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3류 정치 바이러스 백신

2024. 9. 12.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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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준(연세대 교수·산업공학과)

정치권 진영 갈등의 폐해가
우리 사회 전 영역으로 확산
정치 성향이 결혼·연애도 좌우
교육감 선거도 이념 싸움 변질

상대 진영 미워하는 것으로
고된 삶의 스트레스 푸는 듯
추석엔 ‘감정의 배설구’가 된
정치 얘기로 언쟁하지 말길

흔히들 3류 정치가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낙후된 분야가 정치라는 데 이견을 다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진영 논리에 갇힌 3류 정치는 산업계, 의료계, 법조계, 언론·방송계, 스포츠계 심지어 교육계까지 우리 사회 곳곳으로 영역을 확장해가면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어떠한 바이러스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3류 정치는 확산 속도가 빠르고 감염 증상도 심각하지만 백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언제부터인가 진영 논리의 대립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을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정치적 견해는 친구 관계나 연애, 결혼 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2023년 사회 갈등과 사회 통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8%는 정치 성향이 다른 상대와 연애나 결혼을 할 수 없으며, 33%는 친구나 지인이라도 정치적 성향이 다르면 술자리를 같이하기 힘들다고 답했다. 정치는 3류라고 손가락질하면서도 3류 정치의 행태를 삶 속에 고스란히 옮겨다 놓고 있다. 나아가 인터넷을 통해 3류 정치 콘텐츠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하면서 3류 정치의 숙주가 돼가고 있다.

지난 1년치 소셜 데이터의 긍·부정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정치’라는 단어와 함께 언급된 단어는 의혹, 비판, 혐오, 갈등, 논란, 괴담, 범죄, 혼란, 위기, 선동 등 부정적 단어가 84%를 차지한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정치에 대해 극도의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지만 실상은 정치가 아닌 상대 진영에 극도의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19개 민주주의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다른 정당 지지자들 간의 갈등 수준’에서 극단적 증오와 혐오 정치로 반쪽 난 미국을 제치고 한국이 1위를 차지한 결과를 통해 가능한 유추다. 언제부터인가 정치는 극심한 경쟁사회의 고된 삶을 이겨내기 위한 감정의 배설구가 돼버린 느낌이다.

정치는 사전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케 하고 상호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사회가 고도화되고 구성원의 다양한 욕구가 분출되면 공익 실현을 위해 구성원 간 이해 조정이라는 정치의 본원적 기능에 대한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공익은 담합으로 변질될 수 있는 조정이 아닌 사회 구성원의 이기적인 욕구와 목표 지향적인 동기에 의한 상호 견제로 구현될 수 있는 측면도 있기에 공익을 구현하고자 하는 정치 행위가 견제와 갈등을 증폭시키는 측면을 배제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문제는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진영 간 대립이 전후 수십년간 산업화, 민주화라는 담론과 함께 사회 구성원이 하나돼 일구어 놓은 국가 경쟁력을 3류 수준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배를 곯아가면서도 자식에게는 배움의 기회를 주고자 했던 앞선 세대의 교육열로 성과를 만들어낸 교육 분야도 진영 논리에 함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에서 정권 타도 등의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후보들, 선거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고도 진영 논리를 앞세워 다시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 진영 단일화를 외치는 후보들의 모습에서 교육감 선거가 왜 필요한지 회의가 밀려온다. 유권자들도 후보자의 교육 철학, 경력, 정책 등에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급속한 기술 발전과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지금 진영 간 대립의 장이 돼가는 교육계를 보면 3류 정치의 공습에 사뭇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뚜렷한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다.

늘 그렇듯 각 진영은 민심을 잡기 위해 명절이 다가오면 정치적 화두를 쏟아내고 우리는 그들이 던진 화두로 가족, 친지와 논쟁을 이어간다. 이번 추석만큼은 골목마다 내걸린 각 진영의 현수막을 뒤로하고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3류 정치에 휩쓸려 가족, 친지와의 관계마저 훼손한다면 우리는 정치를 3류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친구, 지인과도 음식과 술을 나눌 수 있는 추석 명절이 됐으면 한다. 이런 노력이 3류 정치 바이러스 백신 접종이 아닐까.

박희준(연세대 교수·산업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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