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의료 공백 책임’ 해법 제각각… 문턱에 걸렸다
여·야·의·정은 협의체 제안 닷새째인 11일에도 아무런 대화 테이블을 만들지 못했다. 여·야·정은 의료계의 대화 참여를 촉구하고 의료계는 모든 의료개혁 정책 백지화를 주장하는 답보 상황이 이날도 이어졌다. 협의체가 곧 출범한다는 언론보도도 나왔으나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은 이를 즉각 반박했다. 정치권과 의료계, 정부가 꼬인 실타래를 풀지 못하는 사이 환자의 불안감과 현장 의료진의 피로감은 하루치 더 쌓였다.
여·야·의·정이 논의할 핵심이자 협의체 출범을 어렵게 만드는 최대 쟁점은 2025·2026학년도 의대 증원분 재조정 여부다. 대통령실과 정부가 2026학년도에 대해서는 “제로베이스 논의가 가능하다”고 전향적 입장을 취한 반면 의료계는 이미 입시 절차가 시작된 2025학년도까지 포함한 증원 백지화를 요구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중재안으로 제시한 ‘2026학년도 증원 유예’는 의료계의 완강한 태도 속에서 아직 의미 있는 타협점이 되지 못하고 있다.
2025학년도 증원 철폐는 협의체가 가동된다 해도 성사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2025학년도는 안 된다”며 “일부 반발 때문에 물러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사법부가 의료계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대학별 정원 배정이 완료된 데다 수시모집 전형이 시작된 2025학년도 정원은 건드릴 수 없다는 의미다. 정부는 입시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책 철회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여야는 2025학년도 증원 재조정 문제도 대화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 숫자가 ‘0명’이 돼야 한다고 말하진 않는다. 한 대표는 이날 “어떤 시기는 (조정이) 절대 안 된다고 해서는 협의체가 출발하지 못하지 않겠나”라고 했지만, 이는 전제조건을 따지기 전에 일단 협의체부터 띄워 소통하자는 호소에 가깝다. 야당 역시 “2025학년도 정원 조정 문제에 제한을 두는 건 의료계의 참여를 원천 봉쇄하는 것”이라면서도 증원 취소까진 거론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보건복지부의 정책 발표 직후 전공의들의 이탈로 발생한 의료 공백에 대해 여·야·의·정은 이제 비슷한 수준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 응급의료 현장 상황에 대해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밝혀 오던 정부도 “현장의 어려움이 크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다만 그 원인과 해법을 두고는 인식차가 여전하다. 의료계와 야당이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보고 “증원 정책이 없었다면 의료 공백 사태도 없었다”고 말하는 반면, 정부는 “수련받는 전공의들이 없다고 혼란해지는 이 현실이 바로 의료개혁을 해야 하는 이유”라고 역설한다.
정쟁 같은 책임 공방은 협의체 출범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야당과 의료계는 윤 대통령의 사과와 보건복지부 장·차관 경질을 대화 참여의 기본 조건으로 내건다. 대통령실은 정당한 정책인 만큼 그럴 이유가 없다고 일축한다. 의사가 국민을 볼모로 밥그릇을 지키는지, 정부가 섣부른 정책으로 큰 피해를 낳았는지 여론도 분열 중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금 누가 누구를 손가락질하고 그럴 때가 아니라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공의들이 상급종합병원에서 겪어온 구조적인 문제 개선도 의료개혁의 한 축이라며 대립 구도를 깨려 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전공의들의 불만이 단순히 의대 증원에만 있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며 “제대로 된 보수 없이 격무를 하는 체제,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의료개혁은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의료진도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국무회의에서 말했다.
여·야·의·정은 의료개혁 출발점인 ‘필수·지방의료 의사 부족’에 대해서도 시각이 엇갈린다. 의료계는 “멀쩡한 의료 시스템이 망가졌다”며 의대 정원에 손을 댄 것이 문제를 악화시켰다고 말한다. 정부는 ‘연간 2000명’ 발표 이전에도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과 오픈런’ 문제가 컸다고 본다. 의사 증원은 문재인정부도 추진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난 4월 영수회담에서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의사단체는 의사 수가 급증하면 의료 서비스의 질이 하락하고 의료비 부담은 커질 것이라 우려한다. 정부는 국내외 사례연구 결과 의사 수와 진료비는 상관관계가 미미하다고 반박한다. 정부는 이제 의사를 기득권으로 몰아세우지 않고 “의사들이 진정 걱정하는 것이 수입의 감소라면 그렇지 않다”는 유화 제스처도 보낸다.
여·야·의·정 모두의 말이 일치하는 대목은 유일하다. 어느 누구도 환자의 고통을 바라진 않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의료개혁을 국민 안전을 위한 헌법적 책무라고 밝혔다.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의사들도 다수는 추석 연휴에 병원 문을 열기로 했다. 안윤옥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는 “의사된 사람들은 모두 근원적으로 환자를 돕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은 “숫자가 합리적이냐, 누가 결정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권도, 의료계도 지금 환자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해야 한다”며 “환자들도 대화체에 참여해 피해를 말하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경원 최승욱 정우진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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