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피로에도 “환자 봅니다”…추석 앞둔 응급실 ‘초긴장’

이정헌 2024. 9. 12. 19: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1일 오후 3시쯤 원주·충주를 담당하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응급의학과 정우진(43·왼쪽) 교수와 노영일(43) 교수가 KTAS(응급환자 분류기준)에서 1등급으로 분류된 고령 환자의 CT 촬영 결과물을 보며 논의하고 있다. 원주=글·사진 이정헌 기자


지난 11일 오전 10시40분 강원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119구급대원과 간호사, 응급구조사 6명이 구급차 스트레처(들것)에 누운 70대 중증환자를 침대보째 들어 올려 응급실 침대로 옮겼다. 의식을 확인하려는 의료진에게 환자는 거친 숨만 내쉴 뿐 반응하지 않았다. 응급환자 분류기준(KTAS)에서 2등급(중증)으로 구분되는 ‘의식 저하’ 상태였다. 의료진은 환자가 누운 침대를 순식간에 둘러싼 뒤 응급소생실로 밀고 들어갔다.

환자 차트에서 간경화를 확인한 정우진(43) 응급의학과 교수는 “간 기능이 나빠져 의식이 저하되는 간성뇌증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의료진에게 혈중 암모니아 농도를 확인하기 위한 피검사를 지시하고, 출혈 확인을 위해 컴퓨터단층촬영(CT)과 엑스레이 촬영을 주문했다. 이후 보호자를 만나 환자가 의식이 떨어진 시점, 병력 등에 관해 물었다.

11일 오전 10시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내 권역응급의료센터와 권역외상센터 전경. 지난 2월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응급실에 남은 전문의 11명이 2~3명씩 당직 근무를 서면서 중증 환자 진료에 힘을 쏟고 있다. 원주=글·사진 이정헌 기자


강원도 내 최대 규모 상급종합병원인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은 원주·충주를 담당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와 권역외상센터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지난 2월 전공의 12명이 병원을 떠난 뒤 전문의 11명이 가까스로 24시간 응급실을 유지하고 있다. 전문의 1명과 전공의 4명이 맡던 당직근무도 전문의 2~3명이 돌아가며 맡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8시간가량 지켜본 응급실에선 복도에 줄지어 선 예비용 침대 8개가 쉴 새 없이 비워지고 채워지기를 반복했다.

10분이 채 지나지 않은 오전 10시48분. “배가 너무 아프다”는 40대 장염 환자가 응급실 밖 환자분류소에 축 처진 상태로 앉아 있었다. 정 교수는 통증 정도와 위치 등을 환자에게 물은 뒤 내과 진료를 권하면서 “경증은 응급실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잠시 응급환자가 없는 시간에도 의료진은 좀처럼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이날 오전 11시3분 도내 한 종합병원에서 발생한 심정지 환자의 이송이 결정되자 정 교수와 의료진 7명은 곧바로 비상대기에 들어갔다.

11일 오후 3시40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로 긴급 이송된 50대 중증 외상환자를 의료진이 모여 진단·처치하고 있다. 원주=글·사진 이정헌 기자


이날 오후 2시쯤 골프장 지붕에서 10m 아래로 추락해 경추 손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되는 50대 남성이 사고 발생 1시간 만에 응급실로 이송됐다. 응급의학과 노영일(43) 교수가 환자의 실시간 혈압을 확인하기 위한 동맥관 삽입을 하는 사이 정 교수는 환자 정보를 살피면서 병원 내 ‘트라우마 팀’(외상전담팀)을 호출했다. 호출한 지 2분 만에 도착한 신경외과, 외과 등 배후 진료과 전문의들은 응급처치와 동시에 적절한 치료 방법을 논의했다.

중환자 입원에 필요한 배후 병상 상황도 위태로워 보였다. 이날 병상 가동 현황을 보면 중환자 입원 치료를 위한 뇌졸중집중치료실, 심장혈관병실, 신경외과중환자실은 병상 가동률이 100%로 가득 차 있었다. 전체 32개 병상을 운영하던 응급실도 12개 병상에 더는 환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날 하루 오전 9시30부터 오후 6시까지 응급실에는 환자 17명이 인계됐고, 이 중 KTAS 1, 2로 분류되는 중증환자는 65%(11명)였다. 두 교수는 환자 서너 명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거의 동시에 하면서 수시로 상태를 살폈다. 응급실에 홀로 찾아온 60대 남성을 뇌졸중 환자로 판단해 신경과에 입원시켰고, 과다출혈로 실신한 30대 산부는 수혈 뒤 산부인과로 옮겼다. 박경혜(46)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실은 중증환자가 몰려드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운영된다. 하지만 인력이 전국적으로 줄어든 상황”이라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노 교수는 “의사들도 잦은 당직이 7개월째 이어지다 보니 피로가 극에 달한 상황”이라면서 “응급실 진찰 수가를 더 주면서 버텨 달라고 하는데, 잠이라도 좀 더 잘 수 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추석 연휴 기간에도 의료진은 응급실을 지킨다. 지난 설 연휴 기간 이 병원에는 100~120명의 응급환자가 찾아왔다. 올추석엔 예상 인원 200명 중 절반 밖에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정 교수는 “응급실에 오면 절반 가까이 입원해야 하지만 의료진이 돌볼 수 있는 병상은 한정된 상황”이라며 “지금 환자가 없어도 혹시 모를 중환자를 받아야 하니 경증환자는 돌려보내는 식으로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원주=글·사진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