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필향만리’]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

2024. 9. 12. 00: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은 누명을 쓰고 제주도에 귀양 갔다. 귀양 초기엔 더러 위문을 오는 사람이 있더니만, 세월이 흘러 ‘추사는 이제 끝났다’는 상황이 되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제자 이상적(李尙迪)만이 중국에서 구입한 책과 서화용품 등을 싸들고 추사를 찾아왔다. 감동을 받은 추사는 『논어』의 이 구절을 들어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하더니, 네가 바로 소나무 잣나무처럼 변함없는 사람이구나!”라고 칭찬하며, 허름한 집 한 채와 소나무와 잣나무 각 두 그루씩 그린 그림을 선물했다. 그게 바로 오늘날 국보 180호로 지정된 ‘세한도(歲寒圖)’다. 훗날 ‘세한도’는 일본인의 손에 넘어갔다가 서예가 손재형의 끈질긴 노력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또한 감동적 사연이다.

歲:세월 세, 寒:추울 한, 然:그러할 연, 柏:잣나무 백, 後:뒤 후, 彫:시들 조. 세월이 추운 때가 되어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 35x73㎝.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 외워둠 직한 구절이다. 말은 ‘후조(後彫)’, 즉 ‘뒤에 시든다’고 했지만 소나무 잣나무는 끝내 시들지 않는다. 절개와 의리의 상징이다. 절개와 의리는 버리고 이익에 빠져 허덕이는 삶은 소금물로 갈증을 풀려 하는 삶과 다르지 않다. 추사는 세한도의 한 모서리에 이런 도장을 새겨 찍었다. 장무상망(長毋相忘)!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