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세상] 소음에 민감한 청소년

2024. 9. 11. 10:1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중학교 남학생 T는 청결에 대한 강박으로 병원을 찾았다.

치료 후 T의 강박증은 거의 나아져 학원도 다니고 스터디 카페에도 가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소리에 민감했던 T는 스터디 카페에서 사람들이 불펜을 딸각거리는 소리며 연필을 긁적이는 소리에 신경이 쓰이고 짜증이 나서 공부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강박증상이 호전되었어도 중학생인 T에게 소음 때문에 사람 많은 곳에 갈 수도 없고 공부를 할 수가 없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소리에 대한 거부감 강화

중학교 남학생 T는 청결에 대한 강박으로 병원을 찾았다. T는 공부도 잘하고 모범생이었다. 사춘기가 되면서 잠시라도 집 밖을 나갔다 오면 옷을 모두 갈아입고, 샤워를 한다. 소변만 보고도 1시간 이상 샤워를 해야 했다. 이러니 학교를 제외하고는 집 밖에 나가지 않아 학원도 다닐 수 없다. 친구를 만날 수도, 가족과 외식도 불가능했었다.

치료 후 T의 강박증은 거의 나아져 학원도 다니고 스터디 카페에도 가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소리에 민감했던 T는 스터디 카페에서 사람들이 불펜을 딸각거리는 소리며 연필을 긁적이는 소리에 신경이 쓰이고 짜증이 나서 공부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T의 아버지는 다혈질에 화를 잘 내는 성격이다. 자주 소리를 지르며 야단을 쳤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와의 다툼도 많은 편이다. T는 어려서부터 불안했다. ‘큰소리’ 후에는 부모님의 다툼으로 집안이 떠들썩해지면 어머니도 집을 나가기도 했던 경험을 했었다. 선천적으로도 청각이 예민했던 T는 이후 특정한 소리에 불안과 분노를 유발하도록 조건화되어버렸다.

중학생이 되니 공부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중 강박증이 생겨 집중이 안 되었던 상황에서 친구들이 옆에서 볼펜을 딸각거리거나 연필로 무언가 쓰는 소리가 몹시 거슬렸다. 치료를 받으면서 아들의 증상이 자신과 연관된다는 걸 알게 된 아버지는 화를 조절하고 부부싸움도 안 하면서 집안에 평화로움이 찾아왔다. 그러나 T의 몸에 남아있는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이나 소리와 동반되는 불쾌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강박증상이 호전되었어도 중학생인 T에게 소음 때문에 사람 많은 곳에 갈 수도 없고 공부를 할 수가 없다. 집중이 안 된다는 건 꿈을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사회적 단절을 의미했다. 그야말로 삶의 질이 와해 된 거다.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먼저 핑크 소음(옥타브가 높아질수록 소리의 크기를 줄여서 음역 별로 소리가 고르게 들리게 한 소음, 예를 들어 폭포수와 같은 소리)에 노출해서 소음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주는 것이다.

차분히 눈을 감고 앉아 스터디 카페에 앉아 공부하는 것을 떠올린다. 이때 옆자리 학생이 볼펜을 딸각거린다. 또는 연필을 긁는 소리가 들린다고 상상해 보도록 한다. 이렇게 상상으로만 떠올려도 견딜 수 없이 괴로워하고 짜증을 낸다. 이때 질문해 보자. “지금 실제 소리가 들려서 청각이 자극받지 않았지? 그냥 생각만 한 거지? 그런데도 비슷하게 화가 나고 불안하구나. 그러면 너를 괴롭히는 건 실제 그 소리이기도 하지만 소리에 대한 너의 생각도 있는 거네”

이렇게 함으로써 실제 소리와 상상 소리에 대한 감정, 생각을 분리해 주는 거다. 너무 오랫동안 소리에 대한 감정과 불쾌한 생각을 융합해서 생각했던 경우에는 이를 동일시 해버리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은 실제로 감각(이 경우 청각)으로 들어온 정보도 작용하지만 대뇌에서 이 정보에 대한 예측치가 함께 작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실제 소음보다는 이에 대한 뇌의 예측이 부정적일 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거다.

예를 들어 와인을 블라인드 테스트했을 때 비싸고 이름있는 와인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가 ‘좋은 맛’이라고 반응하는 데는 미각을 통한 감각 정보도 중요하지만 ‘얼마짜리인지, 브랜드, 원산지가 어디인지’등의 정보가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소음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다. 청각적 자극에 있는 그대로 반응하기보다는 그것에 대한 기억, 감정, 부정적인 생각이 소리에 대한 거부감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