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대학과 브렉시트

전사랑 2024. 9. 1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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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사이먼 쿠퍼 지음 <옥스퍼드 초엘리트> 를 읽고

[전사랑 기자]

영국만큼 허울이 좋은 나라가 지구상에 있을까? 왕실과 상류층을 둘러싼 전통적이고 우아한 이미지는 미디어에서 영국만의 고유한 문화로 아직까지도 소비되고 있다. 그 이미지는 너무나 정교해서 영국 그 자체와 동일시되곤 한다.

하지만 영국에 조금이라도 살아본다면 그 이미지는 일반인들에게는 결코 닿지 않는 0.001프로의 귀족계급의 삶일 뿐이고 일반인에게 익숙한 풍경은 영국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혹은 <빌리 엘리엇>에 더욱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국 미디어에서 재벌이 소비되듯, 영국도 왕족, 귀족, 상류층이 소비되는 것일 뿐, 일반인들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영국을 지배해 온 계급은 그들의 장구한 역사만큼이나 공고하고, 대중과는 유리되어 있다.

옥스퍼드 출신 저널리스트 사이먼 쿠퍼는 <옥스퍼드 초엘리트>에서 왜 영국이, 캐매런 총리와 보수당 의원들이 브렉시트라는 우매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상관관계를 분석한다.
▲ <옥스퍼드 초엘리트> 표지 <옥스퍼드 초엘리트> 내지
ⓒ 전사랑
대다수의 영국인들 뿐만 아니라 외국인의 입장에서도 이해할 수 없었던 영국의 브렉시트 선택을 저자는 귀족-사립학교-옥스퍼드 출신의 전통적인 지배계급, 보수당 정치인들에게서 찾고 있다.
"대부분의 사립학교 학생들은 거의 그들의 계급 안에서 성장한다. 보리스 존슨의 아버지인 스탠리 존슨은 옥스퍼드 입학 전에는 공립학교 출신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 자신도 이 계급의 사람들을 '느슨하게 짜인 중산층 대졸자들의 연합이며, 예의 없이 사립학교를 나와 똑같은 말투와 우월의식을 지니고 있고 같은 정당을 지지한다'고 묘사했다.... 옥스퍼드에 들어오면 이들의 인맥은 자동으로 움직이고, 미처 몰랐던 다른 상류층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이들에게 다른 계급의 학생들은 필요 없다는 의미였다..."

쿠퍼는 옥스퍼드에는 다양한 계급이 섞여 있을지 몰라도, 사립학교 출신 상류층 자제들은 그들만의 배타적인 '벌링턴 클럽'에서 자신들만의 입지를 공고히 했으며 정치적인 역량을 다지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어떤 폐쇄적인 집단이 특권층을 장악할수록 그 사회는 가파르게 쇠퇴하고 구시대적 사고로 인해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국가적으로도 정치적 실책을 면치 못한다. 저자가 "만약 존슨, 고브, 해넌,... 리스모그가 열일곱 살에 옥스퍼드로부터 입학을 거절당했다면 브렉시트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단언하는 이유다.

이튼, 옥스퍼드에 대한 환상

<옥스퍼드 초엘리트>에서 보수당의 정치적 특권층이 공고해지는 과정도 흥미로웠지만, 옥스퍼드 대학교 자체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인 시각은 더욱 신선했다. 영국의 정치뿐만 아니라 이튼 스쿨과 옥스퍼드 자체로 이어지는 교육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학교들에서 라틴어, 대영제국의 입장에서 쓰인 역사 등은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입장을 공고히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처럼 현대 사회에 동떨어진 상아탑과 같이 되는 성향과 토론에 치우친 문화 덕분에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결론에 도달하기보다 궁극적으로 말장난이나 화려한 언변과 같은 표면적인 것에 더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보리스 존슨은 탁월하게 이를 받아들였다.

".... 존슨은 이튼에서 상대방의 논리를 무시함으로써, 더 나은 논리를 가진 상대방을 제압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청중을 지루하지 않게 하고 적절히 농담을 섞고 계산된 저음의 목소리와 인신공격성 농담으로 토론에서 이기는 방법을 발견했다."

영국이 세계 최고의 과학자, 공학자, 수학자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옥스퍼드 출신 관료들과 정치인들은 철학, 정치, 경제 전공이 대다수이며 브렉시트를 주도했던 모든 옥스퍼드 출신 보수당원들은 고지식한 과목을 전공했다(보리스 존슨은 고전문학, 리스모그와 해넌은 역사학, 커밍스는 고대사와 현대사).

때문에 실용적인 판단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나아가 이들은 실용적인 판단을 하는 것에 서툴 뿐만아니라, 이 특권층은 자신의 세력을 공고히 하는 데에만 관심 있을 뿐이다.

특권층을 공고히 하는 대학은 없어져야

궁극적으로 저자는 지배계층을 재생산하고, 잘못된 결정으로 나라를 위태롭게 할 뿐인 정치인들을 양성하고 있는 옥스퍼드의 학부 과정을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대신 성인들을 재교육하거나 모든 계층 청소년들을 위한 여름학기 과정, 그리고 대학원 과정을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 주장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옥스퍼드라는 브랜드를 더 많은 일반인들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특권적 경험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특권층의 사립학교 출신 학생들은 미국으로 유학을 갈 것이고 장기적으로 세습적 지배계급도 영국에서 이탈될 것이라는 희망섞인 주장으로 마무리한다.

대학 자체에 집중시켜 한 사회를 분석한 이 책은 매우 흥미롭다. 전통 있는 고풍스러운 학교에 대한 이상을 깨고 현실을 알려주는 이 책에서 옥스퍼드는 곧 영국의 상징이기도 하다. 저자는 영국이 누렸던 수백 년 전의 위상에 사로잡혀 현실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경고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상을 도려내고 버려야 할 것, 도려내야 할 것은 도려내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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