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점을 줄 수 없는 이상한 도시락집

임경화 2024. 9. 12.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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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도 음식도 대면으로 한 지 17년... 실수도 너그럽게 봐주는 단골 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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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화 기자]

며칠 전 내 생일 기념으로 가족들과 부페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딸 아이가 며칠 전 미리 예약한 덕분에 대기 없이 식당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주말이라 대기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자리를 배정 받고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가져와 맛있게 먹다 보니 빈 접시가 쌓였다. 그러자 딸애가 테이블 위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접시를 치우러 온 건 사람이 아니라 귀여운 로봇이었다.

로봇에 달린 바구니에 다 비운 접시를 담고 로봇에 달린 버튼을 누르니 사람처럼 인사를 하고 돌아서 간다.

계산은 아들이 했다. 결국 나는 이 큰 식당에서 식당 주인도, 그릇을 치워 주는 식당 직원도, 친절하게 주차 안내를 해주는 인상좋은 아저씨도 모두 만나지 못한 채 집에 돌아왔다.

밥은 맛있게 먹은 거 같은데 왠지 이 허전함은 무얼까. 사람은 많이 있었지만 대화는 우리 가족하고만 한 것 같다. 마치 우리 가족 바깥 쪽으로 보이지 얇은 막이 하나쯤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들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고 나도 그들과는 한 공간에 있다는 동질감은커녕 너무 낯설었다. 왜 그랬을까?

돌아가신 친정 엄마는 집 밖에 나오면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대화를 하셨다. 가끔씩 엄마를 모시러 가면 집 앞 마당에서부터 앞집 아주머니한테 나를 소개하셨다.

"우리 딸이 왔네~ 나 심심할까봐 콧바람 쐬주러 온거야~."

물론 아주머니는 궁금하지도 않았겠지만 엄마의 너스레에 기분 좋게 대답을 건넸다.

"좋으시겠어요~ 맛있는 거 많이 사달라고 하세요~."

식당에 들어서서도 엄마께서는 "여기에서 제일 맛있는건 뭔가요? 우리 딸이 오늘 맛있는 거 사준대서요~" 한다. 그러면 식당주인은 또 그럴듯한 대답을 한다. "다 맛있어요~ 따님이 효녀네요". 식사를 마치고 주차장에서 차에 오르면서도 "아저씨 더운데 수고 많아요~ 잘 먹고 가요^^"라고 인사하셨다.

남들이 보면 마치 잘 아는 아니 원래 아는 사이인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 생 초면이다. 그런 엄마가 한때는 좀 주책(?)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런 세상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나이가 드는 걸까?

나 역시 도시락을 만들어 파는 자영업자이다. 우리 가게엔 주문하는 기계(키오스크)나 예약 시스템 같은 건 없다. 모든 주문은 고객이 직접 전화해서 말로 해야 한다. 매번 아침마다 울리는 전화벨에 나도 깜짝 깜짝 놀라며(조리 소음이 심해서 가장 원초적인 벨소리로 저장함) 전화로 주문을 받고 노트에 기록한다.

"안녕하세요 행복한만찬입니다~"
"어 ? 사장님~ 감기걸리셨어요?"

목소리만 들어도 내가 감기 걸린 줄 아는 단골고객들이다. 대부분은 배달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하고 결제까지 하면 배달기사가 음식을 가져다 준다. 요즘은 문 앞에 배달 음식을 두고 벨만 누룬 후 급하게 가 버린다.

이런 경우에 고객은 아무말도 못한다. 할 말이 있다면 앱을 통해 벌점을 준다던가 리뷰로 따로 남겨야 한다.
 어느날 회수하는 도시락에 들어있었던 고객의 편지이다. 이런 편지는 자영업자를 춤추게한다
ⓒ 임경화
반면 우리 가게는 배달업체이지만 처음부터 대면이다. 남편이 고객 일터로 찾아가서 음식을 건넨다. 그러면서 오늘은 날씨가 덥다든지 요즘 사업은 어떤지 간단히 묻고 맛있게 드시라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도시락을 다시 회수 하러가면 고객의 말을 듣는다.

"사장님 오늘 고등어 너무 맛있었어요~"
"저는 생선을 잘 못는데 담엔 다른 반찬으로 주세요~."

그런 내용을 전달 받으면 나는 잘 숙지했다가 다음 주문에 즉시 반영한다. 우리 가게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하루에 한 가지 메뉴 도시락만 만든다. 그러나 나는 모두 다른 도시락을 싼다. 예를 들자면 고객의 요구를 반영한 도시락이다.

충전소나 주유소 직원들에겐 국을 하나씩 더 넣는다. 연세가 좀 있는 분들이라 국물을 좋아하신다. OO치과에는 수저, 젓가락을 넣지 않는다. 개인용을 쓰기 때문에. 생선을 싫어하는 고객은 제육볶음을 따로 만들어 넣어준다. 잡채를 좋아하는 고객한테 갈 때는 덤으로 더 챙겨준다. 생선가스의 경우 소스를 부먹 싫어하는 고객들에겐 소스를 따로 챙겨준다. 코다리강정의 빨간 소스를 좋아하는고객에는 비벼 드시라고 조금 더 부어준다.

이렇게 나는 도시락으로 고객과 대화하고 남편은 직접 말로 대화하다보니 서로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 가게 주변 배달 음식점들은 이 벌점에 무척 민감하다. 얘기치 않은 상황으로 고객이 나쁜 생각으로 벌점테러(?)라도 한 날은 그날 일을 못할 정도로 아니 후유증이 심각한 걸 종종 본다.

왜 그래야만 할까? 우리도 가끔 실수를 한다. 한날 도시락을 찾으러 갔는데 고객이 "오늘 머리카락이 나왔어요" 하며 웃는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러면 남편은 도시락 값을 돌려준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실랑이가 벌어진다. 한사코 괜찮다는 고객과 주려는 남편. 그럴 땐 그냥 도시락값을 받고 대신 달달한 빵이나 과일을 사서 후식으로 드시라 건네고 오라고 내가 귀뜸을 해 줘서 그렇게 한다.

우리 가게는 벌점을 주고 싶어도 벌점을 줄 수가 없는 이상한 구조(?)다 보니 우리 방식대로 장사한다. 자영업을 17년간이나 해 온 우리만의 노하우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좀 더 빨리, 좀 더 편하게 하길 원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불편하게 조금 더 찬찬히 한다. 그것을 고객들은 오히려 더 원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파는 건 점심 도시락이 아니라 '행복한만찬' 이라는 시간과 따뜻한 정이다.
 행복한만찬의 닭갈비도시락 입니다
ⓒ 임경화
오늘은 초가을 기분 좀 내느라 닭갈비 도시락이다. 닭갈비는 직접 만든 양념에 미리 재워두고 야채를 손질한다. 밑반찬으로는 배추김치와 상큼한 비름나물, 잘게 썬 햄을 넣은 계란범벅, 그리고 칼슘덩어리 쥐치뼈볶음과 아삭하게 삶아낸 양배추와 쌈장이다. 국은 닭갈비의 매콤함을 잡아줄 어묵국으로 준비했다.

미리 재워둔 닭갈비를 불맛을 입혀 익혀 낸 다음 갖은 야채와 매콤한 소스로 다시 한번 볶아서 완성한다. 오늘 이 도시락으로 지루한 무더위가 한뼘쯤 물러가기를~. 헛헛한 요즘 경기가 조금이나마 살아나기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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