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덕에 일상 되찾았지만… “약값 매달 200만원” 눈물

민태원 2024. 9. 1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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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희귀질환자들, 국회서 신약 신속 급여화 호소
건보 재정서 신약 지출 비중, OECD 최저 수준
“약제비 지출 구조 혁신 필요”
신약. 사진은 기사와 무관합니다. 출처=Unsplash

“주치의 권유로 신약(캄지오스) 치료를 시작했고 불과 1주일 만에 그토록 꿈꿔 온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습니다. 신약을 통해 다시 평온한 일상을 살 수 있게 됐는데, 비급여인 신약 치료를 받으려면 매달 200만원 넘는 약값을 부담해야 합니다. 더욱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 많은 이들이 건강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 김갑배씨·61)

“신약(오페브) 치료로 폐기능 저하가 늦춰졌습니다. 하지만 해당 신약은 비급여 약제로, 월 150만~300만원의 비용이 듭니다. 평생 건강보험료를 내 왔는데 정작 절실히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못 받는 현실에 절망했습니다. 이 병은 생존 기간이 짧아 우리 환자들에게 시간이 없다는 점을 부디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진행성 폐섬유증 환자 이동욱씨·55)

두 사람은 11일 국회에서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이 공동 주최한 ‘외면받는 중증·희귀질환, 치료 기회 확대 방안’ 심포지엄에서 신약 치료의 절실함을 이렇게 호소했다.

김갑배씨를 10년 이상 괴롭혀온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은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는 질환 특성상 수시로 찾아오는 가슴 통증과 어지럼증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젊은 나이에 돌연사의 위험이 커 늘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한다. 이동욱씨가 앓는 진행성 폐섬유증은 폐가 계속해서 딱딱하게 굳어지는 병으로, 증상이 심하면 산소호흡기에 의지해야 숨을 쉴 수 있다.

11일 국회에서 열린 '외면받는 중증희귀질환, 치료 기회 확대 방안' 심포지엄.

이들은 신약 사용으로 자신의 삶을 옭아맸던 질병의 고통을 덜고 치료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됐지만, 비급여로 인한 경제적 부담의 장벽 앞에서 좌절의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외면받는 중증·희귀질환, 치료 기회 확대 방안’ 심포지엄은 이들에게 필요한 신약 치료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지혜를 모으기 위해 개최됐다.

최은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중증·희귀질환 치료 접근성 현주소’ 주제 발표를 통해 상대적 치료 사각지대에 놓인 희귀질환의 보장성 강화 필요성을 공유했다. 희귀질환에 대한 정부의 의료비 지원은 점차 강화되고 있지만 여러 측면에서 아직 개선돼야 할 정책적 수요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 연구위원은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요구도가 높지만 의료진과 환자 모두 조기에 필요한 정보와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환자 맞춤형 치료 계획과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어 “희귀의약품 공급과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효과성을 확보할 근거 마련의 기반 조성도 필요하다”고 했다.

의학바이오기자협회 이진한 부회장은 ‘언론이 바라본 신약 접근성’을 주제로 그간 취재를 통해 접한 환자 사례 및 산업계의 목소리를 전했다. 특히 한국의 신약 출시 지연 등 일명 ‘코리아 패싱’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꼬집었다.

이 부회장은 “A8 국가(신약 약가 결정을 위한 가격 참조 8개국)의 약제 도입 현황을 보면 한국에서만 급여가 되지 않는 약제들이 많다. 정부에서도 환자 치료 접근성 향상을 위해 다양한 정책 및 제도를 마련해 왔지만 아직 한계가 존재하는 만큼 건강보험재정 지출 구조 개선과 환자 치료 지원 확대 등 정부와 산업계의 지속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승래 동덕여대 약대 교수는 ‘건강보험재정 연구 결과’ 발표를 통해 신약의 치료군별 약품비 지출 현황 분석을 공개했다. 유 교수는 “2007년 약제비 적정화 방안 도입 이후 등재된 신약의 최근 6년간 지출 비중은 총 약품비 대비 13.5%로, 조사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국 중 최저 수준이었다”며 “뿐만 아니라 질병 부담이 높은 질환군에 대한 국내 신약의 지출 비중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나, 특히 이런 질환군에서의 신약 접근성을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11일 국회서 열린 '외면받는 중증 희귀질환, 치료 기회 확대 방안' 심포지엄 발표 내용 중 일부. 의학바이오기자협회 제공


이어진 패널 토론에선 환자단체, 제약업계, 정부 관계자 등 전문가들이 중증·희귀질환자들의 보장성 강화와 건강보험 재정 개선 방안에 대한 열띤 토론이 진행됐다. 특히 최인화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헬스케어혁신부 전무는 산업계에서 바라보는 혁신 신약 치료 접근성 제고의 어려움과 신속한 환자 중심 치료 환경 및 제도 개선 방안을 짚었다.

최 전무는 “정부의 다양한 정책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중증·희귀질환자들의 혁신적인 신약 접근성이 여전히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선진국보다 현저히 낮은 상황”이라며 “올해 상반기까지 정부 정책 논의는 신약 접근성 및 보장성 개선에 관한 내용 보다는 대부분 사후관리 강화와 규제에 대한 논의만 주로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건전 약제비 재정 관리 및 지출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와 혁신(조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최 전무는 “정부가 혁신 신약 보장성 강화를 위해 쏟은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6년간 한국의 신약에 대한 건보 지출 비중은 총 약제비의 13.5%로 26개 OECD국가 대비 최저 수준이며 같은 기간 희귀의약품 지출의 경우도 총 약제비 대비 약 2.5%로, 해외 주요 국가 A8 지출 규모와 비교하면 약 15~20% 수준으로 매우 낮은 상황”이라며 “우리나라 건강보험 재정에서 중증·희귀질환 약제비 지출이 과연 균형적이고 적절한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증·희귀질환 신약 접근성 개선을 위해 현재 시행 중인 경제성 평가 생략제도와 한국형 패스트트랙(허가-급여 심사-약가 협상 병행) 시범 사업의 전면 확대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최 전무는 “현재 중증·희귀질환 급여 등재를 위한 유일한 급여 창구였던 경제성 평가 생략 제도가 축소될 위기에 있고 지난해 도입돼 시행 중인 ‘1차 신속심사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소아용 희귀질환 신약 2개 중 1개(재발성 불능성 소아 신경모세포종 치료제 ‘콰지바’)가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에서 요청한 과도한 위험분담 조건으로 인해 비급여 결정을 받은 상황”이라며 “정부의 의지가 규제 개선보다 강화가 아닌지 우려가 점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11일 국회에서 열린 '외면받는 중증 희귀질환, 치료 기회 확대 방안'에 참석한 인사들.

아울러 중증·희귀질환 보장성 강화 정부 계획을 보다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는 ‘신약 치료 보장성 개선을 위한 민관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최 전무는 “현재 정부와 소통 채널이 부족하다. 오늘 같은 국회 토론회나 환자들의 국회 청원 활동, 국정감사 등을 통해 이슈가 제기되는 방식은 정부기관 뿐 아니라 기업, 의료 기관, 환자, 국회 등 모든 이해 당사자에 부담이 되는 것 같다”면서 “이 문제를 보다 건설적으로 논의하고 해결할 수 있는 소통 채널이 신속히 마련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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