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참여가 R&D 패러독스 넘어 혁신창업 생태계 만든다” [혁신창업국가 국제심포지엄]

홍상지, 김민정 2024. 9. 1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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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실험실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를 처음 만들었는데 창업 전부터 선 주문이 들어왔다. 그렇게 얼떨결에 ‘실험실 창업’을 했다. 기술 외에는 포트폴리오도 준비 안 된 상태였다.”

11일 서울대 글로벌공학교육센터에서 열린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심포지엄 2024’에서 오준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명예교수는 13년 전 연구실에서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처음 창업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오 교수는 ‘휴보’의 아버지로 불리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사업에는 무지했고, 로봇 판매 외 수익을 낼 방법도 없는 상태였다. 그때 사업의 밑그림을 그려주며 투자자를 모아온 것이 벤처캐피털(VC)들이었다. 100억원이 넘는 투자금을 확보한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창업 10년 만인 2021년 3월 코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서울대와 KAIST, 중앙일보가 공동으로 개최한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심포지엄’이 11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열렸다. 이날 오전 오준호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설립자 겸 최고기술책임자(CTO)가 강연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상장 후 3년이 지난 현재,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삼성전자의 주목을 받고 있는 회사로 성장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초 이 회사에 867억원을 투자했고 지분 14.99%를 확보했다. 2029년 3월까지 지분율을 60% 가까이 끌어올릴 수 있는 콜옵션(매수선택권) 계약도 체결했다. 국내 대학 연구진이 연구·개발(R&D)한 혁신기술이 창업으로 이어졌고, 그 기업이 성장해 대기업의 신 성장동력 역할까지 하게 된 사례다.

지난달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전세계 연구기관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네이처 인덱스’ 한국판을 내며 “한국은 R&D에 국내총생산(GDP) 5% 가까이를 투자하고 있지만 다른 국가와 비교해 ‘투자 대비 성과’가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연구가 사업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연구를 위한 연구’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와 KAIST, 중앙일보가 ‘혁신 스타트업 생태계와 대기업의 역할’을 주제로 연 이번 심포지엄에선 R&D 성과를 사업화로 연결하지 못하는 ‘R&D 패러독스’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다. 연사로 참석한 국내외 스타트업 대표 및 VC(벤처캐피털) 임원들은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오픈 이노베이션(기술과 아이디어 등을 외부로부터 들여오는 개방형 혁신모델)으로 혁신창업 생태계의 신 성장엔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혁신 창업 생태계를 키우기 위해선 대기업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이 중요하다는 점도 여러 차례 강조됐다. 기조 연설자로 무대에 오른 미국 VC SOSV의 모한 아이어 대표 파트너는 “딥테크 분야에서는 CVC가 스타트업의 R&D와 파일럿 프로그램을 지원하며 시장 확장을 도울 수 있다”며 “VC의 빠른 결정과 CVC의 신중하게 계획된 대규모 실행을 결합함으로써 창업 생태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와 KAIST, 중앙일보가 공동으로 개최한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심포지엄’이 11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열렸다. 이날 수상자, 시상자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지난해 스타트업 얼라이언스가 2020~2022년 3년 간 157건의 스타트업 인수합병(M&A) 사례를 분석한 결과 대기업 CVC가 인수한 회사에 선투자 했거나 동종 기업에 투자한 경험이 있는 경우가 75% 이상이었다. 신세계그룹의 CVC 시그나이트파트너스의 임정민 투자총괄은 연사 강연을 통해 “CVC는 투자를 통해 모회사가 타깃하는 시장 정보를 미리 분석해준다”며 “모회사와 스타트업을 연결시켜주는 ‘레이더’ 역할”이라고 짚었다. 그는 “다만 미국 CVC의 60% 이상이 스타트업 초기 단계에 투자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본다면, 한국의 CVC는 65% 정도가 이미 성장단계에 접어든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어 좀 더 보수적인 편”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기조연설자였던 일본 DG다이와벤처스의 나카지마 준이치 대표, 일본벤처캐피털협회의 고지 토모타카 회장은 일본 현지 창업 생태계 상황을 전했다. 일본 정부는 2013년 이후 투자 확장, 규제 완화 정책 등을 추진하며 2027년까지 스타트업 투자를 10조엔(약 94조원)까지 늘리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고지 토모타카 회장은 “일본 VC 펀드 규모는 지난 10년 간 10배 이상 증가했다”며 “같은 기간 대학 출신 딥테크 스타트업 수는 3.5배 증가했다”고 소개했다.

서울대와 KAIST, 중앙일보가 공동으로 개최한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심포지엄’이 11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열렸다. 이날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비서관, 유홍림 서울대 총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이광형 KAIST 총장,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왼쪽부터)이 비전선포식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그동안 한국은 정부 계획과 규제에 의존하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모델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동시에 위험 부담은 회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혁신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기 위한 역량을 모을 때”라고 말했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현재 교수 창업의 서류 절차를 간소화 하고,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휴학 제한을 없애는 등 여러 제도를 개선한 결과 학교 안에서 1년에 130개 정도의 스타트업이 창업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은 “대학과 정부 출연연(출연연구기관)에서 태어난 딥테크 스타트업들이 성장하고 있고, 이 가운데 기업공개(IPO)에 성공하거나 M&A를 통해 대기업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자리잡은 곳이 적지 않다”며 “레인보우로보틱스 등의 사례에서 아직 미숙한 한국 혁신 스타트업 생태계와 성장 한계에 직면한 우리 대기업을 위한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중앙일보와 서울대, KAIST가 공동으로 개최한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심포지엄’이 11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열렸다. 이날 오후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대기업과 CVC의 역할’을 주제로 대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딥테크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대기업과 CVC의 역할’을 주제로 한 토론 세션에서는 혁신창업 생태계에 대한 여러 논의들이 오갔다. 패널로 참석한 허준녕 GS벤처스 대표는 “기술 분야는 사업 과정에서 자본이 많이 투입되기 때문에 비즈니스 모델(BM)을 잘 만드는 것보다 연구실에서 나와 어떤 파트너와 함께 할지 로드맵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김부기 스탠다드에너지 대표는 “창업 초기에는 문제를 직접 풀려고만 했는데, 어느 순간 (VC 등) 같이 풀 수 있는 사람들을 찾는 게 중요해지는 시점이 오더라”며 “지금도 그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한국연구산업협회 등이 후원했다.

홍상지·김민정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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