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에 몰입한 정해인 "어머니도 낯설다고 해"
[이선필 기자]
▲ 영화 <베테랑2>에서 신입 형사 박선우를 연기한 배우 정해인. |
ⓒ CJ ENM |
류승완 감독이 오랜 시간 고민해 내놓은 <베테랑2>는 캐릭터나 사건 전개 면에서 보다 복잡하고 어두워졌다. 공권력을 비웃듯 사적 정의 구현을 빌미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해치는 유튜버를 위시한 사이버 렉카와 대중 심리와 맞물려 영웅화된다. 그럴수록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고 박신우는 뒤에서 조용히 미소를 짓는다.
사이코패스를 연구하다
1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해인은 "그간 연기했던 캐릭터 중 가장 빠져나오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물불 안 가리고 범인을 때려 눕히는 모습이 서도철에 눈에 들어 강력계로 오게 된 박선우가 알고 보니 의도적으로 모든 정보를 손에 넣고 판세를 흔드는 악한이었기 때문이다. 다분히 사이코패스 기질이 강한 인물로 정해인은 해석하고 있었다.
"나르시시즘도 있고, 원래의 목적과 결과를 얻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자신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사회를 보며 쾌감을 느낀다고 할까. 스스로 해치라고 이름 붙이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관심 가져주고 하니 그걸 즐기는 것이다. 그가 정의로워 보이는 것도 감독님이 의도한 바였다. 그런데 정의는 누가 정의하는 것인가. 거기에 의문점을 갖게끔 하는 셈이다. 영화를 보시면 아마도 얘기할 거리가 많을 것이다. 나에게 선인 게 다른 사람에겐 아닐 수도 있잖나."
개성 있고, 난도 높은 액션 연기보다 정해인 입장에선 캐릭터와 동기화되는 게 더 어려웠다고 한다. 서사적으로 박선우의 과거가 설명되는 게 아니기에 스스로 상상해보기도 했다고. "감독님께 상의했더니 오히려 그런 걸 만들지 말고, 그냥 주어진 대본과 상황에 집중하자는 답이 돌아왔다"며 정해인은 말을 이었다.
"박선우를 준비하며 적어놓은 것들이 있다. 판을 짜놓길 좋아하고, 생각대로 상황이 전개될 때 쾌감을 느끼는 인물이었다. 계획이 틀어지면 분노를 주체 못하게 된다. 그가 경찰이 된 것도 상황을 보다 극적으로 만들기 위함이라 생각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범죄자들이 프로파일러와 면담하는 영상들을 찾아봤다. 공통 특징이 다들 많이 안 움직이더라. 시선은 상대방의 눈을 향하고 있고. 제가 작품 끝날 때마다 MBTI 검사를 하는데 매번 바뀐다. 이번엔 일부러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려 했다. 사람들을 의도치 않게 힘들게 할까봐. 어머님도 제가 이번에 너무 낯설다고 하실 정도였다.
▲ 영화 <베테랑2> 스틸컷 |
ⓒ CJ ENM |
일종의 메소드 연기였다. 그 영향일까. 대본에 없는 몇 가지 애드리브를 의도치 않게 하기도 했다. 정해인은 "저도 모르게 가짜 해치에게 안녕하고 인사가 나오더라. 몇몇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한 행동들이 있는데 감독님이 좋아해주셨다"고 말했다.
류승완 감독 영화의 인장과도 같은 액션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정해인은 "감독님처럼 안전하게 그리고 각 배우의 특징을 살린 액션 지시를 하는 분이 있을까 싶었다"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연기에선 많이 열어주시는데 액션 연기만큼은 철저한 콘티를 짜고, 명확하게 지시하신다. 배우 분석이 탁월하신 것 같다. 이번에 액션 연기의 참맛을 봤다(웃음). 이게 혼자 하는 게 아닌 함께하는 안무 같다는 느낌이다. 누구 한 명이 잘하겠다고 오버하면 상대방이 다칠 수도 있어서다. 신뢰를 바탕으로 약속된 안무를 하는 경험을 했다.
▲ 영화 <베테랑2>에서 신입 형사 박선우를 연기한 배우 정해인. |
ⓒ CJ ENM |
"현장에서 많은 걸 배웠다. 가장 놀란 건 제 모습을 찍는 장면에서도 상대역을 해주시는데 마치 선배님 장면을 찍는 것 이상으로 해주셨다. 체력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는데 그렇게까지 하는 게 쉽지 않다. 안 그런 배우분들도 많다. 힘을 아끼거나 대역을 세워 놓는 분들도 많은데 모든 신에서 상대역을 해주셨다. 몇십 년 뒤에 제가 계속 연기를 하고 있다면 선배님께 배운 걸 그대로 해보고 싶다."
최근엔 티빙 드라마 <엄마 친구 아들>(아래 <엄친아>)로 로맨스 연기도 보여주고 있는 그다. "<D.P.>, <커넥트>, <설강화>에 이어 <베테랑2>를 하며 몇 년 동안 현장에서 역할상 웃을 수 없었는데, 이번에 많이 웃는 것 같다"며 "8월 말에 <엄친아> 촬영이 끝났으니 이제 <베테랑2> 홍보에 추석 연휴를 반납하면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 말했다.
"1편이 개봉했던 2015년에 전 풋내기였다. 그 영화를 시사회에서 볼 수 있는 정도도 아니었다. 돈주고 극장에서 낄낄거리며 봤던 기억이 있다. 권선징악을 이렇게 통쾌하게 그리다니. 마지막 (마동석 선배의) 아트박스까지 더해서 정말 재밌었다.
9년이 지난 지금 제가 이 작품에 참여한 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첫 미팅 때 조심스럽게 감독님께 여쭤보기도 했다. 절 지켜보고 계셨다더라. 이번 추석 때 많은 분들이 극장에 와주시면 좋겠다. 가족끼리 봐도 친구들과 봐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보시고 여러 이야길 하실 수 있을 것이다.
제가 사이코패스 역할이지만 사적 응징은 법과 제도를 벗어난 일이기에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해선 안된다는 생각을 강력하게 갖고 있다. 다들 그랬으면 좋겠다. 사적 복수나 응징이 옹호받으면 안된다. 법과 질서, 사회적 약속이 있는데 사적으로 제재하는 건 위험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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