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자치활동, 자유인들의 불안한 실험
[추교준 기자]
1. 형식적인 학생 자치를 넘어서
수년 전 광주 모 고등학교 철학 특강 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른들은 이 땅의 청소년들이 미성숙하다고 생각하며, 이 때문에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시민교육을 하지 않고서 시민적 역량이 부족하다고 한다. 대한민국 교육이 '대학 입시'라는 굴레에 70년 동안 얽매여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학생들에게 참정권이 부여되지 않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회 임원으로 보이는 한 학생이 따로 찾아와서 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 생각에 학생의 미성숙은 사실이며, 실제로 학생들은 교내 학생회 임원들의 활동에 별 다른 관심도 없고 자치활동에 관해 아무런 책임도 감당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나는 반문했다.
"학생회 활동 중에서 크고 중요한 문제를 다룬 적이 있습니까? 이를테면, 학교 운영위원회에 학생 대표가 참여한다든지, 학교 예산에서 학생회 활동비 지원이나, 교내 학생 자치 공간 마련이나, 교육과정 및 수업 편성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문제 등을 다루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고 작고 가벼우며 형식적인 문제만을 다루고 있다면, 어느 누가 자기 시간을 쪼개어 참여하려 들려고 할까요?"
이 말을 들은 학생은 거기까지는 생각해 본 적 없다는 표정으로 인사하고 교실 밖을 나갔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정말 학생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를 직접 다룰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보장해주면, 학생들은 좌충우돌하면서도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단지성을 발휘하고 협력하여 끝끝내 그 문제를 해결할까? 이에 대한 답변 삼아 2024년 1학기에 지혜학교에서 이루어졌던 하나의 실험을 소개하려고 한다.
2. 지혜학교 '지존최강' 이야기
2024년 1학기 지혜학교에서는 '지존최강'이라는 이름의 공동체 실험이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지혜학교 존립을 위한 최후의 강경책'이라는 긴 이름의 앞글자만 따와서 '지존최강'이라 불렀다. 저 이름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은 지혜학교 존립에 무슨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리고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아서 이제는 최후의 강경책을 감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문제인가? 그것은 바로 '먹거리 문제'였다. 학교 생활관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학생들은 먹는 문제에 대해 이토록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의아하다. 지혜학교의 밥이야 말로 영양사 및 조리사 선생님들의 헌신으로 14년째 유기농 재료 가득 채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밥 맛을 본 외부 손님들은 너나할 것 없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탁월한 맛을 보장하고 있는데 도대체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학생들은 학교의 '외부음식 제한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지혜학교에서는 '밥모심 철학'을 기준으로 음식과 관계 맺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나는 생명이며, 밥 또한 생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음식을 먹는다는 일은 생명으로서의 나와 또 다른 생명인 밥이 서로를 모시는 일'로 생각하자는 것이다.
▲ 2022 지혜학교 팜(farm)파티 2022년 학교 텃밭에서 수확한 작물과 지역의 유기농 채소를 활용하여 여러 메뉴를 만들어 나누어 먹는 축제를 진행했다 |
ⓒ 지혜학교 |
또 어떤 학생들은 어른들의 눈을 피해 몰래 간식을 먹는 일이 심심치 않게 드러나고 있으니 이렇게 실효성 없는 규칙을 전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읽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들먹이며, '논쟁에 부쳐지지 않는 진리는 생명력을 잃게' 되니, 1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규칙을 다시 논쟁에 부쳐서 그 의미를 생생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들은 기존의 외부음식 제한 규정을 중단하고, 학생들이 컵라면, 빵, 과자, 초콜렛, 젤리, 사탕 등의 간식들을 섭취하면서 자발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니까 간식을 먹느냐 마느냐가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학교의 존립을 뒤흔드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이제는 이 문제에 대해 끝장을 보자고 와글와글 하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의 움직임에 대해 교사와 학부모는 몸에 좋지도 않는 간식을 왜 그렇게 먹으려고 하냐, 성장기에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교사와 학부모의 역할인데 그 역할을 내려 놓으란 말이냐 답답해 했다. 초가공식품에 대해 학생들을 교육할 문제이지, 그들의 요구를 받아줄 문제는 아니라는 목소리도 높았다.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결국 학생들이 이렇게 힘을 모아 주장을 하는데 이 목소리를 꺾지 말자.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몸소 배우고 겪을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합의를 힘겹게 이끌어내고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3. 지존최강의 실험이 시작되다
▲ 지혜학교 학생자치 학생들이 델포이(강당)에 모여서 학생자치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
ⓒ 지혜학교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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