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 복수 위원, '국장 사망' 자체 진상조사 요구...위원장 최종 '불가'

복건우 2024. 9. 1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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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사망 직후 회의록 '직무 독립성 보장' 등 확인 요구...권익위원장 "고민하겠다" → "시급하지 않다" → 조사 불가

[복건우 기자]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사건을 조사하던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간부 사망 사건과 관련 사망 직후 열렸던 전원위원회(전원위)회의에서 자체 진상조사를 요구한 위원이 최소 2명 이상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지만, 지난 9일 권익위원장이 최종 '진상조사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권익위가 사건 진상 규명보다 축소에 힘을 실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권익위 복수의 비상임 위원은 지난 8월 1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전원위에서 "고인이 행한 업무와 관련된 의사결정과정에 부당함이 없었는지 진상 규명 방안을 만들어 전원위에 상정해 달라"고 요구했으며, "고인의 뜻을 저희가 살릴 수 있는 것을 고민하는 절차적인 내용들이 있었으면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국장 사망 사건 이후 권익위 내부 위원들의 구체적인 발언 내용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법에서 정한 직무 독립성 보장했나... 진상규명 절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입수한 지난 8월 12일 제15차 국민권익위원회 전원위원회 회의록 일부.
ⓒ 국민권익위원회
<오마이뉴스>가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제15차 권익위 전원위 회의록을 보면 14쪽 중 7페이지 이상이 숨진 국장에 대한 추모와 권익위를 향한 문제 제기로 채워졌다. 국장 사망 사건을 두고 위원들 간 의견 대립도 드러났다. 당일 전원위는 오후 3시부터 50분간 5층 전원위 심의실에서 열렸고, 유철환 권익위원장과 정승윤·박종민 부위원장을 비롯한 상임·비상임위원 등 12명이 참석했다. 회의록 발언자는 모두 익명 처리됐다.

이 회의록에서 숨진 국장과 함께 일했다고 밝힌 한 위원은 심의에 앞서 "국장님은 OOO 여사 명품백 사건 처리와 관련해 '권익위가 이렇게 가면 안 된다', '정말 나라가 이렇게 가면 안 된다', '내가 아무리 해도 안 된다', '전원위원들이 종결만은 막아야 할 텐데'라며 권익위와 나라를 걱정했다"라고 밝혔다. '○○○ 여사'는 맥락상 김건희 여사를 의미한다.

이 위원은 "(국장님이) 저에게 상임위원들이 소신껏 의사 표시할 수 있도록 무기명투표로 의결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지만 사명감 높은 국장님이 죽음을 선택했다"라며 "저는 이런 국장님의 죽음을 보면서 과연 권익위가 법에서 보장하는 직무 독립성을 그에게 보장해 주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국장의 죽음에 대한 권익위 자체 진상조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위원은 "다시는 국장님과 같은 제2의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권익위 차원의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때"라며 "존재성마저 의심될 만큼 실추된 권익위의 신뢰 회복과 기관의 위상 제고 차원에서라도 철저한 자체 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이 절실하고, 그것이 망자와 유가족에 대한 권익위와 우리 위원들의 최소한의 도리"라고 설명했다.

다른 위원도 "부패방지와 관련해 소중한 자원을 잃게 됐는데 잘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면 전원위에서 같이 고민하고 반영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장 사망의 책임을 국회에 돌리려는 의견도 있었다. 맥락상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 처리를 놓고 국장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진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 발언이다.

그는 "가방 사건과 헬기 사건을 거치면서 권익위가 이렇게 논란이 되면서 외부와 언론에 시시콜콜 나간 사례는 전무후무했다"면서 "우리 위원회의 위원은 전부 다 직무상 비밀 준수 의무가 있으니까 여기 있었던 일을 제발 말씀하지 말아 달라고 수차례 말씀을 드렸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위원들이 판단해 놓고 온 세상에 떠들고 다니니 정말로 이후에 느끼는 부담감과 중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면서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12시간 동안 전부 다 돌아가면서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는지? 그 밑에 앉아 있던 우리 국장은 심정이 어땠겠는지?"라면서 책임을 국회에 돌렸다.

진상조사 요구에... "고민하겠다"→ "조사 시급하지 않다" → 최종 '불가'
▲ 답변하는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 8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권익위 국장 사망 관련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비슷한 문제 제기가 지속되자 권익위원장으로 추정되는 위원은 "저희가 무슨 조사권이나 수사권이 없는 입장에서 과연 진상조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고민해 보겠다"라며 "다음 전원위에서 (진상조사 필요성에 대해)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오늘이 삼우제이고 유족들이나 가까운 지인들께서 아직은 애도 기간인 데다가 진상조사를 한다고 바로 나서는 것은 과연 어떨지, 시차를 어느 정도 두어야 하지 않는지 생각도 든다. 고민을 많이 해보겠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유철환 권익위원장은 회의 일주일 뒤인 8월 1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신고 사건 처리와 관련된 외압은 없었다. (...) 자체 조사는 시급한 일이 아니다"라며 회의록에 나와 있는 발언과 다른 취지의 설명을 내놨다. 특히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지난 9일 열린 전원위에서 유 위원장은 국장 사망 관련 '진상조사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권익위 전원위 회의록을 확인해 본 결과 숨진 국장님과 관련해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여러 번 나왔으나 책임자인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책임을 회피하거나 사안을 덮기에 급급해 보였다"라며 "국정감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익위는 지난 6월 10일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청탁금지법상 위반 사항이 없다며 종결 처리했다. 이후 8월 8일 권익위 부패방지국장 직무대리로 일해오던 해당 국장이 세종시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김 여사 사건을 비롯해 이재명 민주당 대표 응급헬기 이송 사건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 조사를 지휘해 왔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권익위 국장의 죽음과 관련 정승윤 부위원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국장 사망 이후 정 부위원장은 겸임하던 사무처장은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부패방지를 총괄하는 부위원장 역할은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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