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거주 기업형 임대주택 성공할까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4. 9. 1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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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막겠다는 정부의 묘수?

기업이 운영하는 임대주택에 세입자가 20년 이상 거주할 수 있는 신개념 임대주택이 도입된다. 일명 ‘기업형 임대주택’이다. 임대 시장에 개인이 아닌 기업을 적극 유치하겠다는 취지지만, 기업들이 수익성 확보를 위해 임대료를 대폭 올리면 찬밥 신세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8월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민간임대주택 ‘베르디움프렌즈’에서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간담회를 열고 있다. (국토교통부 제공)
정부, 기업형 임대주택 도입

2035년까지 10만가구 공급하기로

국토교통부는 지난 8월 28일 열린 경제장관회의에서 ‘신유형 장기민간임대주택 공급 방안’을 내놨다. 법인이 100가구 이상(1개 단지 기준) 대규모 임대주택을 20년 이상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2035년까지 10만가구 이상 선보이겠다는 구상이다.

정부가 기업형 임대주택 개념을 도입한 것은 전세사기를 막기 위한 목적이 크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는 효용을 다했다”며 “어쩔 수 없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앞으로 이런 추세가 구조적으로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에서만 보편화되지 않은 장기민간임대주택을 육성해 국민에게 새로운 주거 선택지를 마련해줄 것”이라며 제도 도입 취지를 밝혔다.

국내 민간임대주택 658만가구 중 514만가구 즉 78%가량이 비등록 임대 물건이다. 나머지 등록 임대 144만가구도 개인이 보유한 물량이 63%에 달한다. 이처럼 임대 시장이 영세화되면서 전세사기가 나타나고 세입자 불안이 커진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섰다. 민간임대 시장의 대형화, 전문화를 통해 세입자가 전세사기 같은 불안 없이 장기간 거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국토부는 민간임대주택법 개정안을 9월 중 발의할 계획이다.

기업형 임대주택 특징부터 살펴보자.

20년짜리 장기임대주택 상품으로 임대료부터 자유롭다. 임대료를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이상으로 올리거나 의무임대기간 중 세입자가 바뀔 때 전월세 금액을 5% 이상 인상하는 것이 허용된다. 이들 기업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 기금 융자 등 각종 금융 지원을 제공한다. 취득세, 재산세 감면 등의 세제 인센티브도 준다.

임대주택 유형은 자율형, 준자율형, 지원형 등 3가지로 나뉜다.

자율형은 임대료 규제가 없는 대신에 최소한의 정부 지원만 받는다. 준자율형은 임차인이 20년 임대 기간 중 계약을 갱신하는 2년마다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할 수 있고, 임대료 인상률 5% 상한이 적용된다. 대신 기업은 지방세 감면 혜택과 저금리 기금 융자 지원을 받는다. 지원형은 준자율형이 받는 규제에 더해 초기 임대료가 주변 시세의 95%로 제한된다. 무주택자 우선 공급 의무도 생긴다.

기업형 임대주택이 이번에 처음 나온 모델은 아니다. 박근혜정부 당시 도입된 ‘뉴스테이’의 확장 모델 격이다. 2015년 당시 정부는 임대료 관련 모든 규제를 풀어주는 대신 8년간 의무임대기간을 둔 ‘뉴스테이’를 내놨다. 당시에는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도 임대료 제한이 없어 논란을 불러왔다. 논란이 커지자 문재인정부는 의무임대기간을 10년으로 늘리면서 초기 임대료를 시세의 95%로 제한했다. 이번 정부는 임대기간을 아예 20년으로 늘린 다양한 유형의 임대주택 모델을 선보였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기업형 장기임대주택은 다양한 가격의 임대주택을 공급해 전세 시장 불안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이다. 고품질 임대주택을 제공할 경우 주거 서비스 수준도 높아져 임대주택에 대한 편견이 바뀔 수 있다”고 기대했다.

외국에도 기업형 임대주택 모델이 있을까.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는 이미 기업 중심의 민간임대주택 시장이 활성화돼 있다.

미국은 실버스타인프로퍼티 등의 전문 업체들이 뉴욕, LA, 필라델피아 등 대도시에서 임대주택을 공급한다. 노인, 신혼부부 대상으로 수영장, 헬스장, 애완동물 돌봄 등 맞춤형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일반 주택 못지않은 품질을 자랑한다. 일본에서도 다이와리빙, 레오팔레스21 등 임대 전문 업체가 68만가구 이상 임대주택을 공급해왔다. 전체 임대주택의 60% 이상이 임대 전문업체 몫일 정도로 기업 역할이 크다. 국내에서도 부동산 개발 업체 SK D&D가 ‘에피소드’ 브랜드로 기업형 임대주택을 공급했는데 공급 규모가 워낙 적어 큰 파장을 불러오지는 못했다.

기업 참여 변수

임대료 올리면 ‘찬밥 신세’ 우려도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기업형 임대주택 모델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가장 큰 변수는 기업 참여 여부다. 사업 주체인 기업 참여가 저조하면 성공하기 힘든 모델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단 기업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규제를 대폭 풀기로 했다. 리츠(부동산 투자회사), 부동산 개발 업체뿐 아니라 자금을 장기 투자로 운용하는 보험사에도 임대주택 투자를 허용하고 건전성 기준을 완화해주기로 했다. 보험사가 장기임대주택을 보유할 때 지급여력비율을 25%에서 20%로 낮춰 리스크를 줄여줄 계획이다.

기업들이 20년간 자금이 묶이는 데 대해 부담을 느끼는 만큼 포괄양수도도 허용한다. 20년간 임대주택을 유지하기만 하면 중간에 사업자가 바뀌어도 무방하다는 의미다. 임대리츠 주식을 임차인에게 우선 배분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세입자가 리츠 투자를 통해 거주주택 지분 일부를 소유해 배당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적극 참여할지는 미지수다. 기대만큼 수익을 올리기 어렵다는 우려 탓이다.

시계추를 돌려보면 문재인정부 당시 뉴스테이 명칭을 ‘공공지원 민간임대’로 바꾸고 임대료 규제를 강화했다. 사실상 10년 후 분양 전환해서야 수익을 거두는 구조였다. 임대료가 워낙 낮다 보니 임대주택을 운영하는 동안에는 적자가 불가피해 기업 외면을 받았다. 이번 임대주택도 20년짜리라 20년 후에는 주택이 낡아 분양 전환하거나 통매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기업이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만큼 규제 완화에 거는 기대가 크지 않다는 목소리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20년 동안 자금이 묶이는 장기 사업은 아무래도 부담이다. 지금도 민간임대 사업이 어려움을 겪는데 정부가 규제를 풀어준다고 해서 섣불리 나설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태욱 전 동양미래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형 임대주택이 성공하려면 투자자에게 투자수익에 대한 비과세 등 다양한 혜택을 부여해 리츠 투자 매력을 높여야 한다. 금융, 건설사 등 민간 기업과 정부 공무원, 전문가들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실효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나타날 걸림돌도 적잖다. 임대료 규제 완화 등을 위해서는 민간임대주택법이 개정돼야 하는데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순순히 동의해줄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정부가 아닌 기업 주도로 공급하는 상품인 만큼 수익을 내기 위해 임대료를 대폭 올리면 사업자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SK D&D의 기업형 임대주택 ‘에피소드 용산’ 임대료는 주거 유형에 따라 96만~696만원에 달했다. 박근혜정부 당시 뉴스테이도 임대료가 워낙 높아 대거 미달 사태가 빚어진 바 있다.

“원자잿값, 공사비가 급등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수익성을 올리려 임대료를 대폭 올릴 가능성이 높은 만큼 기업형 임대주택이 찬밥 신세가 될 수 있다. 기업형 임대주택을 도입하더라도 기존 임대주택을 모두 대체하기 어려운 만큼 개인과 법인의 임대주택이 혼재할 수밖에 없다. 임대 시장 활성화를 위해 다주택자 규제 완화를 함께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진단이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6호 (2024.09.11~2024.09.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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