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이러면 안 되죠" 고3 아이들의 탄식

서부원 2024. 9. 1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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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2천명 증원 탓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N수생들... 현재 고3들 직격탄

[서부원 기자]

▲ 응급실로 의대 증원과 관련해 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6일 대구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의료관계자들이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엉망진창'.

많이 이르긴 하지만, 해마다 연말이면 교수 신문이 선정해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이 네 글자가 제격이지 싶다.

대통령이 국회를 국정 운영의 장애물로 여기는 상황에서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민심의 매서운 심판을 받았는데도 아예 안중에 없는 듯 대통령은 '마이웨이'를 고집하고 있다. 야당과의 협치는커녕 집권 여당과의 당정 관계도 아슬아슬 담장 위를 걷는 형국이다.

거부권 남용으로 대표되는 대통령의 '반정치적' 행보는 모든 국가 기관을 '식물화'하고 있다. 말이 좋아 상호 견제지, 입법부와 사법부, 행정부가 사사건건 서로를 탓하느라 기능부전 상태에 빠져버렸다. 매우 심각한 상황임에도 해결이 요원한 건, 기능 마비의 근본적인 원인이 국가 원수로서 국정의 조정자가 되어야 할 대통령의 무능과 무지에 있기 때문이다.

'아프면 절대 안 되는 올 추석, 무사히 보내세요.'

추석 명절을 앞두고 도로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 글귀가 위태로운 의료 상황을 증명한다. 아이가 갑자기 고열이 나거나 교통사고라도 날라치면 낭패다. '응급실 뺑뺑이'를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중한 경우라면 119 헬기를 띄워 전국 곳곳의 병원을 찾아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마치 치킨 게임처럼 치닫는 정부와 의사 단체의 갈등으로 이미 '의료 붕괴'가 현실화하고 있다. 서로 수용할 수 없는 요구만 늘어놓는 상황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국민이 떠안고 있다. 주무 부처의 장관과 서둘러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집권 여당은 우왕좌왕 갈피조차 못 잡고 있다.

고작 추석 연휴 기간의 위기를 극복한답시고 내놓은 대책이 연휴 동안 응급실 진찰료를 한시적으로 대폭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거칠게 말해서, 연휴 동안 웬만큼 아파선 병원을 찾지 말라는 엄포다. 병원에 스스로 전화할 정도라면 경증 환자로 봐야 한다던 주무 부처 고위공직자 발언과 일맥상통한 조치다. 아울러, 의사들의 근무 수당을 올려주겠다는 건 전가의 보도다.

문제는 '의료 붕괴'가 더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당장 교육 현장에도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기존의 'N수생'들에다 명문대 공대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반수' 열풍이 불어닥치며 대학의 강의실까지 텅 비우게 만드는 양상이다. 그러잖아도 서울대 공대의 경우 '의치대 사관학교'라는 별칭이 생긴 터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산일까. 정시로 입학한 명문대 상경 계열 재학생들조차 신발 끈을 동여매고 있다. 심지어 로스쿨 재학생과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조차 올해 수능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마저 심심찮게 들린다. 수십만 수험생에 견준다면 2천 명 증원이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의치한약'을 '인생 로또'로 여기는 최상위권 아이들에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의대 증원 발표, 'N수생'의 폭발적인 증가

"수능 당일 컨디션만 좋다면, 한두 문제로 당락이 결정될 수도 있는 만큼 해볼 만한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돌아갈 학교가 있으니, 크게 부담되는 것도 아니고요."

얼마 전 수능 원서 접수일에 만난 '반수생' 제자의 말이다. 그들 중에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퇴로'를 끊어버린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휴학 대신 자퇴를 선택하고 수능을 준비하는 '간 큰' 친구도 여럿이라는 거다. 안 되면 내년에도 도전하게 될 것 같다는 그는 지금 겪는 몇 년의 고생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의치한약' 합격으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는 거다.

우리 학교의 경우, 올해 재학생 수능 응시자 수는 214명인데, 'N수생' 응시자 수가 무려 84명이다. 40%에 육박하는 수치다. <뉴시스> 등 보도에 따르면, 의대 정원 증원 이후 첫 수능에 'N수생' 18만여 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반수생'은 9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정부의 파격적인 2천 명 의대 증원 발표가 'N수생'의 폭발적인 증가를 가져왔고, 이는 삼척동자도 예상할 수 있었던 바다.

결국, 이번 사달은 애먼 고3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직격탄이 됐다. 특히 '의치한약'과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상위권 아이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다. 당장 대학이 요구하는 수능 최저 등급을 충족시키기가 여간 만만찮은 일이 됐다. 최상위권 'N수생' 등쌀에 상위 4%에 해당하는 1등급은 말할 것 없고, 11%까지인 2등급도 장담할 수 없어서다.
▲ 의대정원이 N수생에 미치는 영향은? 8월 25일 서울 한 학원가에 의대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날 종로학원은 2025년 수능 'N수생'이 의대 모집 확대로 2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재학생과 N수생의 수능, 모의고사 접수 상황 등을 통해 예측해본 결과 N수생을 17만7천849∼17만8천632명으로 추정했다.
ⓒ 연합뉴스
올해 대입에서는 재학생 중 학생부교과전형을 통과해도 수능 최저 등급을 맞추지 못해 최종 탈락하는 사례가 속출할 게 뻔하다. 영역별 상위 등급을 'N수생'들이 싹쓸이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원이 2천 명 늘었다고 해도, 올해 재학생 중에 '의치한약'에 합격하는 경우는 극소수일 걸로 예측하는 이유다.

수시 원서 접수 기간인 요즘 고3 교무실은 수험생과 담임교사의 한숨 소리로 가득하다.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진학하느냐 등의 진로 고민은 차라리 부차적인 문제다. 이미 내신 성적이 산출되었고, 생활기록부가 마무리되었는데도 학생부교과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 중 어떤 걸 선택해야 하는지 막막해 한다. 수능 최저 등급 조건 여부를 따져야 하는 탓이다.

대학과 학과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내신 성적을 반영하는 일반 전형과 지역 인재 전형 등 학생부교과전형은 수능 최저 등급 조건을 대부분 내걸고 있다. 반면, 내신 성적과 함께 비교과 활동을 중시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우는 수능 최저 등급 대신 면접 점수를 반영한다. 대학별로 등급 조건도 천차만별이지만, 수학과 탐구 등 특정 영역을 지정하는 학과도 많다.

평소 모의평가 등급이 1점대 초중반인 최상위권 아이도 실제 수능에서는 1점대를 장담할 수 없다. 지난 6월과 9월 모의평가 때는 현재 명문대 공대 등에 재학 중인 '반수생' 대다수가 응시하지 않았지만, 수능 날에는 '한 방'을 노리고 시험장을 찾을 게 분명하다. 그들에게 영역별 1등급을 내주고 나면, 정시는 물론, 수시에서조차 명문대 진학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1등급을 독식한 'N수생'들이 죄다 의대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2천 명 증원분만 채워지면, 재학 중인 학교로 되돌아가거나 내년에 재도전하게 될 테다. 그들에 밀려 수능 최저 등급을 못 맞춰 명문대 진학에 실패한 이들 역시 '분풀이하듯' 재수, 삼수를 감행하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과거 '고시 낭인'처럼 '수능 낭인'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요즘이다.

교사들마저 "올해 대입은 '복불복'"

"응시생의 절반이 'N수생'인 마당에, 대학별 수능 최저 등급이라도 하향된다면 좋겠어요. 그러잖아도 '의치한약'과 명문대에 진학하려면 'N수'가 필수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정부의 갑작스러운 2천 명 의대 증원 발표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됐죠."

아이의 말마따나, 어설픈 의대 증원 발표가 교육 현장마저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통령이 강조한 대로, 이해관계자의 반발이 불가피한 개혁일수록 신중하고도 치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의사 단체와의 협의와 여론 수렴을 위한 공청회는 기본이고, 의대 증원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대입 정책과 대학 교육, 사교육 창궐 등에 대한 대책 마련이 선행되었어야 한다.

그 흔한 회의록도 없고 산출 근거도 불분명할뿐더러 준비를 위한 유예 기간도 없이 2천 명 증원 계획을 덜컥 발표해 놓고, 부작용은 각자 알아서 하라는 식의 무책임에 아이들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재임 기간에 대입을 치르게 된 '세대의 원죄'라는 푸념까지 나온다. 교사들마저 올해 대입은 '복불복'이라고 하는 마당이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사족. 지난 9월 4일에 전국의 고3 수험생들이 수능 전 마지막 모의평가를 치렀다. 석 달 전에 치른 6월 모의평가 결과와 함께 개인별 대입 전략 수립에 무엇보다 중요한 자료였다. 그런데, 난이도가 극단적으로 널뛰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평가가 됐다. 교사들도, 아이들도 '멘붕'이 왔고, 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한 성토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아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 현실에 무지하고 무능하다 해도, 교육부와 교육과정평가원마저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지난 '킬러 문항' 소동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수능을 코앞에 두고 이렇게 엉망진창이었던 적이 또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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