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집필보다 '작가의 말'이 더 어려워요

박정은 2024. 9. 1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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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 '감사합니다'가 많은 이유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박정은 기자]

길면 죄송한 시대가 되었다. 10년 전, 내가 처음으로 웹소설을 연재할 때만 해도 플랫폼에서 요구한 한 회차 당 분량은 약 7000자였던 걸로 기억한다. A4 5장을 행간 띄움 없이 빼곡이 채워야 했다. 그때만 해도 길다는 생각이 없었다. 쓰는 이도 읽는 이도.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플랫폼과 공모전의 요강이 달라졌다. 플랫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5000자로 줄어드는가 싶더니 최근에는 4000자까지 줄어들었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연재처도 올 초에 A4 2장을 채워야 한다는 변화된 안내를 올려놓았다. 그것도 공백을 포함해서.

쓰는 이를 고려했다기보다 읽는 이를 위한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틱톡, 릴스, 숏츠와 같은 숏폼이 넘쳐나고, 큰 인기를 끄는 시대가 되었다. 짧은 것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호흡이 긴 글은 읽히기가 쉽지 않다.

잠깐의 휴식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에, 큰 용변을 보는 동안에, 잠들기 전에. 잠시 읽기를 원하는 웹 문학의 특성상, 길게 늘어진 이야기는 독자들을 힘들게 한다(물론 정말로 대작이어서 재미가 큰 작품은 예외다).

그 고통을 참으면서까지 꾸역꾸역 이야기에 집중하는 독자는 세상에 없다. 응원하는 가족이나 지인 아니고서는 말이다.

이처럼 시대의 변화는 웹소설 장르에도 영향을 끼쳤고, 웹소설을 다루는 콘텐츠 기업들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과감히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지문과 대화의 행간을 띄울 것, 문장은 짧고 간결하게 쓸 것. 회차당 분량은 최소 4000자. 읽히는 글이 되기 위해, 선택받는 플랫폼이 되기 위해, 작가와 기업은 손 맞잡고 기꺼이 변화의 물결에 발을 내디딘다.

때로 '좀 더 길게 써주세요'라던가, '다음 이야기가 시급해요'라는 댓글을 발견할 수 있다. 짧은 것을 선호하고, 길면 미안한 시대에 그러한 요구를 듣는다는 것은 웹소설을 쓰는 작가들에게는 엄청난 칭찬일 수밖에 없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흡족함을 주고, 좀 더 듣고 싶게 하고,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한다는 것은 작가로 하여금 잠을 포기하고서라도 키보드 앞에 앉게 하는 최고의 동기 부여다.

'더 읽고 싶은 글'이 되는 것은 현재 나의 가장 큰 목표다.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다'라는 반응은 작은 목표다. 시간이 남아서 그냥 한번 읽어본 이야기였지만, 나쁘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이다. 그래서 내가 쓰는 '작가의 말'은 대부분이 '감사합니다'이다.
▲ 고뇌하는 스토리 작가 때론 '작가의 말'이 스토리 집필보다 더 어렵다.
ⓒ 픽사베이
웹툰도 그러하지만, 회차로 연재되는 웹소설의 말미에는 '작가의 말'이라는 공란이 주어진다. 그곳을 통해 작가는 독자들을 더욱 몰입시키기 위한 떡밥을 은근 제시하기도 하고, 독자들의 마음에 들법한 생각을 대신 표현해 놓기도 한다. 또한 작가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면서 독자와의 소통을 시도한다. 기발하고 창의적인 말 한 마디로 웃음을 던져주는 작가들의 말을 보면서 감탄할 때가 있다. 나는 왜 그처럼 기발한 말을 하지 못하는 걸까?

이 '작가의 말'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작가들이 많다. 자칫 생각 없이 뱉은 말이 스토리의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고, 어설픈 개그를 던져 독자들로 하여금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할 수도 있다. 스토리 몰입에 도움이 되거나, 기발한 접근으로 큰 웃음을 준다면 작가의 말은 성공일 텐데, 그러한 말이 도통 떠오르지 않아 난감한 작가들은 말하곤 한다.

"스토리 집필보다 작가의 말이 더 어려워요."

나는 그 말에 크게 공감하는 작가다. 써야 할 분량이 줄어들었으니, 스토리 집필 자체는 이전보다 좀 쉬워졌으나 여전히 작가의 말에 써넣을 말이 마땅치 않다. 한때 내 소설은 어느 독자분의 애정 어린 추천을 받고, 황송하리만치 많은 독자가 몰린 적이 있었다. 내 다른 소설들에 비해 조회 수가 3배, 4배로 뛰었고, 댓글에 드러난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워서 정말 행복한 때였다. 그때의 '작가의 말'을 다시금 들여다보니 역시나 '감사합니다' 일색이었다.

"아시죠? 제가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명절 연휴 동안 기다려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오늘도 읽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려요."

반응이 뜨겁든 시들하든, 내 글을 시간 내어 읽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늘 고마운 마음이 든다. 지금도 그때만큼 인기를 누리지는 못해도 찾아주는 이가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어느 날은 너무 조회수가 낮아서 작가의 말이 무슨 소용일까 싶어 땡땡땡(...)으로 작가의 말을 채운 적이 있다. 차라리 아무 말도 쓰지 않았다면 나의 착잡한 심경을 들키지나 않았을 텐데.

'작가의 말'을 아예 쓰지 않는 이들도 많다. 오로지 스토리로만 승부를 보는 대범함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도통 쓸 말이 떠오르지 않는 난감함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대범함보다 난감함이 주를 이루는 나의 '작가의 말'은 앞으로도 계속 '감사합니다'일 것 같다.

바쁘디 바쁜 세상 속에서 황금같이 소중한 시간을 잠시나마 내어 읽어 주었다는 것.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마음이 고맙다. 고마운 이들에게 시간이 아깝지 않을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이 글을 읽어 주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글쓴이의 개인 페이스북에도 실립니다.오늘도 '작가의 말'을 무엇으로 채우나 고민하시는 수많은 작가님들께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더불어 좀 재미없는 '작가의 말'을 맞닥뜨렸을 때, 그 고충을 이해해주실 수많은 독자님들의 열린 마음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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