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옹녀가 돌아왔다

홍지유 2024. 9. 1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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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간판스타 이소연이 당차게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옹녀’를 연기한다. [사진 국립창극단]

“앞전을 터주시오. 어서요.” (옹녀)

“그란디 길이 좁아 놔서…내가 힘을 주어설랑 쏙 넣어볼 테니 바쁘게 지나가 보시오.”(변강쇠)

“무엇을 쏙 넣어본단 말씀이시오?”(옹녀)

“아랫배를 그래본다 그 말이지. 초면에 거시기를 그러겄소?”(변강쇠)

사주에 상부살(과부가 될 운명)이 낀 옹녀는 열다섯부터 스무살까지 남편 여섯을 내리 잃었다. “동네 총각 다 잡아먹는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쫓겨난 옹녀는 하염없이 걷다 산속에서 변강쇠와 마주친다. 둘은 첫눈에 서로가 천생연분임을 알아보고 그 길로 합방해 부부의 연을 맺는다.

국립창극단의 ‘19금(禁)’ 스테디셀러 ‘변강쇠 점 찍고 옹녀’(연출 고선웅)가 돌아왔다. 창극 최초로 누적 공연 100회, 10주년을 맞은 흥행작이자 억대 개런티를 받고 프랑스 파리에 진출한 작품이다. 2014년 초연한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판소리 다섯 바탕(수궁가·심청가·춘향가·적벽가·흥부가)에 들지 못한 ‘변강쇠 타령’을 고선웅 서울시극단장이 각색해 만들었다. 작창·작곡은 국립창극단 출신인 한승석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가 맡았다.

작품명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변강쇠에게 맞춰져 있던 시선에 마침표를 찍고 옹녀에게 눈길을 돌린다는 의미. 영어 제목도 ‘마담 옹’(Madam Ong)으로 지었다. 원작에서는 상부살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할 수 없는 옹녀가 홀로 마을을 떠나지만 창극에서의 옹녀는 뱃속 아이를 잘 키우겠다고 다짐하며 씩씩하게 변강쇠를 떠나보낸다.

작품은 연출과 연기, 작창과 작곡이 어우러지는 수작이라는 평을 받는다. 한국어의 말맛을 살린 대본과 농익은 소리는 전통의 아름다움을 새삼 일깨운다.

일부 성적인 묘사는 외설보다 해학에 가깝다. 가사만 남고 소리는 사라진 ‘기물가’를 부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변강쇠와 옹녀가 서로의 성기를 묘사하는 노래로, 코믹한 노랫말에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어우러진다.

조연 배우들의 감초 연기도 보는 맛을 더한다. 옹녀와 변강쇠의 첫날밤을 목격한 장승은 “하냥 세월 무량영겁 재미라곤 없이 사는데 저 잡것들은 우리 속도 모르고 좌삼삼에 우삼삼 회포를 푸는구나” 한탄하고, 호색 할매는 “김 매고 콩 심구느라 허리가 굽어 여러모로 편리할 것”이라며 도망가는 변강쇠를 정정하게 뒤쫓는다.

국립창극단 간판스타 이소연의 실력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10년간 합을 맞춰온 변강쇠 역의 최호성과는 그야말로 찰떡궁합. 이들이 연기를 잘하는 소리꾼인지, 소리를 잘하는 희극인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번 시즌에는 ‘원조’ 옹녀·변강쇠 이소연·최호성 커플뿐 아니라, 옹녀로 갓 데뷔한 김우정과 유태평양 커플의 연기도 볼 수 있다. 창극단 수석인 민은경이 병난 변강쇠를 고쳐주려다 내빼는 ‘힙한’ 의녀를, ‘국악 아이돌’ 김준수가 충청장승을 연기한다. ‘각설이 타령’의 일인자로 불리는 90세의 윤충일 명창도 무대에 오른다.

소리도 한층 풍성해졌다. 기존 음악에 생황·대아쟁·25현 가야금·소금·철현금을 추가하면서다. “고전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롱런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들썩이면서 보게 되는 극이다” 등 호평이 대부분이다. 공연은 15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볼 수 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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