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전화해서 "샤워 기다려라"…출동 소방대원 경고 처분 취소
샤워해야 한다며 30분 후 구급차를 보내달라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민원에 시달린 119대원에 대한 경고 처분이 행정소송 끝에 취소됐다.
인천지법 행정1-2부(부장 김원목)는 30대 구급대원 A씨가 인천시장을 상대로 낸 경고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고 11일 밝혔다.
지난해 8월 당시 7년 차 소방공무원이었던 A씨는 인천 한 호텔에 있던 신고자 70대 B씨를 병원으로 이송하려고 출동했다가 샤워를 하고 나온 B씨에게 지적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경고 처분을 받았다.
A씨는 소송에서 “경고 처분을 하면서 사전통지를 안 해 의견을 제출할 기회가 없었다”라며 “방어권을 행사하는데 지장을 받았기 때문에 행정절차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또 “당시 민원인에게 ‘다른 응급환자를 위한 출동이 늦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라며 “그 과정에서 다소 언성을 높였다는 이유로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행정절차법 위반이라는 A씨 주장을 받아들이고, 경고 처분을 취소하라고 인천시에 명령했다. 재판부는 “소방 공무원에 대한 경고 처분은 행정절차법의 적용을 받는다”라며 “행정절차법에 따르면 행정청이 당사자의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을 할 경우 의견 제출 기회를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 측은 조사실에서 A씨에게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 등을 말로 설명했다고 주장하지만, 방어권 보장을 위한 의견 진술 기회가 충분히 보장됐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이런 이유로 경고를 취소하기 때문에 해당 처분이 적절했는지는 추가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A씨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방 등에 따르면 자세한 사정은 이렇다. 지난해 8월 7일 오전 7시쯤 인천소방본부 상황실엔 “해외에 머물다가 암 치료를 받기 위해 한국에 왔는데 지금 열이 많이 난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B씨의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인천 한 호텔에 있다는 B씨에게 상황실 근무자가 “병원 이송을 위해 구급차를 호텔로 보내주겠다”고 하자, B씨는 “몸살감기로 사흘 동안 못 씻었는데 샤워할 시간을 좀 달라”고 부탁했다. 상황실 근무자는 “30분 뒤에 구급차가 호텔에 도착하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출동 지령을 받은 관할 안전센터 구급차는 B씨가 샤워하는 사이 22분 만에 호텔에 도착했다. 이후 B씨는 구급차가 도착하고 6분 뒤에 객실에서 1층 로비로 내려왔으나 A씨로부터 “구급차를 이런 식으로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일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진 B씨는 불쾌한 마음이 가시지 않자 다음 날 오전 “구급대원이 불친절했다”라며 민원을 제기했다. 관련 감찰 조사에 착수한 인천소방본부는 A씨에게 같은 달 28일 경고 처분을 내렸다.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에 따라 항상 친절하고 신속 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데도 개인감정을 다스리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민원에 시달린 A씨는 스트레스로 인해 단기 입원을 했다고 전해진다.
소방 공무원의 징계는 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 등 6개로 나뉜다. 경고 처분은 징계는 아니지만, 1년 동안 근무 성적 평정, 전보 인사, 성과 상여금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A씨가 경고 처분을 받은 뒤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는 지난해 11월 인천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악성 민원에 시달린 구급대원에게 경고 처분을 했다”고 주장했다.
경고 처분에 불복한 A씨는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 심사를 청구했으나 기각되자 지난 2월 처분권자인 인천시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소송 결과에 대해 인천소방본부는 A씨가 지난 2월 다른 지역으로 전출한 상황을 고려해 항소하지 않기로 했다. 인천소방본부 관계자는 “감찰 조사 결과 당시 신고자는 악성 민원인이 아니었고, 30분 지연 출동도 상황실 근무자가 신고자에게 먼저 제안한 것”이라며 “절차가 잘못됐지만, 경고 처분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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