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 꾸덕한 막걸리…‘프막’의 정석 [인터뷰]
해창주조는 오 대표 부부를 비롯해 12명 남짓한 직원이 일하고 있는 작은 양조장이다. 하지만 그가 갖는 존재감만은 결코 작지 않다. 오 대표 인수 이후 해창막걸리는 극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프리미엄 막걸리의 표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애주가 머릿속에 해창이라는 브랜드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현재는 연매출 100억원을 훌쩍 넘는 알짜 주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해창막걸리는 정용진 신세계 회장, 허영만 화백 등 여러 셀럽이 앞다퉈 ‘인생 막걸리’로 꼽을 정도로 마니아가 많은 막걸리기도 하다. 2020년에는 출고가 기준 11만원짜리 ‘해창 18도’를 선보이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Q. 해창주조장 인수 배경이 궁금하다.
A. 과거에는 막걸리와 전통주를 좋아하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특히 해창막걸리를 너무 좋아했다. 온라인 구매가 자리 잡지 않았던 2000년대부터 해창막걸리를 날마다 택배로 박스째 시켜 마실 정도였다. 그러던 중 경영난에 빠진 해창주조 전 주인 어르신으로부터 “양조장을 접어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뛰어난 막걸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아쉬움, 또 경쟁력 있는 우리술을 직접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함께 피어올랐다.
Q. 해창 인수 이후 성장을 거듭해왔다.
A. ‘달라야 산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기존 막걸리 시장에 굳어진 인식과 달리 ‘맛있고 식감도 좋으면서 건강한 우리술을 만들어보자’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술인데 1달러도 안 되는 저품질 막걸리를 계속 선보이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인수 초반 적자가 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연구소를 세우고 연구개발(R&D)에 계속 투자했다. 진심이 통했는지 다행히 소비자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Q. 현재 해창막걸리 판매 라인업을 소개해준다면.
A. 6도·9도·12도짜리 제품을 먼저 선보였다. 이후 고도수 막걸리를 원하는 수요를 확인하고 18도와 15도를 순차적으로 내놨다. 제품마다 3도 정도는 격차를 둬야 맛과 향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고 봤다. 해창 성공 이후 이제는 다른 양조장에서도 6도·9도·12도 구성을 기본으로 한다. 한발 앞서 업계 표준을 제시했다는 데 자부심이 있다.
출고가 11만원짜리 ‘해창 18도’는 남과 비슷하면 안 된다는 나름의 생존 전략을 갖고 내놓은 제품이다. 최고급 막걸리를 선물하고자 하는 이들을 겨냥해 만들었다. 병 라벨에 아예 ‘출고가 11만원’이라는 문구를 박아 넣었다. 그래야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해창 18도는 세 번 빚는 삼양주인 해창 12도에 덧술을 한 번 더해 빚은 ‘사양주’다. 현재는 1년에 4번만 생산한다. 선물 수요가 많은 설과 추석, 가정의 달인 5월, 그리고 연말에 3000병 한정으로 만든다. 증산 요구가 많지만 품질과 희소성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A. 처음부터 3가지를 생각하고 만들었다. 첫째는 뛰어난 원재료다. 해남에서 나는 최고급 쌀과 국산 누룩을 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연구 노력 끝에 유기농 찹쌀과 멥쌀을 8 대 2로 섞는 자체 레시피를 개발했다. 둘째는 무감미료다. 아스파탐 같은 단맛을 내는 화학 첨가물을 일체 넣지 않는다. 대신 원재료를 아끼지 않는 방법으로 단맛을 극대화했다. 마지막으로 가성비다. 해창 6도 기준 투입한 재료 대비 출고가를 5000원으로 저렴하게 낮춰 잡았고 용량은 900㎖로 키웠다. 흔히 접하는 막걸리 용량인 500㎖보다 2배 가까이 많다. 한국인의 넉넉한 인심을 보여주고 싶었다.
Q. 해창막걸리 하면 특유의 단맛과 걸쭉한 질감이 먼저 떠오른다.
A. ‘물 타지 않는다’가 핵심이다. 해창은 고온 발효 대신 저온 숙성·발효를 거친다. 고온 발효는 3~4일이면 빠르게 도수를 올릴 수 있지만 이후 물을 타면서 질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저온 숙성은 두 달 넘는 기간 동안 발효를 거치는 과정에서 단맛을 올리고 걸쭉한 식감을 확보할 수 있다. 같은 재료를 넣는다고 가정하면 고온 발효로 100을 만들 때 저온 숙성 생산량은 60밖에 안 된다.
주력인 해창 12도는 사실상 거의 물을 타지 않는다. 술을 이동시키기 위한 펌프를 사용할 때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소량의 물을 제외하면 억지로 타는 물이 없다. 발효 원주 상태 그대로 병입이 된다. 그러다 보니 꾸덕꾸덕한 질감과 단맛이 그대로 유지된다.
이 또한 차별화 고민에서 이어진 결과물이다. 맑은 막걸리는 시중에 워낙 많다. 생산 과정에서 조금 손해를 볼지라도 맛있고 남다른 술을 내놔야 소비자가 감동한다는 것이 해창의 철학이다.
A. 해창막걸리는 확실히 달고 진하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맛이다. 과하다고 생각하면 생수나 얼음을 넣어서 먹어도 좋다. 시판하는 대중 막걸리를 섞어 먹는 것도 방법이다. 물을 타는 것보다는 확실히 막걸리 향이 더 생생히 살아난다. ‘꼭 해창만 먹어라’ 고집하지는 않는다. 결국 주류 문화는 소비자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Q. 프리미엄 막걸리 시장 전망, 어떻게 보는지.
A. 프리미엄 막걸리는 가격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고 본다. 화학 첨가물을 넣지 않고 고유한 재료와 맛으로 시장에서 승부할 수 있는 품질이라면 2000원짜리 막걸리도 충분히 프리미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아직은 고객 충성도가 높은 브랜드가 부족해 보인다. 일반 맛집은 아무리 멀고 교통이 불편해도 1시간 넘게 차로 달려 찾아간다. 역사를 쌓고 자기만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 양조장이라면 막걸리 시장에도 앞으로 똑같은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본다. 최근 젊은 양조자가 늘어나면서 프리미엄 막걸리도 다양해지고 있는데 좋은 현상이다. 옥석 가리기를 통해 프리미엄 막걸리 시장이 성숙할 것으로 생각한다.
Q. 올해 사업 목표가 있다면.
A. 증류식 소주 신제품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이름은 ‘해창 대장경’이라고 지었다. 증류식 소주 유래와 역사를 다시 되새기자는 의미다. 증류식 소주는 고려시대 몽골군에 의해 전파됐다. 몽골군이 주로 주둔하던 안동과 개성, 제주도에서 증류주 역사가 시작된 것도 여기 맞닿아 있다. 유통기한이 짧아 수출이 어려운 막걸리보다는 세계화에 더 알맞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대장경은 25도·35도·45도·60도에 이어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82도 증류주까지 다양하게 선보일 예정이다. 기존 해창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고급화에 신경을 쓸 예정이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6호 (2024.09.11~2024.09.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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