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수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美 대선 예측 왜 유독 어려울까
7개 경합주 여론조사마다 초박빙
언더독vs압승… 판세 읽기 힘들고
선거예측 모델도 정확성 떨어져
‘Razor thin(초박빙)’ 미국 언론들이 11월 대선을 설명할 때 상투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10일(현지시간) 기준으로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미국 대선에 관한 분석과 전망을 들을 때면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는 야구계의 격언이 떠오른다. 민주당은 대선 후보를 조 바이든 대통령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으로 전격 교체하면서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승부의 추는 아직 어느 한쪽으로 조금도 기울지 않았다.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각종 사법 리스크와 추문에도 지지층이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외교가에서도 “해리스가 상승 모멘텀을 얻은 것일 뿐 뒤집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목소리가 대다수다.
우선 9월이 되면서 해리스의 지지율은 정점을 찍고 더 이상 치고 나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동안 대선 후보 교체라는 극적 요소에다 8월 민주당 전당대회까지 이어지면서 해리스에게 모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하지만 여름이 가면서 ‘파티’도 끝났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해리스의 우위는 사라지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시에나대학과 함께 지난 3~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늘 대선이 치러진다면 누구에게 투표하겠느냐’는 질문에 해리스는 47%, 트럼프는 48%를 기록했다. 해리스가 앞서는 것으로 나온 여론조사도 많지만 두 후보 간 격차는 줄었다.
지지율뿐 아니라 미국 선거제도의 복잡성이 더욱 예측 불가의 상황을 만들고 있다. 미국은 단순 다수 득표자가 당선되는 것이 아니라 주별로 다수 득표 후보가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승자독식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전체 538명의 선거인단 중 과반인 270명을 확보해야 대선에서 승리한다.
이미 선거인단 538명의 향배는 대부분 정해졌다. 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 등 동·서부 해안의 주들은 민주당 성향이 압도적이고, 텍사스주 등 중·남부 내륙의 주들은 공화당 지지가 굳건하다. 남은 것은 93명의 선거인단이 걸린 7개 경합주 표심. 7곳은 러스트벨트(북동부 공업지역)인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주, 그리고 선벨트(남부지역)인 조지아·네바다·애리조나·노스캐롤라이나주다. 이 7곳의 표심은 여론조사마다 전망이 엇갈릴 정도로 초박빙 상태다.
가장 최근 경합주 여론조사인 CBS뉴스 조사 결과, 두 후보 지지율은 펜실베이니아에서 50%대 50%로 동률을 이뤘다. 미시간과 위스콘신에선 해리스가 1~2% 포인트 앞섰지만 모두 오차범위 내였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맞붙은 2016년 대선 때 사상 최악의 여론조사 예측으로 망신을 당한 바 있다. 거의 모든 언론이 클린턴의 압승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였다. 트럼프 지지층 중에서 여론조사에 잘 응하지 않는 이른바 ‘샤이 트럼프’가 얼마나 투표장에 나오느냐에 따라서 경합주의 선거 결과가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매일 여론조사 평균을 업데이트하면서도 이렇게 안내 문구를 붙인다. “대선 예측이 아니라 여론 현황에 대한 스냅샷일 뿐입니다.” 뉴욕타임스도 “여론조사가 최종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 것은 정상이며 때로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고 안내한다.
두 후보의 선거 전략도 판세 예측을 어렵게 한다. NBC뉴스는 지난 7일 ‘언더독(underdog·약자) VS 압승(blowout)’이라는 제목으로 해리스와 트럼프 캠프의 선거 전략을 비교해 보도했다. 여론조사에서 이기고 있는 해리스 캠프는 매번 ‘언더독’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해리스 캠프의 선대위원장 젠 오말리 딜런은 최근 당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우리는 분명한 언더독”이라며 “이번 선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트럼프는 선거 초반부터 압승을 선언하며 해리스와는 완전히 다른 노선을 택했다. 트럼프는 지난 8일 소셜미디어에서 “부정 투표가 없다면 우리는 펜실베이니아에서 크게 이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과학자 렉스 프리드먼과의 팟캐스트 인터뷰에서도 “우리가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다”며 “박빙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박빙 선거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리스가 엄살을 부리는 것인지, 트럼프가 허풍을 떠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여론조사보다 한 발 더 나아가 후보의 승리 확률을 족집게 식으로 예상하는 ‘선거예측 모델’도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폴리티코는 지난 3일 ‘선거예측을 믿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확률적 예측은 종종 잘못 해석되는 경우가 많으며, 잘못 해석될 경우 유권자들이 투표를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파이브서티에이트, 실버불레틴 등 선거예측업체가 각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 단위로 예측하기도 한다. 실버불레틴은 최근에도 트럼프의 승리 확률이 58.2%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예측의 정확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일례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크게 뒤지고 있을 때도 파이브서티에이트는 바이든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해 정확성 시비가 일었다. 선거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면 여론조사와 선거예측은 정지된 순간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일 뿐이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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