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투자 임박했다던 발란···“시장서 도는 얘기 주섬주섬 정리한 것”
-피투자사가 투자 규모 특정 이례적
-투자측 확인요청에 ‘갈지자 해명’
그러나 지목된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선 “유의미한 논의가 없었다”라고 밝히는 등 진성 투자 여부를 두고 논란이 커졌다. “수백억원대 규모 투자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던 발란 측도 돌연 “(투자 유치 관련 정보는) 시장에서 돌던 투자 분위기만 전체적으로 에둘러 정리한 뒤 텍스트로 주섬주섬 얘기한 것이 전부”라며 말을 바꿔 논란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해당 기업 “사실무근”
그러나 매경이코노미 취재 결과, 해당 기업은 “유의미한 투자 논의 자체가 없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발란이 투자 유치가 임박했다고 밝힌 주요 3개 기업(알리바바·포이즌·조조타운) 가운데 중국 알리바바와 포이즌 측은 “본사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일본 조조타운 측은 “(보내준) 한국 뉴스에 놀랐으며 기사 원문을 공유해주면 좋겠다”라며 “발란에 투자가 이뤄진 적 없으며 경계감을 환기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실제 투자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고 외부 노출을 꺼려 이들 기업에서 “사실무근”으로 일관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투자 관련 소식은 일부 언론 보도 뒤 발란 측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투자규모 등 논의 내용을 외부에 알리면서 불거졌다.
양 측 설명이 대조를 이루면서 벤처캐피탈(VC)과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시장 일각에서는 발란이 ‘재무 절벽’ 상황을 버티기 위해 이런 전략을 쓴 것일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앞서 급작스런 폐업으로 피해를 키웠던 알렛츠 역시 티메프 사태 이후 판매사 이탈 조짐이 보이자 산업은행 투자가 임박했다며 임직원들을 달랬지만, 실제론 신규 투자 요청이나 추가 투자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VC업계를 중심으로 이런 의구심을 제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통상적인 투자 유치 프로세스에 비춰, 극도로 민감한 투자 유치 과정을 피투자사인 발란이 ‘보도 참고자료’ 형식을 빌려 스스로 공개한 것부터 석연치 않다는 진단이다. 피투자사가 투자 계약서 법인 인감 날인은 물론, 자본금 납입이 이뤄지기도 전 투자 규모를 특정하고 이를 외부에 알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투자 업계 중론이다.
VC업계 전언을 종합한 대체적인 투자 프로세스는 이렇다. ①딜발굴 ② 회사방문(IR듣기)③퀵리뷰(Quick Review) 및 초기 거래 보고서(Initial Deal Report) 등 사내 회의자료 작성 ④대표이사 IR 및 딜 텀싯(Deal Termsheet) 작성 시작 ⑤의견수렴 후 텀싯 완료 및 방향 결정 ⑥심사보고서 작성 ⑦ 예비투자심사위원회 및 지적사항 보완 ⑧FDD(재무실사) ⑨본투자심위원회 및 투자 본계약 ⑩자금납입(투자) 등 순서로 이뤄진다.
발란처럼 시리즈C 이후 투자의 경우, 피투자사와 투자의향 기업이 투자계약 관련 주요 사항을 담은 텀싯을 주고받으며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가 많다. 텀싯은 투자 본계약의 뼈대가 되는 기초문서다. 투자 계약을 상호 검토하기 전 기업가치, 투자금액, 주식종류, 주금 납입 일정 등을 미리 정리한 것이다. 텀싯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NDA(비밀유지약정서)도 함께 작성된다. 투자 논의와 실사 과정에서 영업 관련 핵심 정보가 노출되므로, 투자 본계약 체결 전 NDA를 맺는 게 통상적인 투자 프로세스다.
이에 비춰, 피투자사(발란)가 투자자 포지션(SI 혹은 FI)이나 상세 투자 규모 등을 스스로 밝히는 것은 좀처럼 접하기 힘든 일이라고 다수 전문가가 입을 모은다.
매경이코노미는 발란 측에 ‘3개 기업과 텀싯을 주고받거나, 기업가치 특정을 위해 텀싯을 기반으로 논의가 이뤄진 과정’과 ‘투자 논의 외부 공개에 관해 3개 기업에 동의를 구했는지 여부’ 등에 관해 질의했으나 발란 측은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발란 측은 “(기업가치를 특정한 것은) 시장에서 간접적으로 들은 얘기만 두루뭉술하게 전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발란 측 설명대로면, 판매사 불안감이 확산하는 가운데 ‘시장에서 돌고 있는 불확실한 투자 정보’를 언론에 배포했다는 의미다.
명품 브랜드 유통사로, 발란 3대 주주(지분율 7.3%)인 리앤한이 보유 지분 전량(약 20억원)을 손상차손 처리한 것도 의구심을 키우는 대목이다. 리앤한은 프리 시리즈A 단계에서 발란에 20억원을 투자했지만, 회수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최근 이를 전액 손상처리했다. VC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 투자 논의가 지난해부터 오갔다는데, 주요 주주가 보유지분 전량을 손상처리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최근 강조한 ‘분기 흑자’ 사실 여부에 대해서도 발란 측은 뚜렷한 근거를 내놓지 못했다. 발란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해 4분기 이후 올 상반기까지 연속 흑자’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발란은 비상장사로 분기 실적 공시 의무가 없으며 ‘흑자의 주어’를 공개하지 않아 뒷말을 낳았다. 발란 측은 흑자의 출처를 밝혀달라는 질의에도 ‘EBITDA(상각전 영업이익) 기준 흑자 수준’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아직 정확한 수치를 내는 것이 부담스럽다”고만 밝혔다.
‘분기 흑자’ 사실 여부도 논란
그러나 플랫폼을 떠나는 사업자가 늘고 이를 급히 메우는 과정에서 입점 문턱을 대폭 낮췄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정황도 목격된다. 명품 플랫폼 판매사가 모인 온라인 카페 ‘돈품사’에서는 ‘몇 년 전에는 입점 신청을 해도 쳐다보지도 않던 발란에서 갑자기 입점 안내 절차를 보내와 당혹스럽다’거나 ‘느닷없이 입점 승인됐다고 연락이 왔는데 어떡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등의 글이 잇따른다.
A 발란 판매사 관계자는 “발란에서 이뤄지는 거래를 막으려 고의 품절 처리하거나 도저히 구매할 수 없는 가격에 올려놓는 판매사도 있다”고 털어놨다. 가령, 발란 사이트에는 N브랜드 래깅스가 2억원을 웃도는 호가에 올려져 있다. 또 다른 판매사 관계자는 “소비자 구매확정 뒤 정산이 이뤄진다며 갖은 핑계로 차일피일 정산을 미루거나 소비자가 보기 힘들게 구매확정 버튼 자체를 매우 작게 만드는 등 불안감이 가시지 않아 일단 입점 리스트에서 나왔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발란 손익계산서에서 판매촉진비가 ‘마이너스’로 잡힌 것도 판매자 이탈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게 다수 전문가 시각이다. 회계사 출신 애널리스트는 “손익계산서상 비용항목에서 (-)가 표시되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선집행됐던 판매촉진비 가운데 일부가 회수됐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회계법인 관계자는 “전기에 판매 관련 비용 인식을 과다하게 했다가 제품 자체가 팔리지 않아 일부를 환입했을 수 있다”고 짚었다.
VC업계에서는 발란이 기존 투자자로부터 사실상 ‘구제금융’ 성격 투자를 받는 것 외엔 달리 묘수가 없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발란이 낮은 전환가액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하고 기존 투자자가 이를 십시일반 받아가는 식이다. 동종업계 플랫폼 기업 트렌비가 이렇게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최근 트렌비가 발행한 CB 전환가액을 고려하면 이 회사 기업가치는 2년 전보다 약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VC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에서 즐겨 쓰는 자금유치방식은 상환전환우선주(RCPS)지만, RCPS 상환은 피투자회사가 배당가능이익이 있어야 가능하다”라며 “발란이 처한 재무적 상황을 고려하면 기존 투자자에게 최대한 유리한 방향으로 자금 조달이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 봤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 같은 VC업계 투자행태가 산업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데 일조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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