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로 시작한 해리스·트럼프…94분 뒤 인사도 없이 헤어졌다 [미 대선 TV토론]

김형구, 김하나 2024. 9. 1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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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ABC 방송이 주최한 대선 후보 토론에서 카멀라 해리스(오른쪽)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카멀라 해리스입니다. 좋은 토론 해봅시다.”
“반갑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10일(현지시간) 미국 대선 후보 토론이 열린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국립헌법센터 내 스튜디오. 무대에 들어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순간 당황한 듯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내 오른손을 내밀며 악수에 응했다. 미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한 뒤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직접 대면한 건 이날이 처음이다.

지난 6월 27일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TV 토론 때는 악수 없이 곧바로 설전이 시작됐다. 이때와 달리 해리스 부통령이 먼저 악수를 청한 것을 두고는 기선제압을 시도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미 언론은 대선 TV 토론에서 민주ㆍ공화 양대 정당 후보가 악수를 한 것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맞붙은 2016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카멀라 해리스(왼쪽)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국립헌법센터에서 열린 대선 토론회 초반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토론 초반은 비교적 침착한 톤을 유지한 트럼프가 페이스를 주도하는 듯했다. 경제와 이민, 낙태 문제 등을 놓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트럼프가 발언할 때 해리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간혹 실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특히 트럼프가 “해리스는 마르크스주의자”라며 “그녀의 아버지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교수다. 그리고 그는 해리스를 잘 가르쳤다”고 비아냥대자 해리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한 손을 턱에 괴고는 고개를 뒤로 젖히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트럼프가 발언할 때 해리스는 3m 사이의 트럼프 옆 모습을 쳐다보며 황당하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트럼프는 시종 해리스에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정면만 응시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10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국립헌법센터에서 열린 대선 토론회에서 한 손을 턱에 괸 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AFP=연합뉴스

토론 중반 이후 트럼프는 해리스의 도발적인 언사에 평정심을 잃으며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보였다. 해리스는 자신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한 토론 주제로 꼽힌 국경 정책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화제를 돌려 “사람들이 트럼프 (유세) 집회가 지루해 일찍 떠나고 있다”고 자극했다. 그러자 트럼프의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집회 얘기에 대해 답하고 싶다”며 “사람들은 제 집회를 떠나지 않는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큰 집회를 열고 있다”고 반박했다.

트럼프가 발끈하는 모습을 보인 때는 해리스가 “세계 지도자들은 트럼프를 비웃고 있다”며 화를 돋우는 장면에서였다. 해리스는 “부통령으로서 전 세계를 돌았는데 각국 지도자들은 트럼프를 비웃고 군 지도자들과도 얘기를 나눴는데 그들은 당신이 수치스럽다고 말한다”고 공격했다.

그러자 트럼프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하더니 속사포 같은 답변이 쏟아져 나왔다. 트럼프는 “세계 지도자들에 대해 말하겠다.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하나인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전 세계가 폭발하는 이유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며 “중국은 트럼프를 두려워했고 북한도 두려워했다”고 언성을 높였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해리스는 계속해서 트럼프를 짜증나게 했다”며 “처음엔 차분하고 침착한 태도였지만 해리스가 몰아붙이자 점점 흥분했다”고 평했다. CNN도 “해리스의 전략은 트럼프 발언이 궤도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것이었다”며 “해리스는 토론 내내 트럼프에게 미끼를 던졌고 트럼프는 계속해서 덥석 받았다”고 짚었다.

트럼프는 토론 진행을 맡은 ABC 간판 앵커 데이비드 뮤어와 린지 데이비스가 중간중간 던진 팩트체크에 신경이 거슬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트럼프는 낙태권 이슈와 관련해 “민주당 부통령 후보(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는 '출생 후 처형(execution after birth)'도 괜찮다고 말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린지 데이비스가 “아기가 태어난 뒤 죽이는 것을 합법화하는 주는 없다”고 하자 얼굴이 굳어졌다.

트럼프는 또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수백만 명의 불법 이민이 폭증해 범죄가 치솟고 있다”는 발언에 대해 진행자 데이비드 뮤어가 “FBI(연방수사국)는 미국 내 폭력범죄가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고 지적하자 곧바로 “FBI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악수와 함께 토론을 시작한 두 사람은 94분의 토론이 끝난 뒤에는 악수 없이 등을 돌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대선 토론회를 마친 뒤 스핀 룸(spin room, 토론 전후 정치인들과 언론이 만나는 공간)에 나타나 토론 결과를 자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는 토론이 모두 끝난 뒤 건물 한쪽에 마련된 스핀룸(spin room, 토론 전후 정치인들과 언론이 만나는 공간)에 ‘깜짝 등장’해 “이번 토론이 역대 최고였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면서 “3대1로 싸웠다”고 했다. 경쟁자 해리스는 물론 자신에게 ‘송곳 질문’을 던진 ABC 진행자 2명이 적대적이었다는 취지로 한 말이었다.

트럼프는 이어 “해리스는 토론을 또 하고 싶어하는데 그것은 해리스가 패배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우리가 한 번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스핀룸을 찾은 이유에 대한 물음에는 “그냥 오고 싶었다. (토론) 결과에 만족한다”고 했다. 현장에 있던 한 현지 매체 기자는 “트럼프가 토론이 끝난 뒤 분이 덜 풀린 모양”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토론에서 총 발언 시간은 트럼프가 43분 03초로 해리스(37분 41초)보다 많았지만 상대를 공격하는 데 든 시간은 거꾸로 해리스(17분 25초)가 트럼프(12분 54초)를 앞지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6월 27일 바이든과 트럼프 간 토론에서는 트럼프가 총 발언 시간(41분 02초 대 36분 12초)에서도, 상대 공격 시간(18분 4초 대 12분 52초)에서도 앞선 것과 대조적이다.

이슈별로 놓고 보면 해리스는 ▶경제(6분 6초) ▶낙태(3분 40초) ▶민주주의(3분 16초) ▶외교정책(2분 33초) 순으로 발언을 많이 했고, 트럼프는 ▶이민(4분 34초) ▶경제(4분 13초) ▶낙태(4분 8초)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3분 46초) 관련 발언에 시간을 많이 쓴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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