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응급실 근무 의사 블랙리스트, 묵과할 수 없는 범죄다
최후 보루인 응급실마저 위협하는 겁박 엄벌 필요
유감 표명한 의협, 대책 마련 위해 대화 참여하길
정부가 시민들의 불안을 고조시키는 응급실 근무 의사 블랙리스트에 대해 엄정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월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한 이후 진료 현장을 지키는 의사들의 블랙리스트는 여러 차례 인터넷에 올랐다. 급기야 국민 생명의 최후 보루인 응급실 근무 의사까지 겁박하는 명단이 등장했다. ‘응급실 뺑뺑이’로 환자가 숨져 가는 마당에 응급의료를 지탱하는 의사를 괴롭히는 행위는 묵과하기 어렵다. 방식 또한 악의적이다.
‘감사한 의사 명단’ 등 사이트엔 ‘응급실 부역’이라며 병원별 응급실 근무자 인적사항을 띄웠다. “민족의 대명절 추석, 의료대란을 막기 위해 힘써 주시는 분들께 감사와 응원을 드린다”며 비꼬는가 하면, “일급 520만원 근로자 분들의 진료정보입니다”라는 비아냥도 서슴지 않는다. 명령에 따라 현장에 투입된 군의관 명단까지 공개했다. 의사들의 행위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저열하다.
현 정부의 일방적인 증원 강행이 의사들로선 못마땅할 것이다. 대통령실과 보건복지부를 향한 반감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다치면 안 된다”며 불안해하는 국민을 위협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이 안 된다. 응급실 근무 의사를 압박하는 저의가 무엇인가. 간신히 지탱해 온 응급 현장을 완전히 마비시키려는 의도 말고 어떤 해석이 가능한가. 그러니 대한의사협회조차 “국민께 우려를 끼친 데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을 테다.
지금 응급실은 의료 사태 이전 평상시 대비 73%(지난 2일 기준)의 의사들로 어렵게 끌어가고 있다. 예년 명절과 차원이 다른 격무가 예상되는 여건에서도 환자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버텨 온 의사들이다. “이런 상황이 힘들었다면 응급의학과를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정성필 강남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의 말에서 응급실을 지키는 의료진의 마음이 읽힌다. 이런 헌신의 뒤에서 블랙리스트나 만드는 의사들은 부끄럽지 않은가.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추석 연휴 기간 중증·응급환자의 전문의 진찰료를 평소의 3.5배 수준으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연휴를 반납하는 노고에 합당한 대우다. 그러나 이런 식의 대증요법으로 매번 고비를 넘기기엔 한계가 있다. 현 의료 위기는 의료계와 소통을 소홀히 한 정부의 책임도 작지 않다. 사태 해결을 위해 여·야·의·정 협의체가 제대로 운영되도록 지혜와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그제 시작한 의대 수시모집 접수에서 일부 전형 경쟁률이 벌써 10대1을 넘어섰다. 의협은 2025년 증원 백지화 같은 비현실적 요구에만 매달리지 말고 즉시 대화에 참여하라. 협의를 성공으로 이끄는 건 상대에 대한 존중이다. 응급실 블랙리스트처럼 적대감만 유발하는 행위는 엄하게 처벌해야만 원만한 논의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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