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해리스가 놓은 함정…'베테랑' 트럼프가 걸렸다 [미 대선 TV토론 | view]
‘초짜’가 놓은 함정에 ‘베테랑’이 걸렸다. 10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TV 토론의 모습이었다.
이번 대선의 분수령으로 불렸던 약 94분 간의 대결에서 대선 토론이 처음인 해리스 부통령은 초반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약점을 찌르며 도발했다. 7번째 대선 토론에 나선 트럼프는 앞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완승을 거뒀던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대결 때와 달리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다소 끌려다니는 모습이었다.
트럼프는 "해리스가 바이든"이라며 해리스를 '과거'에 묶으려 했다. 반면 해리스는 중산층 부흥을 강조하는 '미래' 프레임을 내세우며 트럼프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토론 직후 여론조사에서 유권자 63%가 ‘해리스의 승리’라고 답할 만큼 외신들은 대체로 해리스의 판정승으로 평가했다. 다만 이날 토론이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 이후 형성된 초박빙 판세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퇴로’까지 차단한 해리스의 ‘덫’
해리스는 시작과 함께 트럼프의 연단으로 걸어가 악수를 먼저 청하고는 그의 아픈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경제에 대해선 트럼프의 모교 와튼스쿨의 악평을 인용했고, 트럼프 1기를 비판하기 위해선 트럼프와 등을 진 ‘과거의 참모’를 동원했다.
특히 “트럼프의 말이 지루해 지지자들이 유세장을 금방 떠난다”고 하자 트럼프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등을 진)그 사람들이 무능했기 때문에 해고한 것이고, 해리스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버스를 대절해 돈을 준다”는 근거없는 주장을 했다.
초반에 집중 배치된 이러한 토론 설계에 대해 해리스 측은 워싱턴포스트(WP)에 트럼프가 무대에서 흥분하게 하는 '방아쇠 전략'”이라고 했다. 실제 해리스는 토론 시작과 함께 “여러분은 오늘밤 똑같은 낡고 지친 플레이북(작전 지침서), 거짓말, 불만, 욕설을 듣게 될 것”이라며 자신의 전략을 숨기지 않았다. 동시에 “(트럼프는)이민 문제가 아닌데도 이민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할 것”이라며 트럼프가 구사할 전략을 사전에 차단하려 했다.
트럼프의 ‘과거 공격’…‘미래’로 답한 해리스
반면 트럼프의 전략은 해리스를 바이든 대통령과 동일시하며 “지난 3년 반 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몰아세웠다.
첫 질문인 경제문제부터 트럼프는 “그들(바이든·해리스)은 국가를 망가뜨리는 인플레이션을 초래해 중산층뿐 아니라 모든 계층에게 재앙이 됐다”고 주장했다. 또 “교도소와 정신병원에서 수백만 명이 미국으로 (불법으로)쏟아져들어와 아프리카계, 히스패닉계 미국인과 노조의 일자리를 뺏고, 마을과 건물까지 폭력으로 점령하고 있다”며 “이들은 그(해리스와) 바이든이 들여온 사람”이라고 했다.
이에 해리스는 미소를 보이며 “전직 대통령(트럼프)이 바이든이 아니라 나와 경쟁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 무대에서 미국의 중산층과 근로자들을 끌어올릴 계획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며 “이번 선거에서 중요한 것으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낡고 지친 레토릭(수사)에서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를 말하는 트럼프에 '미래'로 답한 셈이다.
트럼프는 “해리스가 곧 바이든이고, 바이든보다 더 나쁘다”는 말을 반복했다. 특히 “그(바이든)는 (민주당 경선에서) 1400만표를 얻었지만, 그들(해리스)이 쫓아냈고 바이든은 해리스는 싫어해서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발언을 하기도 했다.
약점은 피하고…서로 “거짓말한다”
이날 토론에서 두 후보 모두 치명적인 질문에 대해선 답변을 회피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의 승리가 미국에 이익이 되느냐’는 질문에 러시아 또는 우크라이나 어느 쪽의 승리 여부에 대한 언급 없이 “전쟁이 끝나는 게 미국에 최선의 이익”이라고 답했다.
또 ‘1·6 의회 폭동’ 때 시위대를 선동하는 발언을 한 데 대해 후회를 하느냐는 질문과 관련해 사회자가 “‘예스(yes)·노(no)’로 답해달라”고 했지만, “나는 평화로운 방식으로 행진을 하라고 했고, 의회 안전과 질서는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 책임이지 내 책임이 아니다”고 했다.
해리스 역시 펜실베이니아의 여론을 의식해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셰일가스 채취법인 수압파쇄법을 금지하겠다던 공약을 번복한 배경에 대해 “2020년에 금지하지 않겠다는 점을 명확히했고, 부통령 때도 금지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국경보안법을 임기 말이 돼서야 내놨느냐’는 질문에도 “트럼프가 의회에 전화를 걸어 법안을 폐기하라고 했다”며 임기 중 불법이민자가 급증한 원인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거짓말 공방도 벌어졌다. 트럼프는 일부 주에서 이뤄지는 낙태권 찬반 투표에 대해 “임신 9개월째에도 낙태를 하겠다는 것이자, 아기를 처형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해리스는 “거짓말”이라며 “트럼프가 재선하면 전국적 낙태금지법에 서명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이스라엘과 관련해선 트럼프가 “해리스는 이스라엘을 싫어한다”며 “당선되면 2년 안에 이스라엘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고, 해리스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대선토론에도 등장한 北 김정은
안보 분야에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거론됐다. 이날은 트럼프가 먼저 “북한이 나를 두려워했다”고 주장하면서 바이든 정부 때 발생한 탄도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도발 상황을 언급했다. 그러자 해리스는 “트럼프가 독재자들을 존경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는 김정은과 러브 레터를 주고받았다”며 “독재자들은 그를 조정할 수 있다”고 맞받아쳤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트럼프 후보는 비용 부담을 언급하며 빠른 종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대한 방위비 인상을, 해리스 후보는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과 동맹인 나토의 가치를 강조했다.
‘KO 펀치’는 없었다…"여론변화 제한적"
토론 직후 CNN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63%는 해리스의 승리라는 평가를 내렸다. 트럼프가 이겼다는 응답은 37%였다. 지난 6월 27일 바이든과의 토론에서 67%가 트럼프의 승리라고 했던 상황과는 완전히 달라진 평가다.
그럼에도 이번 토론이 판세에 결정적 영향은 끼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선거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녹아웃(knockout·KO)은 없었다”고 분석했다. 폴리티코 역시 “여론조사 지지율이 팽팽하고 정치적 양극화가 심한 상황에서 박빙의 승부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펜실베이니아주 뮤렌버그대학의 크리스 보릭 교수는 “해리스가 트럼프에 미끼를 던지며 흔들었지만, 트럼프가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은 것으로 본다”며 “토론이 향후 여론조사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해리스는 토론을 마친 뒤 지지자들을 만나 “오늘은 좋은 날이었다”면서도 “(선거일까지) 56일이 있고 할 일이 많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해리스측은 2차 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토론 직후 예고 없이 프레스룸에 나타나 "1대 3의 토론회였다"며 토론회를 주관한 ABC의 편파성을 문제삼았다. 2차 토론에 대해선 "생각해보겠다"면서도 "해리스가 졌기 때문에 더 토론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필라델피아=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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