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욱 칼럼] 지금처럼 교육감 뽑아선 교육자치 어림없다

고승욱 2024. 9. 11.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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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욱 수석논설위원

유권자 무관심, 후보 난립에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한 선거

정부 수립 후 일관되게 추구한
교육자치의 꿈 스스로 버린 꼴

선거제 바로잡아야 하는데
개혁 의지 없는 국회가 걸림돌

대략 한 달만 있으면 또 선거다. 3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사유가 생기면 그해 10월 재·보궐 선거를 치른다는 공직선거법 35조 규정에 의해서다. 이번에는 당선무효형이 확정된 서울시교육감과 전남 곡성·영광 군수, 당선인이 숨진 부산 금정구청장과 인천 강화군수 선거로 결정됐다. 출마하는 당사자에게는 무척 중요하겠지만 전국적 선거도 아니고,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경쟁 구도 외에는 정치적 의미도 찾기 어려워 관심이 없는 게 현실이다. 성실한 지역 일꾼이 당선돼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는 예외다. 이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정치 형세와 무관하게 선거의 틀 자체를 잘못 짠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교육자치라는 이상을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교육감 직선제는 유권자의 무관심과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후보들의 난립 속에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한 지 오래다.

교육감은 광역자치단체인 시·도의 교육 분야를 대표하는 기관이다. 우리 지방자치제는 시·도지사가 일반행정 업무를, 교육감이 교육행정 업무를 각각 책임진다. 전국 17개 시·도교육감이 80조원이 넘는 지방교육재정으로 학생 600만명과 교사 50만명이 속한 학교 2만여개의 운영을 책임진다. 광역자치단체의 수많은 업무 중 교육행정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올해 서울시교육청 예산은 11조1600억원으로 서울시 예산 45조7400억원의 4분의 1 규모다. 경기도는 도교육청 예산(21조9900억원)이 도 예산(36조1300억원)의 60%에 해당한다. 교육감은 사실상 시·도지사와 공동으로 지방자치를 이끈다. 이원화된 권력구조다.

이는 정부수립 직후 제정된 교육법에서 시작된 교육자치의 이념을 구현하는 장치다. 교육자치란 정권·정파의 부당한 간섭 없이, 전문적 지식을 갖춘 교원이 아이들 교육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생각이다. 헌법 31조 4항에 명시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이 교육자치의 핵심이다. 지방자치 토대 위에 의결기관인 교육위원회와 집행기관인 교육감을 두고, 이들을 선거로 뽑아 민주적 통제를 받는 전문가가 교육행정을 전담케 하는 제도다. 이상적으로는 학교자치에서 출발하지만 지금은 주민 직선 교육감·교육위원 단계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교사·학부모·학생이라는 교육현장의 주체가 아닌 주민 모두가 뽑는다는 한계가 바로 드러났다. 집집마다 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으니 교육감 선거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낙관론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된 뒤 2007년 2월 치러진 첫 선거(부산교육감)의 투표율은 15.3%였다. 2010년부터는 지방선거일에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함께 뽑아 투표율은 약간 높아졌지만 엉뚱한 부작용이 드러났다.

지방선거는 차기 대권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정치 이벤트다. 총선만큼 여의도 바람에 휘둘리는데, 교육감 선거가 여기에 매몰됐다. 헌법에 규정된 정치적 중립성 때문에 교육감 후보는 정당에 가입할 수 없고, 정당을 통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조직과 자금도 개인 몫이다. 결과는 10여년 동안 지켜본 그대로다. 정당이 배제된 대신 진영 싸움이 벌어졌고, 유권자의 관심은 더욱 멀어져 누가 나왔는지도 모르는 깜깜이 선거가 됐다. 부적격 후보를 걸러낼 장치도, 금권선거를 막을 방법도 없다. 결국 단일화를 명분으로 다른 후보를 매수하는 최악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다음 달 서울시교육감 선거도 이 구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급한 건 잘못된 선거제를 바꾸는 일이다. 당장 적용할 수는 없지만 지금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헌법상 정치적 중립을 기계적으로 해석해 정당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게 맞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그것이 헌법재판소의 판단 영역이라면 다른 제도를 생각할 수도 있다.

이미 시·도지사와의 러닝메이트제가 떠올랐다. 직선제에 대한 유권자의 선호도가 높은 점을 감안해 시·도지사와 공동으로 출마해 선거운동을 하고 투표만 달리 하는 대안도 있다. 이론이 많지만 임명제에 대한 거부감을 감안하고, 직선제 폐지라는 부담을 피하면서 사실상 정당의 참여를 가능케 할 수 있다. 잘못된 게 분명한 선거제인데 대안이 없을 수 없다. 문제는 바꾸겠다는 정치권의 의지다. 아! 결국 거기서 막혔다.

고승욱 수석논설위원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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