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대, ‘의과대학 설립 설명회’서 날 선 질문 봇물
지역 갈등 심화 단일 의대 설립안 강행 의구심
공동의대·복수의대 설립 방안 계속 논의돼야
순천대학교(총장 이병운)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전라남도 국립의대 및 대학병원 신설 관련 대학 의견 청취 및 설명회’가 지난 10일 순천대 파루홀에서 개최됐다.
전남도의 국립의대 신설 정부 추천 용역 주관사인 에이티커니코리아와 법무법인 지평 컨소시엄 주최로 열린 이 날 설명회에는 200여 명이 넘는 대학 구성원이 참석했다.
설명회는 정부 추천 공모 절차와 기본방향, 국립의대 및 대학병원 설립 방식, 미추천 대학과 지역에 대한 지원방안에 대한 설명과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용역사는 설립 방식 기본안으로 ▲(1안) 단일 의과대학 선정 후, 2개 대학병원 신설 ▲(2안)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을 동일지역에 신설 2개 방안을 제시하고, 공모 절차 및 심사 기준 등의 내용을 설명했다.
국립순천대 구성원들은 용역사의 설명을 청취한 뒤, 날 선 질문과 의견을 쏟아냈다.
참석자들은 ‘지역갈등을 부추기는 상호경쟁적 공모에 불참하겠다’라는 대학과 동부권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단일캠퍼스 안으로 성급한 결론을 내린 후 공모를 진행하는 이유와 설립안 결정 과정에서 대학 의견이 배제된 부분을 중점적으로 물었다.
직원 A씨는 “도민들은 전남에 의대가 생기면, 좀 더 편리한 환경에서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전남도가 진행하는 의대 공모는 동·서부 간 갈등만 부추겨 왔고, 도민들이 피로감만 느끼게 한 것 같다. 방향을 미리 정해놓고 할 것이 아니라, 의대 설립 운영의 주체인 대학과 의견 수렴 당사자인 도민 의견에 좀 더 귀 기울여 달라”라고 주문했다.
또 다른 교직원은 “오늘 설명회가 끝나고 하루 뒤에 설립 방식을 확정·발표한다는 기사를 보았다.”라며, “설립방식선정위원회가 충분히 의견 수렴이 되지 않은 2개의 안을 놓고 설문조사를 시행하고, 이를 발표하는 것은 문제”라는 의견을 냈다.
교원들은 다양한 전공의 시각과 교육과정 운영 경험에 기반한 질문과 의견 제시를 이어갔다.
의생명과학과 교수는 “의과대학이 없는 지역에는 수련병원 형태로 운영한다고 하는데, 인사권과 재정 등의 압박으로 인해 지역의 의료수요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을 것이다”며 Level 3 수준에서 운영되는 전남대학교 화순병원의 응급실을 예시로 들었다. 또한, 미선정 지역 대책으로 제안된 ‘첨단의과학연구센터’에 대해서도 “지난 10년간 1조 이상을 투자한 화순 바이오메디컬 클러스터도 운영이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의과대학과 유리된 연구센터가 제대로 작동할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간호학과 교수는 “150km가 떨어진 의대와 병원은 교수가 수업과 진료를 병행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며 용역사 사례로 제시된 부산대병원과 양산부산대병원의 거리는 30km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2개의 병원 중 의대가 없는 1개의 병원은 대학병원의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이에 대한 근거로 광양시에 포스코가 건물을 제공하면서 유치한 조선대 병원 분원이 설치 후 3년 만에 철수한 사례도 함께 제시했다.
또 다른 의생명과학과 교수는 의대 설립 방식을 이미 정한 상태인지를 물으면서 “설명회나 공청회를 충분히 거친 후에 설립 방식을 정해야 할 것인데, 도민들의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용역사가 의도적으로 1대학 2병원 방식으로 몰아가고 있는 감이 있다”고 지적하고 “의대 설립 방식을 정부가 아닌 전남도가 결정할 수 있다면, 도민 전체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2의대 2병원'을 시도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법학과 교수는 “이번 설명회가 이미 설립방식을 결정해 놓은 상태에서 요식 행위로 설명회를 추진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며, “오늘 설명회에서 제기된 우려 사항이나 의견 등을 반영해 설립방식을 결정한다고 하는데 12일 발표전 하루밖에 남지 않은 기간 동안 회의를 해서 이 의견들을 반영한다는 것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질타를 했다.
화학공학과 교수는 “지역 정치권을 비롯해 언론, 그리고 지역민 대부분이 지난 몇 달간 상황변화를 고려하여 공동 의대와 같은 상생안을 추진해 보자는 의견에 공감하고 있다”며 “정부가 공동 의대를 공식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단일 의대를 신청해도 늦지 않을 것이고, 지역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을 위해 의료 개혁을 추진하는 정부라면 분명히 지혜로운 결론을 내릴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인구와 산업체 수 등의 정량적 지표를 공모 계획서에 반영하면 평가 과정에서 정성적으로 평가할 것이라는 식의 표현들은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증폭시킨다”며 “공정성을 이유로 전남도와 무관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설립방식선정위원회, 사전심사위원회, 평가심사위원회가 진정으로 전남도의 의료상황과 지역 소멸 등의 문제를 숙고하여 결정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라며, 양 대학 관계자가 확인할 수 있는 토론회 개최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공모에 하나의 대학만 참여하거나, 공모에 떨어진 대학과 지역에서 반발할 경우 정부가 의대 설립을 추진키 어려울 것’, ‘의대 설립 당사자인 두 대학이 의대 문제를 가지고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것’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이병운 총장은 “의료수요, 산업기반, 교통 및 운영 여건 등 제반 상황을 고려하면 순천대에 의대를 신설해야 하는 당위성이 도출될 수밖에 없다”며 “전남의 상생 화합과 의료복지 개선을 위한 적극적 대안으로 공동 의대, 복수 의대 설립방안도 계속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울러 순천대 후속으로 목포대가 글로컬 대학에 선정되어 동부권과 서부권이 상생 협력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된 만큼, 1도 1국립대 체제와 더불어 공동 의대 설립방안이 적극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국립순천대는 이날 제시된 의견을 바탕으로 의대 설립의 핵심 주체로서 목포대 등 관계기관과 대화를 이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호남취재본부 허선식 기자 hss7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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