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점심때마다 올리는 사진, 이건 정말 부러웠다
[이동철 기자]
제 신혼생활은 서초구에서 시작했습니다. 강남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다니 부러우신가요? 부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집값이 고공행진 하던 강남 노른자 땅 아파트가 아니라 아내가 결혼 전 전세로 거주하던 조그만 빌라에서 거주비를 아끼려 살림만 합쳤습니다.
아내의 일터는 서울시청 주변에 있습니다. 1호선과 2호선이 동시에 지나는 시청역에서 걸어서 2분 거리입니다. 집에서 7분 거리 전철역을 이용해 한번 환승하더라도 40분 이내에 일터 바로 앞에 도착합니다.
제 일터는 경기도 부천시에 있습니다. 고속버스터미널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면 1시간 정도 걸려 일터 주변 전철역에 도착합니다. 전철역에서 걸어서 10분을 더 가야 사무실이 나옵니다.
7호선을 갈아타는 고속터미널역에서는 사람에 깔려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매일 체험을 했습니다. 7호선으로 갈아타면 일자리가 밀집된 가산디지털단지역까지는 시루의 콩나물처럼 사실상 사람에 밀리고 깔리면서 움직입니다.
그래도 서울에서 경기도로 출근하는 저는 좀 나은 편이라고 합니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1호선과 3호선, 4호선, 7호선을 통해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은 출퇴근 시간에 사람에 끼어 까치발을 하고 숨만 쉬고 출근한다고 하더군요.
▲ 아내가 보내준 점심 사진 |
ⓒ 이동철 |
제 일터 주변에는 식당이 그리 많지 않고 구내식당도 없어 근처의 아파트형 공장이 밀집한 산업단지 구내식당을 이용합니다. 정오쯤이면 약 5개의 구내식당은 점심 식사를 위해 몰린 노동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가격은 한 끼에 6000원~7000원으로 메뉴는 대개 냉동식품과 가공식품이 주를 이룹니다. 식품위생법에 따라 구내식당으로 불리는 집단급식소에서는 영양사를 두기는 하지만,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비해 비용의 한계로 가급적 저렴한 재료를 통해 대량으로 손쉽게 요리할 수 있는 음식이 주를 이룹니다.
구내식당 이용 노동자들의 불만은 음식의 종류가 다양하지만, 신선도가 떨어지고 먹을 것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공단 구내 식당들은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이용자들이 직접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 지난 10일 오전 서울 광진구 7호선 군자역 승강장이 열차를 이용하려는 시민들로 혼잡한 모습이다. |
ⓒ 연합뉴스 |
고용노동부는 기업체 노동비용을 매년 조사해 결과를 발표합니다. 조사의 항목 중 기업이 노동자 1명에게 지출하는 '법정 외 복지비용'이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식사비나 휴양, 문화, 교통비 등이 포함됩니다. 2022년 기준 고용노동부의 조사에 따르면 10인 이상 기업체의 노동자 1명당 '법정 외 복지비용'은 월 24만 9천 600원이었습니다.
이 '법정 외 복지비용'은 기업의 규모에 따라 차이가 큽니다. 300인 미만 기업체의 '법정 외 복지비용'은 노동자 1인당 13만 6천 900원입니다. 300인 이상 기업은 어떨까요? 놀라지 마십시오. 3배가 넘는 40만 900원입니다.
이 격차는 갈수록 커집니다. 2012년에는 300인 미만 기업에서 1인당 '법정 외 복지비용'이 16만 3000원이었고 300인 이상 기업이 25만 500원이었습니다. 중소기업은 복지비가 줄어들고 대기업은 늘어난 겁니다. 그래서 대기업은 예능 프로그램이 연예인을 동원해 식사 체험을 할 정도로 영양 만점의 화려한 음식을 노동자에게 제공하며 직장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최신형 버스를 통해 안전하고 쾌적한 통근을 책임집니다.
식사나 통근에 대한 지원은 사업주의 법정 의무 사항이 아닙니다. 그러나 균형 잡힌 식사를 할 권리나 안전하고 쾌적한 이동은 노동자 건강권의 기본이 됩니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노동자의 건강권을 챙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 대한 보편적 무상급식 지원이나 대학생에 대한 한 끼 1천 원 아침밥 지원 정책처럼 경제활동의 주축인 노동자가 건강하게 식사할 권리에 대해서도 보편적으로 보장될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가정의 경제력이나 기업의 복지비용 지불능력에만 맡겨 놓아서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지켜지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출퇴근의 편리성은 기업이 인력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교통의 요지에서 떨어진 외곽지역 통근이 불편한 산업단지에 있는 일터에서 일하려는 구직자는 별로 없습니다. 경제적 이유로 불가피하게 입사하더라도 이직률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도심 외곽의 산업단지에 입주한 중소기업들은 걱정입니다.
▲ 진주시, 산업(농공)단지 무료 통근버스 운행. |
ⓒ 진주시청 |
한국산업단지공단의 '산업단지 중소기업 청년교통비 지원사업 효과성 분석' 자료에 따르면 이 정책이 지원되는 기업의 월평균 청년 노동자 퇴사율은 0.87%인데 비해 미지원기업의 퇴사율은 0.96%였고, 미지원기업에 비해 지원기업의 고용유지율은 11.89% 높았다고 합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이 정책은 예산 문제로 아쉽게도 종료되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도시 외곽에 위치해 접근성이 떨어져 출퇴근에 불편을 겪는 노동자들을 위해 입주업체 협의회 등이 전세버스를 공동 임차해 통근버스로 운영할 경우 지방자치단체와 공동으로 예산을 부담해 버스의 임차료를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진주시를 비롯해 산업단지가 입주한 지방자치단체가 이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칭찬할 일입니다.
노동자의 건강한 식사권을 위해 광주광역시는 지난해 3월부터 '근로자의 건강을 위한 반값 조식'이라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광주광역시 하남산업단지 노동자들에게 구매비용의 50%를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해 신선한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아침 식사로 제공한 겁니다.
2023년 연말까지 1일 평균 약 100여 명이 이를 이용했습니다. 반응이 나쁘지 않아 올해 4월부터는 첨단산업단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확대했다고 합니다. 메뉴의 다양성이 떨어지고 지원의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국가가 노동자의 건강한 식사권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평가할만합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더 세심하고 다양한 노동자의 건강권을 지킬 수 있는 복지정책을 발굴하고 기획해 내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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