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나래' 막내, 월드컵 나갔다…"K꽃꽂이 아름다움? 자연 그대로"
일상의 꽃꽂이를 화도(華道)로 정착시킨 일본에서 한국 전통 꽃꽂이를 알리겠다고 나선 한국 플로리스트가 있다. 올해로 마흔 네살, 김형학 비욘드앤 대표다.
그를 지난 2일 일본 도쿄 주일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한·일 플로리스트가 참가한 한·일 꽃문화 교류전 ‘유일무이(唯一無二)' 에서 만났다. 그는 세계 화예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꼽히는 '인터플로라 월드컵 대회’에 지난 2023년 대한민국 대표로 출전해 4위에 올랐다. 오는 10월엔 중국 국제화예전시회, 2025년엔 스페인과 필리핀에서 열리는 국제화예전시회에 한국 대표로 초청받는 등 국제 무대에서 한국 꽃꽂이를 알리고 있다.
이날 선보인 작품은 촘촘하게 수반에 세운 스틸그라스에 망개꽃, 글로리오사를 꽂았다. 제목은 ‘한국 전통 꽃꽂이’.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묻자 김 대표는 “한국 전통 꽃꽂이의 특징은 자연스러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다란 스틸그라스를 원형 그대로의 모습대로 일자로 세워 꽂으면 풀잎이 자연스레 기울면서 마치 앞마당 화단에서 봄 직한 풀밭의 푸근함을 느낄 수 있기에 특별한 주제나 제목이 필요 없다는 얘기였다.
이어 그는 “잎 하나하나를 인위적으로 컨트롤하는 것이 아니라, 작약 한 그루를 땅에 심은 뒤 어느 날 꽃망울이 맺히고 꽃이 피기 시작하면 한 가지를 꺾어 화병에 꽂아두고 보던 것이 한국식 꽃꽂이”라고 설명했다. 나무 한 그루, 씨앗 한 톨을 땅에 심는 데서부터 꽃꽂이의 출발점이 되는 ‘꽃을 기다리는 마음’이 시작된다고도 했다.
그는 이런 이유로 최근 ‘시간’을 보여주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말채나무 작품이다. 잘린 가지를 동그랗게 모아 그 가운데에 파란 잎이 달린 굵직한 밤나무 가지로 장식했다. 약 한 달간 이어진 작품 전시 동안, 수반의 물을 계속 갈아주자 푸른 빛을 자랑하던 밤나무 잎은 시들었지만, 말채나무 가지에선 새순이 돋기 시작했다. 전시회 말미, 처음 선보였던 것과는 전혀 다른 작품으로 변신하도록 구성한 것이었다. 김 대표는 “시간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어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작품을 만들려 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처음부터 ‘꽃길’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경기도 화성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한때 공무원을 꿈꿨다. 취업준비를 하던 어느 날 화훼장식사란 글씨가 눈에 들어와 학원을 찾아갔다. 그러다 크고 작은 국내 대회에서 상을 받기 시작했고, 2004년 꽃집에 취업하리라 마음 먹었다.
우연히 찾아간 곳이 1978년에 세워진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꽃집 ‘꽃나래’. 한국 화예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윤석임 회장이 창업한 이곳에서 '막내'로 들어가 청소부터 시작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냥 꽃집아저씨가 되는 거다”라고 생각하던 그의 인생이 바뀐 건 2013년. 윤 회장은 피붙이도 아닌 그에게 '대'를 이어달라고 했다. 뜻밖의 일이었지만 꽃집을 맡기로 했다. 윤 회장은 “대가 바뀌었으니 사명도 새롭게 바꾸자”며 꽃나래(Narae Flower)를 뛰어넘으라는 의미를 담은 지금의 사명으로 바꾸고 은퇴했다.
2대 사장의 삶은 평탄치는 않았다. 결혼식과 같은 이벤트가 아니면 꽃으로 밥벌이를 하기 쉽지 않았다. 세계무대도 마찬가지였다. 예술작품으로, 문화산업의 하나로 각광받는 일본이나 유럽에 비해 한국의 화예는 국제무대에선 무명에 가까웠다.
자비를 들여 전시회에 나갈 정도로 애써오던 그에게 찾아온 것이 바로 인터플로라 월드컵. 4년에 한 번 열리는 세계 최대 대회에서 호평받기 시작하면서 한국 작품을 전시해달라는 요청이 늘기 시작했다. 기회가 생겨날수록 전통 꽃 알리기에 대한 욕심도 커졌다.
그는 “많은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듯, 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엔 없다”면서 “K팝이나 드라마처럼 한국 꽃꽂이를 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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