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돌아가신 독립운동가들의 마지막
[정만진 기자]
▲ (사진, 왼쪽부터)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 요인 윤현진 지사, 조선국권회복단 교통부장 박영모 지사, 소련에 총살 당한 김만겸 지사, 평양 교외에서 일본경찰과 총격전 중 전사한 허영진 지사. 네 분은 모두 연도는 다르지만 추석날 별세했다. |
ⓒ 국가보훈부 |
▲ 윤현진 지사 기념비와 흉상, 경남 양산시 충렬로 27(춘추공원) 소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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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과 교전 중 추석날 전사한 김준길 의병장
▲ (왼쪽) 조선국권회복단이 결성된 대구 앞산 안일사 (오른쪽) 광복회가 결성된 대구 달성토성. 안일사에는 조선국권회복단 결성지 표지판이 세워져 있지만, 달성토성에는 아무 것도 없다. 심지어 국가사적지인 달성토성 안에는 테니스장이 조성되어 있다. |
ⓒ 정만진 |
악랄한 고문으로 추석날 순국한 임상덕·이필발 지사
경북 영덕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으다 일제에 체포된 이필발 지사도 고문으로 생명을 잃었다. 1923년 9월 25일, 추석이었다. 2년 6개월 옥고를 치르고 풀려난 지 불과 두 달 만이었다. 아직 33세의 젊은 나이였지만 감옥에서 당한 악랄한 고문의 후유증을 이겨낼 수 없었다.
▲ 박영모, 유한종 지사 관련 독립운동 자료 |
ⓒ 국가보훈부 |
추석날인 1920년 9월 26일, 방병걸 지사가 21세 나이에 만주에서 일본군에게 죽임을 당했다. 추석날인 1921년 9월 16일, 허영진 지사가 29세 나이에 평양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던 중 전사했다. 추석날인 1923년 9월 25일, 공주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던 노규현 지사가 세상을 떠났다.
▲ 방병걸, 김만겸 지사 관련 독립운동 자료 |
ⓒ 국가보훈부 |
심지어는 독립을 되찾은 뒤인 1945년 9월 20일 추석날에도 독립지사는 풀려나지 못한 채 옥사했다. 이상조 지사는 동경 유학 때 졸업 후 조국에 학교를 세워 애국청년을 양성하고 군자금을 모아 국외에 보내기로 결의했다. 그래서 재학 중에도, 졸업 후에도 일본과 국내에서 지하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1944년 1월 부산에서 체포되어 일본으로 압송되었다. 일제는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을 적용해 3년형을 언도했다. 이 지사는 모진 고문과 비인간적 옥고를 겪던 중 1945년 8월 15일 독립을 맞았지만, 감옥이 일본에 있었던 탓에 풀려나지 못하고 여전히 갇힌 채 9월 20일 옥사하고 말았다.
추석은 그저 '노는 날'만은 아니다
이상조 지사는 나라와 겨레가 자주독립을 회복했다는 사실을 알기는 알았을까? 아니, 윤현진, 박영모, 김준길, 임상덕, 이필발, 방병걸, 허영진, 노규현, 정성수, 김만겸, 유한종 등 독립 이전의 추석날에 세상을 떠난 독립지사들은 하늘에서나마 조국광복 소식을 들었을까?
추석날에도 독립운동가들은 목숨을 바쳐 외세와 싸웠다. 1925년작 박화성 단편소설 <추석 전야>가 극명하게 증언했지만 그 100년 후인 오늘날도 추석날조차 일해야 먹고살 수 있는 국민들은 허다하다. 추석을 그저 '노는 날'로만 아는 요즘 세태는 뭔가 문제인 듯 여겨져 이 글을 쓴다.
덧붙이는 글 | 국가보훈부와 독립기념관이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달마다 발표하고 있습니다. 독립유공자가 1만 8139명 되신다는 사실(2024년 9월 11일 현재)을 감안할 때 너무나 느리다 싶습니다. 그래서 역량부족이지만 가능한 만큼 부지런히 독립지사님들을 현창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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