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의 시선]로또 청약 대신 주거 사다리를
요즘 분양하는 강남권 아파트 단지엔 ‘로또 청약’이라는 말이 붙는다. 경쟁률이 높지만, 당첨만 되면 수억원의 시세 차익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무주택 기간과 청약통장 가입 기간, 부양가족 수를 합산하는 가점제 청약 결과를 보면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다.
보통 무주택과 통장 가입 기간이 각각 15년을 넘는 3인 가구의 최고점이 64점이다. 부양가족당 5점씩 더해져 7인 기구 이상일 때 만점인 84점을 받는다. 지난 7월 분양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펜타스에서는 만점 당첨자가 나왔다. 전용면적 84㎡ 이하 당첨자의 최저 가점은 72점이었다. 최고 69점을 받는 4인 가구는 다 떨어졌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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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점제로 장기 무주택 양산
여력 있는 가구 집 사게 해야
자가 소유 늘어야 시장 안정
」
대출 규제 등으로 20억원 전후의 강남권 분양 아파트에 청약하려면 대략 분양가의 50~60% 정도를 자기 자금을 갖고 있어야 한다. 물론 당첨자는 오랜 기간 청약제도에 맞게 준비하고 기다린 결실을 본 것이다. 다만 자기 자금이 있고 부양가족이 많은 가구가 장기간 무주택으로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과연 바람직한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현 청약 제도엔 모두가 불만이다. 무주택과 부양가족 가점 때문에 청년층이 불리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투기과열지구의 84㎡ 이하 아파트에 추첨제를 도입했다. 가점이 높은 40~50대의 불만이 커지니 대신 84㎡ 초과 주택에 가점제 비율을 높였다. 하지만 원래 대형 아파트는 1주택자를 포함한 추첨제 물량이 많았던 곳이다. 집을 늘려가려는 교체 수요를 맞춰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이런 땜질 처방으로 청약 제도는 누더기가 되고 말았다. 더는 안정적인 내 집 마련 기회를 주지도 못한다. 로또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됐다. 이는 청약 제도의 도입 취지와도 맞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특정인만 혜택을 보는 로또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주거 사다리를 마련해야 한다.
대원칙은 여력이 있는 가구의 자가 소유를 촉진하는 것이 돼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소득 분위별 자가 보유율 통계를 보자. 소득이 많은 상위 20%(5분위)의 주택 소유율(2019년)은 미국 90.7%, 일본 85.2%인데 반해 한국은 77.7%에 그친다. 주요 선진국 중에선 독일(2017년)이 69.8%로 자가 보유율이 우리보다 낮다.
자가 소유자는 주택을 살 때 취득세를 내고 보유 기간 재산세를 납부한다. 납세를 통해 지방자치단체 살림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는 점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적정 수준의 대출을 받고 실거주를 하면 집값이 급등락하더라도 주거 안정에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전세는 다르다. 하락기엔 깡통 전세와 전세 사기, 상승기엔 전세난과 함께 갭투자를 불러일으킨다. 앞으로는 전세에 대한 의존을 줄여가야 한다.
정부는 지난 8·8 부동산 대책에서 빌라 등 비(非)아파트 구매자가 청약할 때 무주택으로 인정하는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면적은 60㎡ 이하에서 85㎡ 이하로, 공시가격은 수도권 1억6000만원·지방 1억원에서 수도권 5억원·지방 3억원으로 바꾼다. 이 조치로 아파트 선호도가 떨어질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무주택 자격 때문에 빌라나 단독주택 구매를 주저하는 가구는 줄일 수 있다. 서울은 기준을 더 완화해야 한다.
청약이나 대출 제도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청약제도는 유예 기간을 두면서 가점제를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청약이 끝나면 가점자 분포 자료도 공개해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가점제로 당첨 가능성이 없는데 여기에 계속 매달리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과도하게 늘어난 전세 대출은 점차 줄여야 한다. 대신 실거주 목적의 1주택 구매를 위한 대출 규제는 완화해야 한다. 생애 최초 구입 뿐만 아니라 국민주택 규모 내에서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는 것에 대한 정책 지원도 해야 한다. 그래야 주거 사다리가 만들어진다. 나아가 1가구 1주택의 양도세 비과세 혜택과 장기보유 특별공제(총 80% 중 보유 40%, 거주 40%)도 보유보다는 실거주에 혜택을 더 줘야 한다.
최근 서울 집값이 들썩거리자 금융당국은 대출 조이기에 나섰고 은행들은 1주택자의 대출까지 막아 논란이 됐다. 확고한 기본 원칙이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갭투자를 차단하더라도 실거주 목적의 1주택 대출까지 규제하는 것은 과도하다. 이런 정책 널뛰기가 불안감을 부추긴다. 자가 소유 촉진이라는 대원칙하에 흔들림 없는 정책을 지속해야 주택 수요자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김원배 논설위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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