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가져와’ 명령하니… 로봇이 제품 찾고 짐 나르기 척척

전성필 2024. 9. 12.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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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의 기적을 쫓다] ⑤ 자율주행 로봇 개발사 트위니
트위니의 자율주행 로봇 ‘나르고 오더피킹’이 경기도 이천 용마로지스 물류 센터 내 제품 보관 구역을 이동하고 있다(오른쪽). 나르고 오더피킹에는 3D 라이다 센서가 부착돼 있어 주변 환경을 인지해 완전 자율주행한다. 로봇이 알아서 이동하기 때문에 물류 센터 작업자(왼쪽)는 주문 내역에 맞춰 제자리에서 물품을 옮겨 로봇의 선반에 놓기만 하면 된다. 작업자가 넓은 물류 센터를 이동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작업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트위니 제공


지난 2일 방문한 대전시 유성구 트위니 본사 건물 곳곳에는 ‘ㄴ’자 모양의 로봇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60㎏의 짐을 적재할 수 있는 ‘나르고60’이라는 자율주행 로봇이었다. 나르고60은 건물 기둥이나 복도에 놓여있는 짐들을 자유자재로 피했다. 사옥 복도를 이동하는 나르고60 앞을 가로막고 서자 나르고60은 1~2초 동안 잠시 멈추더니 몸체를 90도 방향으로 돌려 유유히 이동했다. 나르고60의 이동을 방해하기 위해 물리적 힘을 동원해 몸체를 주행 방향과 반대로 180도 돌렸는데도 나르고60은 금방 방향과 위치를 인식해 원래의 목적지로 향했다. 이곳에서 만난 천영석 트위니 대표(경영총괄)는 “나르고60은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에게 사내 카페에서 커피를 배달하거나 본사를 방문한 손님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자율주행 로봇 개발사 트위니는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기반으로 토종 로봇 기업으로서의 명성을 쌓고 있다. 천 대표는 쌍둥이 형제인 천홍석 대표와 2015년 트위니 창업을 결심했다. 중국 기업들이 값싼 서빙 로봇을 제작해 국내 식당에 대규모로 공급하며 공세를 펼치고 있지만 물류 산업 현장에는 두각을 나타내는 ‘자율주행 물류 로봇(AMR)’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물류에 자동화 바람이 불고 있지만 아직은 사람을 대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스스로 이동하는 로봇에 사람 대신 운반 작업을 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창고 등 물류 현장에 로봇이 주행할 수 있는 별도의 길을 내고 주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이런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만 수억~수십억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1000㎡ 부지에 10억원가량의 투자가 필요하다 보니 투입 대비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효과가 작다.

트위니는 이런 틈새를 노렸다. 다품종 소량 출고 방식인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중심의 물류 현장에 ‘오더피킹’에 특화한 AMR을 공급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오더피킹은 고객의 주문에 맞춰 작업자가 보관 장소에서 각 물품을 꺼내 이를 배송처별로 분류하는 작업이다. 오더피킹이 중심인 물류 창고에서는 주로 사람이 직접 이동하며 물건을 찾아 옮기기 때문에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물류 창고는 대부분 도심지가 아닌 곳에 있고 노동 강도가 높아 기피 일자리로 꼽힌다. 사람이 절실하지만 일할 사람은 부족한 상황에 처한 물류 업체들이 많다.


트위니는 ‘나르고 오더피킹’을 통해 물류 창고 작업 중 95%의 이동은 로봇이, 나머지 5%의 피킹(물건을 골라 로봇에 넣는 작업)은 사람이 하는 식의 혁신을 꾀했다. 작업자는 정해진 공간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피킹 작업을 하고 운반은 로봇이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작업자의 업무 강도는 줄어들고 중소·중견 물류 센터의 인건비 부담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됐다.

천 대표는 트위니의 강점으로 완전 자율주행 기술을 꼽았다. 보통 공장에 설치되는 무인이송 로봇(AGV)은 바닥에 부착된 QR코드 등을 인식해 주행한다. 이동 중에 장애물이 있으면 QR코드 반경을 벗어나지 못해 그대로 멈춰서는 한계가 있다. 이와 달리 트위니의 로봇은 첨단 3D 라이다를 활용해 자체적으로 주변 환경을 판단해 주행한다. 천 대표는 “지도 데이터와 센서를 통해 분석하는 데이터의 양이 워낙 많다 보니 실시간으로 이를 매칭시켜 운행하는 데까지는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하다”면서 “트위니는 자체 알고리즘을 개발해 운행에 적합하지 않은 데이터(노이즈)를 걸러내고 로봇이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의 양을 줄이는 식으로 자율주행 성능을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경기도 이천의 용마로지스 물류 센터에는 총 6대의 트위니 로봇이 운반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작업자는 로봇에 3가지 화장품을 포장대로 가져오라고 원격으로 작업 주문을 전송한다. 창고 구석 충전 구역에서 대기하던 로봇은 스스로 움직여 운반해야 할 물건이 있는 물류 센터 구역까지 스스로 이동한다. 중간중간 물류 창고 종사자들이 지나다니고 택배 상자가 놓여있어도 로봇은 자연스럽게 피하고 길을 찾아 움직인다. 물건이 있는 공간에 도착한 로봇은 해당 구역을 담당하는 작업자에게 원하는 물품이 무엇인지 화면에 주문 내역을 띄워 알려준다. 작업자는 보관대에 있는 물건을 집어 로봇에 옮긴다. 로봇은 포장대로 이동하고 작업자는 곧바로 다른 주문을 확인해 일할 수 있다. 작업자가 직접 운반기구를 가지고 창고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물품을 찾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작업자의 단순 반복 이동 동선이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이달까지 국내 8개 물류 센터와 130대 수주 계약을 체결한 트위니는 고객사를 지속해서 확대하겠다는 목표다. 대표적인 고객사로는 용마로지스, 한익스프레스, 커버로지스 등이 있는데 도입 대수를 늘리겠다는 의향을 밝힌 곳도 있다. 고객사는 화장품, 생활잡화, 의류 등을 주로 취급하고 있는데 트위니 로봇 도입 이후 직원들 업무의 질이 개선됐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효율적인 일 처리를 통해 생산성이 높아졌다며 만족감을 표하고 있다고 한다. 한 고객사의 경우 로봇을 활용한 이후 제품 하나를 운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기존 20초에서 11초로 단축됐다.

나르고 오더피킹의 가격은 대당 4000만원 수준이다. 트위니는 직접 구매가 부담스러운 고객사에는 대여 형태로 로봇을 공급하고 있다. 천 대표는 “근로자가 주문품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어진 데다 로봇 내 디스플레이를 통해 상품명과 수량을 알려줘 작업 정확성이 높아졌고 피킹 효율성이 제고됐다는 반응이 나온다”며 “초기 구축 비용 부담을 덜 수 있고 창고 구조 변경 없이 작업 현장에서 유연하게 즉시 사용 가능하고 운용 대수도 늘릴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별도 인프라 구축 없이도 곧바로 현장 투입… 美 물류시장서도 매력 통할 것”
천영석 트위니 경영총괄 대표
북미 진출 추진… 내년 IPO 목표


"학창시절 형제가 함께 사업체를 꾸려 경영을 해보자는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트위니를 통해 어린 시절의 꿈을 이뤄가고 있네요."

트위니에는 기술과 경영을 총괄하는 2명의 대표가 있다. 일란성 쌍둥이인 천영석(사진)·천홍석(43) 대표다. 천영석 대표는 경영을 맡고 있고, 천홍석 대표는 기술 개발을 전담한다. 천 대표 형제는 고등학교부터 대학 시절 문과와 이과로 갈라져 다른 전공의 길을 걸었다. 천홍석 대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박사 과정을 통해 로봇을 연구했고, 천영석 대표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중소벤처진흥공단에서 재무관리와 기업지원 업무를 했다. 천영석 대표가 사회생활을 한 지 약 10년쯤 지난 2015년 천홍석 대표가 먼저 창업을 제안했다. 천영석 대표는 지난 2일 국민일보와 만나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로봇을 만들어 세계에 공급해보자는 말에 도전해보기로 했다"고 창업 배경을 밝혔다.

트위니 경영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자율주행 로봇을 개발했지만 물류 현장의 편견을 깨기가 쉽지 않았다. 천 대표는 "로봇이 돌아다니면 작업에 방해만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인식, 대당 수천만원에 달하는 로봇을 도입하는 것은 경제성이 없다는 우려가 팽배했다"고 말했다. 또 트위니가 소프트웨어를 핵심으로 한 기업이다 보니 물류 현장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들었다. 그러나 천 대표는 물류 현장을 뛰어다니며 로봇을 시연하고 기업을 설득했다. 그 결과 트위니의 자율주행 로봇을 도입하는 물류 현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트위니는 현재까지 누적 236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받았다. 여기에 더해 30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 중이다. 천 대표는 "자율주행 로봇이 택배 운송이나 라스트마일 등 아파트나 고층빌딩에서도 활용도가 높다는 판단에 관련 기업들과 투자 논의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을 맛본 트위니는 로봇 최대 시장인 북미시장 진출을 추진 중이다. 올해 연말까지 미국 내 로봇 운행 인증을 확보할 예정이다. 미국은 물류 산업 선진국으로 이미 물류 현장에 로봇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이미 보급된 물류 로봇만 약 140만대로 추정된다. 천 대표는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이 앞다퉈 현장에 로봇을 도입하고 있지만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인프라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면서 "반면 트위니의 로봇은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해 곧바로 현장 투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단기간에 로봇을 늘리고자 하는 미국 기업들에게는 매력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물류 시장 진출은 내년을 목표로 하는 기업공개(IPO)의 지렛대가 될 전망이다. 천 대표는 "올해 수주액 100억원 이상을 달성할 것"이라며 "미국 시장에서 수주가 늘어나면 기업가치도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대전=글·사진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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