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통일 독트린’이 생명력 얻어 실행되려면
가을 수확을 앞두고 풍년을 기원하는 한가위는 한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그런데 설렘으로 맞아야 할 이번 추석이 어느 해보다 가슴 아픈 이유가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두 민족 두 국가’ 방침에 근거해 통일 자체를 부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북한이 괴상한 논리를 들고 나오며 남북한이 동족이란 사실조차 부정하는 듣도 보도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최근 북한은 일본에 거주하는 친북 조선총련에 지령을 보내 남북한·평화통일·한민족 등이 담긴 활동이나 교육을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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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적 통일의지 계속 표명하고
인도적 지원, 정경분리 확실히
‘주민 변화로 북 변화’ 추진해야
」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남북한 모든 동포를 대상으로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했다. 김정은 정권과 정반대다. 통일 독트린의 핵심은 ‘3대 통일 전략’에 있다. 특히 ‘북한 주민 역할 강조’가 과거 정부와 크게 다르다. 의도적·강압적 흡수가 아니다. 남북 동포가 자유롭고 평화적인 과정을 거쳐 지향하는 체제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평화통일을 하자는 것이다. 북한 동포가 함께 만드는 ‘민족 자결권’에 기초한 통일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의 핵심이다.
김정은 정권이 남북의 동족성을 부정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족자결권 행사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의도다. 통일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통일을 결정할 수 있는 북한 동포의 권리를 박탈하려는 것이다. 동시에 북한은 통일에 관해 한국이 민족자결권 행사를 주장할 당위성을 없애려 하고 있다. 한국이 국제사회를 향해 북한 동포에 민족자결권 행사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할 근거를 원천적으로 박탈하려는 것이 북한의 의도다.
김정은 정권이 뭐라고 궤변을 늘어놓더라도 한민족이 동족이란 사실은 변할 수 없다. 윤 대통령과 정부는 한반도에 사는 남북한 모든 주민이 같은 민족이고 동포이며, 통일은 민족자결권 행사에 따른 민족공동체통일임을 더 강력하게 표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통일에 대한 ‘북한 주민의 역할’을 북한 주민이 주저할 수 있으며, 통일의 당위성과 명분에 대한 국제사회의 적극적 지지를 얻기 어렵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윤 대통령이 통일 독트린을 제시하면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언급하지 않았고 ‘민족’이란 표현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은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은 북한 주민의 눈과 귀를 열어 자유민주적 평화통일로 향하도록 변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인권, 접촉과 교류, 인도적 지원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인권 문제의 경우 김정은 정권은 남북한 관계 개선에 초점을 두는 좌파가 정권을 잡으면 인권 목소리가 사그라들 것으로 보기에 윤석열 정부의 인권 제기에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접촉과 교류협력이 막힌 와중에 북한 주민의 정보 접근권 확대는 비대면의 일방적 주입식 정보 공세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북한 주민이 외부 정보를 직접 보고 듣고 느껴 스스로 변화를 요구하는 자발성과 거리가 있다.
인도적 지원은 정부가 정·경 분리를 확실히 선언하고, 민간단체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실행하게 하면 김정은 정권이 받아들일 여지도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와중에 한국 정부가 완전히 손 놓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모두 한계가 있으나 ‘북한 주민 변화를 통한 북한 변화’란 의지를 갖고 멈추지 말아야 한다. 윤 대통령이 실무적인 ‘남북대화 협의체’를 제안한 것은 옳은 방향이다. 김정은 정권의 호응 여부와 무관하게 어떤 상황에서도 손은 항상 내밀고 있어야 한다. 평화적 관계 형성 제안을 선점하고 지속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북한 당국도 민족공동체 통일에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도 있다.
윤 대통령이 헌법에 입각한 통일 의지를 강력히 표명한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다운 모습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헌법적 통일 의지를 일관되게, 지속해서, 육성으로,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북한 주민에 대단히 큰 무게로 다가갈 수 있다.
정부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해 대한민국 대통령의 의지를 북한 주민에게 전해야 한다. 지금처럼 닫혀 있는 남북 상황에서도 윤석열 정부가 과거 정권과 달리 북한 주민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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