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이 쓴 '묘갈명' (4)
[김삼웅 기자]
▲ 김해에 있는 남명 조식 선생 동상. |
ⓒ 김해시청 |
능히 세상을 잊지 못해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근심하더니 매양 달 밝은 밤이면 홀로 앉아 슬피 노래하고 노래가 끝나면 눈물을 흘렸으나 곁에 있는 이들이 그 까닭을 알지 못했다.
공은 만년에 학문이 더욱 진보하고 조예가 정심하였으며 사람을 가르칠 때에는 각기 그 재능에 따라 독실하게 하였으니, 질문이 있으면 반드시 의심스런 뜻을 분석하여 그 말이 추호도 남김이 없어 듣는 이로 하여금 환히 통달하게 한 다음에야 그만 두었다.
또 배우는 이를 경계하여 말하기를 "지금의 학자들이 지극히 가까운 것을 버리고 높고 먼 것을 좇으니 병통이 적을 뿐만 아니다. 학문이란 처음부터 부모를 섬기고 형을 공경하며 어른에게 공손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는 사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만일 여기에 힘쓰지 않고 갑자기 성명(性命)의 오묘함을 궁구하고자 하면 이것은 사람의 일(人事)에서 하늘의 이치(天理)를 구하는 것이 아니니 결국 실지로 얻음이 없을 것이다." 하였다.
옛 성현의 유상(遺像)을 그려 놓고 아침마다 배알하며 엄숙히 공경하기를 스승 앞에 앉아 가르침을 듣는 듯이 하였다. 일찍이 말하기를 '학자는 잠을 많이 자지 말 것이니 사색 공부는 밤중에 더욱 전념할 수 있다' 하였다. 매양 글을 읽다가 긴요한 말이 있으면 반드시 세번 거듭 읽었으며 붓으로 이를 기록하여 <학기(學記)>라 이름했다. 손수 신명사(神明舍)를 그리고 인하여 명(銘)을 지었으며, 또 천도(天道), 심(心), 성정(性情) 및 도(道)와 덕(德)에 나아가는 체계와 등급을 그렸으니 그런 것이 하나만이 아니었다.
또 창과 벽 사이에 경의(敬義) 두 글자를 크게 써서 학자에게 보이고 또 스스로 경계하였으며 병이 위독함에도 오히려 경의설(敬義說)을 들어 간곡히 제자에게 훈계하였다. 임종시에 부인들을 물리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죽음을 편안히 여겨 마음의 동요없이 조용히 잠자듯이 하였다.
임금이 제문을 내리고 곡식을 부의했으며 사간원 대사간으로 증직하였다. 부인은 남평(南平) 조씨(曺氏)로 충순위(忠順衛) 수(琇)의 따님이니 공보다 먼저 별세하였다. 아들 딸 둘을 낳았는데 아들은 일찍 죽었고 딸은 만호(萬戶) 김행(金行)에게 시집가 딸 둘을 낳았으니, 맏사위 김우옹(金宇顒)은 현재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이고 둘째 사위 곽재우(郭再祐)는 학문을 닦고 있다. 둘째 부인에게서 삼남 일녀를 낳았으니 아들은 차석(次石) 차마(次磨) 차정(次矴)이고 딸은 제일 뒤에 태어나 어리다.
아! 공은 학문에 독실하고 실행에 힘썼으며 도를 닦고 덕에 나아가 깊은 조예와 넓은 견문은 비견할 이 드물었으니 또한 앞 시대의 어진 이에 미루어 짝이 되고 후세 학자의 큰 스승이 될만 하나 혹자들이 알지 못하여 그 논평이 상이하다.
그러나 어찌 반드시 금일의 사람에게만 알아 주기를 구하겠는가! 단지 백 세(百世)를 기다려 아는 이만이 알아 줄 뿐이다. 내 외람되이 벗의 반열에 끼어 사귄 지 제일 오래인지라 전후에서 덕행을 보아 또한 남들이 미처 알지 못한 바가 있다. 이는 모두 눈으로 본 것이지 귀로 들은 것이 아니기에 가히 믿고 전할 수 있다.
명(銘)하여 이르기를,
하늘이 덕을 내려 어질고 곧았으니, 거두어 몸에 지녀 스스로 쓰기에 넉넉했네. 남에게 펴지 못해 은택 보급 못했으니, 시세(時勢)인가 명운(命運)인가, 백성들 복 없음이(無祿) 슬플 뿐!
우인 청년 성운(友人 昌寧 成運) 지음.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진짜 선비 남명 조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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