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본 중년 남성의 성실한 모습, 삐딱하게 보는 까닭

오길영 2024. 9. 1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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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길영의 뾰족한 시각] 프란츠 카프카와 영화 <퍼펙트 데이즈>

[오길영 기자]

올해는 20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프란츠 카프카 100주기다. 카프카는 1883년 7월에 세상에 와서 1924년 6월에 세상을 떠났다. 내가 볼 때, 카프카는 제임스 조이스와 함께 20세기 문학의 최전선에 서 있는 작가다. 아니, 지금 읽어도 그들은 세계문학의 최전선에 서 있다.

100주기를 맞이해서 국내에서 카프카 관련 책이 여러 권 나왔다. 그중에서 카프카의 일기와 잠언을 모은 <너와 세상 사이의 싸움에서>를 읽었다.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너와 세상 사이의 싸움에서 세상을 지원하라." 나는 영어 번역을 참조해 이렇게 수정하겠다. "세계와 당신과의 싸움에서 언제나 세계의 편에 서라."

인상 깊게 본 빔 벤더스 감독 영화 <퍼펙트 데이즈>(아래 <퍼펙트>)를 보면서 문득 카프카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카프카의 말을 아이와 어른의 차이를 가르는 시금석으로 읽는다. 여기서 아이와 어른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라 정신의 수준을 가리킨다. 아이에게 자아 혹은 주체와 세계의 관계에서 더 큰 것은 자아다. 정신의 어른이 되기 전에 우리는 자신이 세계보다 힘이 세며 마음에 들지 않는 세계를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투정 부리고 운다. 그렇게 욕망을 채운다. 아이에게만 허용되는 특권이다.

어른은 다르다. 생물학적 어른이 되어가면서 우리는 세상과 부딪치고 겪으면서 자신보다 세상이 더 크고 힘이 세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럴 때 두 가지 대처법이 있다. 생물학적 성인이 되었으면서도 아이처럼 징징대면서 살아가기. 아니면 자신의 자아보다 더 크고 힘이 센 세상의 편에서 냉철하게 혹은 겸손하게 현실을 바라보기. 그렇게 정신의 어른은 '나'와 세상의 싸움에서 언제나 세상의 편에 선다. '나'의 욕망은 세상의 욕망, 타자들의 욕망에 견주어볼 때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히라야마는 카프카의 말을 입증하는 존재일까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 티캐스트
<퍼펙트>를 보면서 나는 서로 충돌하는 느낌을 받았다. 감탄하는 마음과 뭔가 불편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 얘기를 해보고 싶다. 좋은 영화는 <퍼펙트>처럼 매끈하게 정리된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언뜻 보기에 모순되고 부딪치는 삶의 지점을 드러낸다.

많은 평자와 관객이 지적하듯이 <퍼펙트>를 카프카가 갈파한 정신의 어른이 어떻게 사는지를 형상화한 영화로 좋게 볼 수 있다. <퍼펙트>는 도쿄 시부야의 공중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가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따라간다. 영화에는 특별한 사건도 없다. 우리처럼 히라야마는 매일 거의 똑같은 생활을 반복한다.

그는 거의 같은 시간에 일어나 거의 같은 모습으로 집을 정리하고 출근하고 화장실 청소를 한다. 같은 모습으로 사람과 자연을 관찰하고 단골 식당에서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잠자리에 들고 꿈을 꾼다. 히라야마는 과묵하다. 그는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성실히 수행한다. 이 영화의 독특함은 히라야마 캐릭터에서 드러나는 여백과 침묵에 있다.

언뜻 보기에 히라야마는 달관한 존재처럼 보인다.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받지 못하는 화장실 청소 일을 하지만 때로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묵묵히 혹은 즐겁게 자기 일을 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히라야마가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 쪽에 서기보다는 뒤로 물러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입장을 택한다는 것이다.

영화에는 히라야마처럼 각자의 일상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공원 벤치에서 피곤해 잠이 든 직장인, 샌드위치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는 젊은 직장 여성, 거리의 행위 예술가, 공공 화장실 틈에 빈칸을 같은 모양으로 맞추는 OX 게임 쪽지를 숨겨놓은 미지의 사람과 마주친다.

화장실 청소를 같이하는 청년 타카시와 타카시가 좋아하는 패티 스미스의 음악을 좋아하는 아야, 히라야마가 목욕탕에서 만나는 노인들, 히라야마가 자주 찾는 중고 서점 주인, 히라야마가 은근히 호감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작은 술집을 운영하는 여주인. 히라야마는 그들을 섬세하게 침묵 속에서 관찰한다.

하라야마는 사람만이 아니라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그의 나이와 감성을 보여주는 징표로 작용하는 필름 카메라를 들고 히라야마는 종종 햇살이 스며드는 나무를 찍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집약해 보여주듯이,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코모레비こもれび)이 주는 즐거움을 히라야마는 만끽한다.

그 햇살은 삶의 순간순간이 제공하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삶의 지혜를 아는 존재의 면모를 부각한다. 히라야마는 사람들이 놓치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반복되는 일상을 히라야마가 지루하게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그렇게 히라야마는 카프카의 말을 입증하는 존재,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이치를 평정심으로 바라보면서 삶을 꿋꿋하게 지키는 성숙한 어른으로 보인다. 나를 비롯한 많은 관객이 그의 모습에서 받게 되는 감흥에는 정신의 어른을 찾기 힘든 현실의 구멍을 히라야마에게서 대리 만족하는 것도 있다.

잃어버린 어린아이의 힘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 티캐스트
하지만 히라야마는 세상을 달관하고 초월한 존재가 아니다. 영화도 그 점을 놓치지는 않는다. 특히 자신을 찾아온 조카 니코, 니코의 엄마인 여동생을 만나 히라야마가 대하는 태도가 그렇다. 히라야마가 니코의 엄마와 나누는 대화에서는 히라야마와 그의 가족, 특히 아버지와 관계에서 과거에 큰 갈등이 있었다는 걸 암시한다. 칸 영화제 남자배우상을 받은 야쿠쇼 코지의 연기력이 화면을 압도하는, 웃음과 울음이 교차하는 마지막 장면의 표정도 달관의 표정은 아니다.

하루를 정리하는 히라야마의 꿈에 나오는 장면도 평온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꿈에는 히라야마가 미처 표현하지 못한 그의 불안한 내면이 그가 찍은 나뭇잎처럼 불안하게 일렁인다. 영화의 뒷부분에서 히라야마는 술집 여주인의 전남편과 그림자놀이를 한다. 전남편은 말기 암에 걸렸다.

두 사람은 그림자를 겹치면 그림자의 농도가 변할까를 실험하는 놀이를 한다. 그림자가 겹쳐도 변화가 없다는 전남편의 말과는 달리 히라야마는 그럴리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여기서 겹치는 그림자는 인간관계를 상징한다. 어떤 관계든 그 관계에 들어가면 변화가 생긴다는 걸 히라야마는 굳게 믿는다.

히라야마는 아마도 그가 과거에 받은 어떤 큰 트라우마 때문에 사람들과 거리를 두면서도 관계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한다. 되풀이 말하지만 그런 모습이 관객에게 감흥을 안긴다. 그러나 삐딱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렇게 정신의 어른이 된 히라야마의 모습에서 이제 세상과 과감하게 부딪치고 싸우고 무너지기도 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이 사라져 버린 슬픔도 느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히라야마의 언뜻 초연한 듯한 평정심에는 자기가 맡은 직분에만 충실할 것을 사회적으로 요구하고 그것을 내면화한 일본 사회의 모습, 내가 보기에는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얼핏 확인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신경 쓰지 말고 당신의 직분에 충실하라"고 은근히 압박하는 사회의 표정. 성실히 자신이 맡은 청소 일을 수행하는 히라야마의 모습에서 나는 그런 삐딱한 인상을 받는다.

<퍼펙트>에 정치, 경제, 사회 현안 등 소위 '현실'이 다뤄지지 않는다거나, 그런 현실의 문제에 첨예하게 대응하는 히라야마의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게 아니다. 그런 불평은 과녁을 벗어난 것이다. 그보다는 히라야마의 일상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양가적 감정에서 나오는 불평 아닌 불평이다.

자신보다 더 크고 힘이 센 세상의 모습을 인지할 줄 아는 어른의 모습에 경탄하면서도, 그 어른이 잃어버린 어린아이의 힘을 아쉬워하기 때문이다. 세상과 부딪치면서 우리는 점점 어른이 되어가지만 동시에 그 세상의 힘에 순응하고 따르고 무신경해지는 모습을, 보기 드문 캐릭터인 히라야마에게도 발견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어쨌든 이런 물음을 던지게 한다는 점만으로도 <퍼펙트>는 정신의 어른을 발견하기 점점 어려워지는 우리 시대에 참조할 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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