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현장서 춤추는 여성 청소년, 그리고 김남주의 시
김남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딱 30년이 되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고 노래한 시인의 바람대로, 우리는 손을 잡고 함께 걸어 온 것일까.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김남주 정신이 필요하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 지금 여기에서 김남주가 다시 살아 서 있는 모습을 그려 본다. 24인의 문학인들과 활동가들이 2024년의 한국 사회를 짚어 보며,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양경언 기자]
▲ 영화 <빅토리> 스틸컷 |
ⓒ 마인드마크 |
내가 '예상치 못했다'는 표현을 쓰면서까지 놀랐던 건 영화가 파업 현장의 모습을 우리 일상의 한 풍경으로 자연스럽게 끌어오는 화법을 능숙하게 구사해서도, '투쟁하는 곳에서 민가가 아닌 대중가요로 춤을 췄던 일이 90년대 후반에도 있었던가' 하고 꼼꼼하게 고증을 시도하면서 영화를 보려 해서도 아니다. 그보다는 파업 한 가운데서 춤을 추던 여성 청소년들의 얼굴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 그이들이 춤을 너무나도 재밌어한다는 것, 진심 어린 그들의 순간을 내가 전부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아이들에게 행여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초조해하면서 동시에 그곳으로 걸음을 한 아이들이 기특하기도 하여 감동을 '어렵게' 받고 있는 어른들의 표정을 넘어서서, 쉽고 재밌게 춤을 추던 여성 청소년들이 만들어내는 기세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그래, 저곳에서는 저렇게 신나야 한다. 함께 있는 곳을 발판 삼아 맘껏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저렇게 만들어진 힘이 언젠가 저들을 지켜줄 것이다.
숨통 트이게 해준 김남주의 시
싸우는 곳에서 신나선 안 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2000년대 중반 무렵이었던 나의 대학 생활 중 상당수 날들은 연대 투쟁을 위한 거리 위에서 이어졌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현장에 찾아가 민가에 맞추어 춤을 추고 연대 발언을 하면서 힘을 나누는 방식을 우리는 '몸짓'이라 불렀다. 투쟁 대오 앞에 마련된 조그만 공터에 서면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분들과 눈높이가 동등해질 수 있었는데, 그곳이 좁든 넓든지 간에 그곳에 모인 이들과 평등한 높이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면 얼마든지 준비해 간 몸짓을 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구경꾼과 공연하는 자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여타의 화려한 무대에 비해 그곳이 '덜 형식적'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그만큼 절박하게 마련된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차도와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자리에서, 혹은 전투경찰의 방패에 촘촘히 둘러싸인 자리에서 울려 퍼지는 절박한 목소리에 맞추어 우리의 몸짓에도 엄숙함, 심각함, 처절함이 깃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몸짓 동아리의 일원으로 껑충 뛰어 오르기도 하고 손을 높이 찌르기도 하면서 하고자 하는 말을 몸으로 표현하는 일은 '재미있었다.' 전투경찰과의 마찰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긴장된 곳에서 이질적으로, 독특한 리듬과 동작으로 '할 말'을 하는 경험이 가능하다는 게 '흥미로웠다.' 나는 내가 느끼는 재미와 흥미가 그 자리의 엄숙함, 처절함을 해치는 것 같아 자꾸만 솟아나는 신명을 감춰야 한다고 여겼다. 심각한 표정을 좀처럼 바꾸려 들지 않았다. 내가 진심으로 느낀 '재미'가 행여 불경한 건 아닌지 고민했다.
그리고 그 무렵, 사회과학 서적이 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동아리방에서 '시 같은 것'을 끼적이고 문학책만을 들여다보던 내게 몸짓패 선배 ㅇ언니는 김남주의 유고시집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창작과비평사, 1995)을 건넸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나를 돌아보게 해'라는 메시지와 함께.
'싸우는 시'가 세상에 있다는 사실은 투쟁 현장에서 겪었던 신명을 감추려고만 들던 내게 숨통을 트이게 해주었다. 사방이 막혀있다고 느낄 때, 더 이상 변화할 것이 없다고 느낄 때, 그럴 때도 우리가 싸울 수 있는 방법은 여럿일 수 있다는 것, 다만 싸우는 과정 중에 우리 자신이 제대로 살아있어야만 가질 수 있는 또렷한 얼굴로 있으면 된다는 것을 시가 일러주었기 때문이다. ㅇ언니가 선물로 준, 시인이 작고한 뒤 출간된 시집에서 나는 시인이 오랜 감옥살이 중에 썼던 작품들에 특히 눈을 두곤 했다.
시인 김남주는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되고 1988년 12월 가석방조치로 출소될 때까지 십 년 가까이라는 긴 시간 동안을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감옥에서 쓰인 작품만 해도 360여 편에 이른다.
공포와 두려움에 질려 한없이 무기력해지기를, 자기 자신의 존재감이 희박해지기를 끊임없이 종용하는 그곳에서("적은 우리를 아주 없애버리고 싶었던 것이라오/...중략.../그래서 그들은 그대를 그런 곳에 처넣고/시름시름 앓다가 병사하거나 그냥/자연사하기를 바라고 있다오//...중략...//몸과 마음에서 긴장을 풀어놓지 마오/방심이야말로 최악의 적이라오/건강 만세!",-'건강 만세 1'부분, 염무웅·임홍배 엮음,<김남주 시전집>, 창작과비평사, 2014, 171~172면), 한 줄의 시를 그침 없이 써나가는 몸짓을 통해 급기야는 한 편의 시가 잉태되는 그 자체가 옥중투쟁일 수 있음을 ("노래하는 사람 따로 있고 노래를 위해/피를 흘리는 사람 따로 있는가/혁명은 해방은 자유는 피를 요구하고 있는데/왜 나는 나 자신을 거기에서 빼내려고 하는가/왜 나는 남의 피로 피를 노래하려고 하는가"-'아 나는 얼마나 보잘것없는 녀석인가' 부분, 같은 책, 138~139면) 증명했던 것이다.
이 시기 시인의 손끝에서는 "이마를 대면/섬뜩하기가 얼음장 같고/한낮의 햇살도 와서 닿으면/파랗게 식어버리는" "벽"('바보같이 바보같이 나는'부분, 같은 책, 140면), "생사람 죽어 살아야 하는" "무덤"('다시 그 방에 와서', 같은 책, 90면)과 같이 고여 있고 막혀 있고 변화 없는 것들이 자아내는 서늘한 인상의 시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매일같이 직면해야 하는 상황을 견디는 중임을 알리는 시어가 자주 태어났다. '편지'를 제목으로 삼았거나 편지 내용이 담긴 시들('편지 3','편지 4','유서' 등)이나, 옆방에 살고 있는 수인과 벽을 두드리며 주고받는 소리 신호를 통해 소통하는 사연이 담긴 시들('통방-추억을 위하여', '단식' 등)을 통해서는 자신이 있는 곳 바깥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잊지 않으려는 시인의 굳은 심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 시가 있다.
시를 써보겠다는 생각은/아예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이곳에서는/네 벽에 가득 찬 것은 어둠뿐인 이곳에서는/돼지처럼 넣어준 콩밥이나 받아먹고/신트림 구린 방귀나 풍기고 사는 이곳에서/시를 써보겠다는 욕심은 부리지 않기로 했습니다/시가 무슨 신성한 것이어서가 아닙니다/펜이 없고 종이가 없고 형편이 나빠서가 아닙니다/흙이 없기 때문입니다 노동이 없기 때문입니다/흙과 노동이 빚어낸 생활의 얼굴이 없기 때문입니다/밝음을 위한 무기 싸움이 없기 때문입니다//내 시의 기반은 대지입니다/대지를 발판으로 일어서서 그 위에/노동을 가하는 농부의 연장과 땀입니다/씨를 뿌리기 위한 바람과의 싸움입니다/뿌리를 내리기 위한 어둠과의 격투입니다/노동의 수확을 지키기 위한 거머리와 진드기와의 피투성이의 실랑이입니다/추위를 막기 위한 벽과의 싸움이고/불을 캐기 위한 굴속과의 숨바꼭질입니다/대지 노동 투쟁이 기반을 잃으면/내 팔의 힘은 깃털 하나 들어올릴 수 없습니다./이 발판이 없어지면 나는 힘센 자의 입김에도 쓰러지고 마는 허깨비입니다/내가 한 줄의 시를 쓸 수 있는 것은/가뭄을 이기는 저 농부들의 두레에 내가 낄 때입니다/그들과 더불어 내가 있고/그들과 더불어 내가 사고하고/그들과 더불어 내가 싸울 때/그때 나는 한 줄의 시가 됩니다
- 김남주, '편지 1'전문,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창작과비평사, 1995), 20~21면
이 시에 따르면 자신이 머무는 곳을 "어둠뿐"이라 느끼는 이에게 "시를 써보겠다는 생각"은 가당치도 않는다. "시가 무슨 신성한 것"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있는 곳을 일컬어 사방이 막혀있다고 여기느라 그곳을 채우는 것은 어둠만이 전부라고 믿는 이의 감각으로는 그이가 딛고 있는 "흙"도, 그이가 놓인 세상의 맥락을 이루는 "노동"도, 무엇보다 "흙과 노동이 빚어낸" "생활의 얼굴"의 존재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시는 흙과 노동과 생활의 얼굴로 쓰이는 것, 어둠이 등지고 선 자리에 "밝음"이 있음을 이해하고 그런 "밝음을 위한 무기"로 쓰이는 것.
▲ 김남주 시인 |
ⓒ 김남주기념사업회 |
나는 이 시에서 홀로 고립되어 있다는 공포와 적막함과 무기력과 다투면서 동시에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싸움의 대상이 벽 그 자체가 아님을 스스로 되새기는 시인의 투지를 읽는다. "추상적인 자유, 추상적인 정의, 추상적인 평화를 노래한 시의 무의미함"을 지우고('시인은 싸우는 사람', 맹문재 엮음,<김남주 산문전집>푸른사상, 2015, 462면) 그 위에 "생활의 얼굴"을 동력 삼아 "한 줄의 시"를 존재하게 만드는 시인의 숭고한 노동을 읽는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저 자신이 곧 "한 줄의 시"가 되어 구체적인 진실의 세계를 사수하는 시인의 고양(高揚)됨을 읽는다. 이 싸움을 신명이라 불러도 좋고, 절박한 표현이라 불러도 좋다. 제대로 살아있고자 분투하는 순간 가질 수 있는 또렷한 얼굴을 하고 우리 자신의 힘으로 "한 줄의 시"를 쓰고자 한다면, "한 줄의 시"가 된다면.
이 글은 여성 청소년들이 만들어내는 힘에 대한 얘기로 시작했지만 어쩌면 그녀들로부터 발견된, 지금 세상이 오래도록 잊으려했던 희망의 지구력을 키우는 방법에 대한 얘기를 꺼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그에 대해 오늘 우리는 김남주의 시를 다음과 같이 읽는다.
시는 어떻게 쓰이는가. 시를 쓰는 사람 자신이 한 줄의 시가 될 때, 아니, 한 줄의 시가 흙과 노동이 빚어낸 생활의 얼굴로부터 태어나 세상과 더불어 있기 위한 싸움의 도정에서 쓰인다는 것을 우리가 비로소 이해할 때, 한 줄의 시에 우리가 있음을 알 때. 그러니 이곳에서는 이렇게 신나야 한다. 함께 있는 곳을 발판 삼아 맘껏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힘이 언젠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양경언 문학평론가입니다. 공동주최 : 김남주기념사업회·한국작가회의·익천문화재단 길동무 후원 : 더숲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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