구제 여지가 없다. 직무 정지를 헌법에 못 박았기 때문이다. 헌재법을 비롯한 그 어떤 법률로도 헌법을 거스르지 못한다.


의회 신뢰 바탕으로 한 탄핵 제도


우리는 공직자 직무정지 수단으로


이 검사의 기각 결정문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후배 검사에게 지시해 일반인 전과를 알아봤다는 ‘범죄경력조회 무단 열람’은 일시가 전혀 기재돼 있지 않았다. 처가가 운영하는 골프장을 선후배 검사가 이용하게 했다는 의혹은 “편의를 받았다는 검사”가 누군지 안 나왔다고 한다. 재판관 전원 일치 기각이 아니라면 이상했을 정도다. 수원지검 차장검사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 사건을 맡았던 이 검사는 혐의를 벗고서도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탄핵 제도의 모델인 미국이 의회에 탄핵 전권을 부여한 이유에 대해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은 “미국 헌법의 기초자들은 의회를 신뢰했다”고 설명한다(『헌법의 자리』). “토론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을 유지하리라고 믿었다”는 대목에서 우리의 탄핵이 정상의 궤를 벗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야당 18건 발의 남용에 희화화


윤석열 정부 들어서만 18건 발의된 탄핵소추안은 공무원 압박 수단으로 전락했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어제 탄핵소추 권한 남용 금지 특별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이 과반 의석인 상황에서 허망한 시도다. 그렇다고 탄핵 남용을 무작정 방치해야 할까.
부산지방법원장을 지낸 강민구 변호사는 “공직자에 대한 탄핵심판을 패스트트랙으로 운용 안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블로그에 적었다. 그러면서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앨 고어와 조지 부시 후보 간의 법적 분쟁을 연방 대법원에서 신속히 종결한 사례를 제시했다. 승부를 가른 플로리다주 투표 결과를 두고 양측이 대립하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헌법재판소’라 불리는 미 연방 대법원은 한 달 만에 논란을 종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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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법상 탄핵심판은 180일 이내에 종결해야 한다. 그러나 이정섭 검사 사례에서 보듯 심리는 길어진다. 더욱이 다음 달 임기가 끝나는 국회 추천 재판관 3명의 후임 임명 절차를 야당이 지연시키리란 예상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6명의 재판관만 남아, 7명 이상이 요건인 심리가 중단된다. 재판관 7명이 안 되는 기간은 180일에서도 제외한다. 직무 정지가 마냥 길어지리란 우려가 나온다.
의회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탄생한 탄핵심판 제도가 21·22대 국회를 거치며 급속히 희화화됐다. 헌재가 해결책을 찾아야 할 과제다. 민주당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을 취임 이틀 만에 탄핵소추할 정도로 진화하는데 답을 줄 헌재는 제자리걸음이다. 한국이 단순한 징계나 사법 절차보다도 ‘탄핵이 제일 쉬운 나라’가 돼가고 있다.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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