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상품” vs “정식 스포츠 채택”… ‘게임이용장애’ 두고 찬·반 논쟁
이해국 가톨릭대 교수 “게임질병코드, 중독 예방 최소 장치”
반대측 “등재 근거 불충분”
‘게임이용장애’의 국내 도입 여부를 따져보는 사상 첫 토론전에서 의료계와 게임계가 각축전을 벌였다. 도입 찬성 측은 “정신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반대 측은 “산업적 악영향과 낙인 효과가 우려된다”고 반박했다.
더불어민주당 강유정·임광현·서영석·전진숙 의원실은 12일 여의도에 있는 FKI타워에서 ‘세계보건기구(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 문제 공청회’를 개최했다. 현장에는 게임이용장애 관계부처와 찬·반 양측 대표 전문가들이 자리해 의견을 피력했다.
WHO는 2019년 5월 국제질병분류(ICD)에 정신적·행동적·신경발달적 장애의 하위 목록으로 게임이용장애를 등재했다. 이에 정부는 이듬해 국무조정실 2019년 국무조정실에서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한국질병분류코드(KCD)에 게임질병코드를 올릴지를 연구 중이다.
도입 찬성 관점인 이해국 카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질병코드 도입이 디지털 미디어 중독에 도움을 줄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면서 “게임은 일반적인 상품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약간은 위험할 수도 있는 상품”이라면서 “게임 중독은 게임 자체가 아닌 게임을 이용하는 사람의 패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게임이 위험한 상품인 만큼 공공과 시민사회 개입이 필요하다. (공청회를 연) 더불어민주당이 누구와 함께하는 게 당의 가치에 들어맞는지 여쭙고 싶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 교수는 “게임과 디지털미디어의 과사용에 따라 공중 보건 질병 치료 체계가 나서야 할 때가 있는데 지금의 애매한 포지션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현재의 의학계와 게임업계를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유하면서 “게임이용장애 등재를 반대하는 스펙트럼은 넓다. 게임 산업을 옹호하고 산업을 사랑하는 쪽은 운동장의 위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 반면 정신 건강 행동 보건 의료체계는 계속 골을 먹히는 쪽”이라고 언급했다.
아울러 “게임이용장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논의가 되어야 한다. 생산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토론장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도입 찬성 측인 이상규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게임이용장애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일각의 연구에 정면 반박했다.
이 교수는 “ICD-11 게임이용장애 등재 결정과 함께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치료 수요와 유관 연구들이 많이 증가했다”면서 “게임이용장애 연구자들은 기존의 병인학적 연구, 평가 및 개입전략 연구, 뇌 영상 연구 등 여러 주제로 연구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중국을 필두로 이뤄진 초기 연구와 달리 최근 영국, 미국 등 서양 국가 연구도 활발히 논의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WHO가 등재한 ICD-11의 게임이용장애가 엄격하고 보수적인 기준을 사용했기 때문에 게임 업계에서 우려하는 ‘중독자 프레임’이 일반화하지 않을 거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게임이용장애는 적어도 1년 이상 게임에 대한 조절력을 잃고 다른 일상 생활과 비교해 게임을 현저하게 우선 선택해야 한다. 게임의 과도한 사용이 계속될 때 진단하게 된다”면서 “단순히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게임 사용 패턴만으로는 진단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게임은 취약성을 지닌 이들이 접할 수 있는 잠재적 중독 대상 중 하나”라면서 “게임 외에도 여러 자극적 행동이 중독 대상으로 기능할 수 있으나, 공중보건 측면에서의 시급성이 크다 보니 병리적 도박 및 성행동과 함께 ICD-11에 등재된 것”이라고 밝혔다.
게임이용장애 국내 도입을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의 박건우 고려대 안암병원 뇌신경센터장은 건전한 게임 이용자가 부당한 평가를 받는 ‘낙인 효과’의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게임이용장애가 도박 장애가 같이 분류돼 있다. 의료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이 비슷해도 ‘게임이 도박과 비슷할 정도로 나쁜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아직도 사회는 낙인효과가 존재한다. 많은 청소년이 게임을 하는 건 비용, 시간 대비 가장 경제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게임이 최근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공식 스포츠로 포함됐다면서 “마약 먹기, 술 많이 먹기가 올림픽 대회로 들어간 사례를 본 적 있나”며 “분야별 게임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크기 때문에 게임이용장애의 진단 기준 설정이 공감을 끌어내기 어렵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박 교수는 “ICD-11의 진단기준은 생각보다 매우 복잡하다. 12개월이라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도입 시기와 진단 기준을 신중해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문석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학문적·사회적·정책적 합의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 교수는 “게임이용장애를 등재하는 과정, 절차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ICD를 그대로 수용해왔던 KCD 절차도 개선되어야 한다”면서 “WHO가 보건의료 분야에서 전문성이 있는 국제기구인 건 맞다. 다만 모든 활동 분야에서 절대적인 진리나 권위, 강제성을 갖추고 있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ICD는 권고 사항이다. 각국의 상황에 맞게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선 정부부처별 입장 발표도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임이용장애 도입이 민관협의체와 관련 학계 연구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봤다. 이영민 문체부 게임콘텐츠산업과장은 “게임이 중독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다수 존재한다”며 ”다른 여가 활동과 게임을 차별할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어서 “게임 과몰입은 다른 이유에 따른 결과지, 원인이 아니”라며 “국민의 62.9%가 즐기는 게임에 대한 낙인효과가 발생해 사회적 차별이 생길까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박현정 통계청 통계기준과장은 “내년 7월 예정된 KCD 9차 계정은 ICD-10으로, 현행 국제기준인 ICD-11은 차차기 개정인 KCD 10차에 반영될 예정”이라면서 도입되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다고 전했다.
김지윤 기자 merr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축협 노조 “정몽규, 4선 불출마해야…韓축구 떠나라”
- ‘28세 최성우’…아파트 단지서 70대 폭행 살해, 신상공개
- 뉴진스 ‘따돌림’ 폭로에 “노동부 수사 의뢰” 민원 등장
- 남친과 있던 20대女, 20층 추락사… 이웃 “고함 소리”
- 문다혜 “나는 아버지에게 칼 겨누기 위해 더럽혀져야할 말일뿐”
- ‘36주 낙태’ 집도의 따로 있었다…살인 혐의 추가 입건
- 손준호 “3700만원 받긴 했지만”…눈물의 회견에도 ‘의문’
- 불법 도박에 룸살롱 실황까지… 막가는 ‘유튜브 쇼츠’
- 해외여행 들떠있는데… 국내 여행은 ‘숙박쿠폰’ 재탕뿐
- 트럼프 ‘피부색’ 건드리자 듣던 해리스, 고개 절레절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