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상장사 ‘밸류업’에 역행하는 상법 개정 논의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은 현재 진행 중인 상법 개정 논의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기존 상법에는 이사가 회사에 대해서만 충실의무를 가진다고 본다. 그런데 개정안에는 그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까지 넓히고, 지분에 비례해 각 개인주주의 이익을 담보하자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일견 대주주의 사익 추구를 막고 소액주주의 이익을 지켜주는 것 같아 좋아 보인다. 하지만, 소액주주가 가져갈 이익 자체를 없앨 수 있는 아주 고약한 발상이다. 이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향후 다수의 상장사는 소액주주가 없는 비상장사가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비상장사는 향후 상장에 대한 매력을 예전만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소액주주는 그만큼 주식 투자를 통해 상장사의 성장과 이익에 편승할 수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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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주로 이사 충실의무 대상 확대
대주주 견제하려는 의도라지만
소액주주가 피해 보게 될 자충수
」
대주주로부터 소액주주의 이익을 지키려고 발의된 개정안이 결국 소액주주로부터 이익의 원천을 뺏어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상장사의 상장폐지에 대한 선호는 상법 개정안이 소액주주에 권한을 과대하게 주는 것으로 판명될수록 더 커질 것이다. 개정안이 패착일 수 있는 이유다. 상장사는 주식 분산 요건 때문에 소액주주가 늘 존재한다. 소액주주는 언제든지 팔고 나갈 수 있지만, 대주주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대주주와 소액주주 사이에는 항상 이해 마찰이 존재한다.
애당초 이사가 회사에 대해서만 충실의무를 가지는 이유가 있다. 즉, 주주들의 이해 차이는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해결하고, 이사는 주주총회가 제시한 통일된 목표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다. 그런데 이사에게 개별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책임 지우고 거기에 배임죄까지 씌운다면 어떻게 될까. 주주총회의 조절 기능이 사라지면 주주 간 이해 상충에 이사가 그대로 노출된다. 이렇게 되면 이사는 더 이상 주주총회에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채택된 대주주의 의견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을 배임으로 고소할 수 있는 소액주주의 의견을 따를 수 있다. 이사가 자신을 해고할 수 있는 대주주보다 자신을 감옥에 보낼 수 있는 소액주주를 더 두려워한다면, 소액주주는 비례적인 권한이 아니라 과대 권한을 갖게 된다.
소액주주가 과대 권한을 갖는 상장사는 더는 대주주에게 매력적이지 않다. 미래 투자를 포기하거나 현재의 외연을 축소해서라도 소액주주의의 지분을 매입해 상장폐지로 가길 원하는 대주주가 나올 것이다. 향후에도 상장보다는 사모펀드 등을 이용해 자본을 확충하려 하고, 기관을 통한 장기부채 조달에 더 기댈 것이다. 이러한 자본 조달 방법에는 소액주주가 들어갈 곳이 없다.
혹자는 경영 판단의 원칙을 적용하면 배임으로 고소되더라도 법원이 올바른 판단을 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추측일 뿐이다. 가령 6개월 안에 지분을 팔고 나가면서 시세차익을 내야 하는 행동주의 펀드나 소액주주가 있고, 10년 후의 먹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회사의 사업을 조정하려는 대주주가 있다고 해보자. 10년 후 먹거리 마련을 위해 지금 어느 사업을 매각하고 어느 사업을 매입하다 보면 6개월 이내에 주가가 내려갈 수도 있다. 지분을 팔고 나가야 하는 시점에 주가가 하락하는 것을 보며 소액주주가 이사에게 배임죄를 묻는다면 그 시점에서 이사가 방어할 수 있을까.
이사가 처음부터 이러한 신상 위험을 감지했다면, 애당초 10년 후 먹거리를 찾아보자는 대주주의 의견을 무시하고 소액주주의 의견을 따랐을 것이다. 소액주주의 과대 권한 행사에 따른 결과다. 이런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상장사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반도체 사업에 투자한 ‘이건희 회장’이나 자동차 사업에 투자한 ‘정주영 회장’은 더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상법 개정안이 ‘밸류업(Value-up)’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10%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경영에 참여한다면, 그는 자기가 1000원을 벌기 위해 소액주주에게 9000원의 이익을 안겨주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그런데 경영에 참여도 안 하는 소액주주가 행여 대주주가 1원 더 가져갈까 봐 발목을 잡아도 되는 법을 만든다면, 이것이 과연 상장사의 밸류업을 꿈꾸는 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싶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원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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