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대출 규제에 소비자만 골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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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감원장, 오락가락 대출 정책에 사과
집값 잡으려 규제…관치로 인한 왜곡 막아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 대출 정책에 혼란을 빚은 것에 대해 사과했다. 이 원장은 어제 국내 은행장과의 간담회 직후 “가계대출 급증세와 관련해 세밀하게 입장과 메시지를 내지 못한 부분, 국민과 소비자, 은행 업무 담당자에게 불편과 어려움을 드린 점에 대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오락가락 발언에 은행이 대출 정책을 뒤바꾸며 시장에 일대 혼란이 빚어진 가운데 나온 뒤늦은 사과였다.
지난 7월 가계대출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이 원장이 대출 억제를 주문하자, 은행은 일제히 대출 금리를 끌어올렸다. 시장 금리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대출 금리만 오르는 역주행이 빚어졌다. 그러자 지난달 25일에는 “금리 인상이라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며 “더 세게 개입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틀 뒤에는 사실상의 총량 규제 방침을 밝히며 은행을 압박했다.
놀란 은행들이 금리 인상 대신 대출 한도를 줄이고 1주택자 대출 제한 등으로 문턱을 높이자 지난 4일에는 “실수요자 보호가 필요하다”며 규제 완화를 시사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그의 발언에 은행의 대출 정책은 갈지자 행보를 이어갔다.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대출 규제에 “이자보다 더 무서운 이 원장의 입” “이 원장이 부동산 시장의 최대 리스크가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장은 몸살을 앓았다.
금감원장의 사과에도, 대출을 둘러싼 상황이 나아질지는 의문이다. ‘자율’을 앞세워 금융당국이 가계대출과 대출 실수요자 보호 책임을 모두 은행권에 떠넘겼기 때문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 총량제라는 페널티를 받지 않으려면 대출 총량을 줄이면서도 실수요자 피해가 없도록 대출해야 하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은행마다 ‘땜질식 대책’을 내놓는 상황에서 대출 실수요자의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출을 둘러싼 혼란이 빚어진 건 대출 규제를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탓이다. 집값을 잡기 위해 금융 당국이 대출을 임의로 막으라는 신호를 보내면서 이른바 관치에 의한 시장 왜곡이 발생했다. 담보가 있고, 상환 능력을 가진 이들에게 은행 등 금융사가 적절한 심사를 통해 대출을 집행하는 시장의 정상적인 기능이 사라지며 실수요자만 골탕을 먹게 됐다. 정부 내의 정책 조율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가계대출 급증을 주도한 정책 대출과 관련해 대상을 줄이지 않겠다고 했다. 또 다른 정책 엇박자다.
정책에 있어 중요한 것은 일관성과 연속성, 예측 가능성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의 대출 관련 정책은 낙제점이다. 금융당국의 일이란 일관성 있는 정책을 통해 시장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야 뒤늦은 사과가 사과로 그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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