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 일본, 얼버무려야하는 대상 되나

고정애 2024. 9. 1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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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

오늘은 『맥베스』(권오숙 역)로부터 시작한다.

“쾅, 쾅, 쾅. 악마의 이름으로 묻건대, 네놈은 또 누구냐? 오라, 저울의 양쪽 눈금에 대고 맹세하는 사기꾼 놈이로구나. 신의 이름을 팔아 잘도 반역을 저질렀다만 하늘을 상대로 사기를 치진 못했구나. 그래 어서 오너라, 이 사기꾼 놈아.”

술에 취해 지옥문을 지킨다고 착각한 문지기의 독백이다. 셰익스피어가 누군가. 그저 넋두리일 순 없다. 개신교 국가에서 탄압 속에 사는 가톨릭 신자의 어법, ‘얼버무리기(Equivocation)’에 대한 조롱이다.

당시인 1605년 일군의 가톨릭 인사들이 개신교 왕과 지배계층이 의회에 참석하는 순간, 의사당을 폭파할 음모를 세웠다. 이른바 ‘화약 음모 사건(Gunpowder plot)’이다. 사전에 발각돼 음모자들은 무참히 처형됐다. 이때 함께 처형된 사제(헨리 가네트)가 있다. 알고도 신고하지 않은 게 바티칸과 연결된 역모로 몰렸다. 그의 ‘얼버무리기 논문’이 반역의 증거가 됐다. 가톨릭 신자임을 인정하면 박해를 받으니 인정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신앙을 부인할 순 없는 이들을 위한 글인데도 말이다. 화약 음모 사건을 계기로 얼버무리기 자체가 대단한 문제가 됐다. 문지기의 말 중 ‘양쪽 눈금에 대고 맹세하는 자’란 냉소에서도 완연하다. 원문엔 ‘얼버무리는 자’인데 ‘사기꾼’으로까지 번역된 이유일 것이다.

「 이념 재단 힘든 역사 행위의 복합성
야권 등의 과도한 친일 낙인찍기로
지적 호기심이 위험한 일 되어버려

그러나 그건 지배층의 논리다. 사실을 말하는 게 위험한 시대, 달리 선택할 방법이 있었겠나.

얼버무리기가 떠오른 건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과 일부 단체들의 ‘친일’ 낙인찍기가 너무도 거칠어서다. 친일만으론 부족했는지, ‘뉴라이트=친일’로 확장했다. 이젠 공직을 염두에 둔 멀쩡한 사람이라면 아예 일본과 관련해선 교과서 수준을 벗어난 발언을 해선 곤란하겠다 싶을 정도다. 교과서도 잘 골라야 하고.

2023년 12월 일제강제 징용 피해자 고(故) 최병연 씨의 유해봉환 추도식이 열리는 전남 영광군 영광예술의전당 앞에서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일본의 사죄·배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장 광복회의 뉴라이트 판별법을 보자.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하는 자나 단체’도 있던데, 자신들 주장대로면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이 건국인데 그때 초대 대통령도 이승만 아닌가. 그 이승만은 뭐라고 부를 텐가. ‘식민사관과 식민지근대화론을 은연중 주장하는 자나 단체’도 뭐라던데, 1920년대 경성 시내를 활보하던 모던 걸과 모던 보이 얘기를 하면 혹 ‘은연중’이라고 오해하는 건 아닌가.

과거는 일면적이지 않다. 재임 중 ‘제2건국위’를 꾸린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해방 직후 건국준비위원회 목포지부에 들어갔다. 그는 2011년 쓴 자서전에서 “우리 민족이 독립해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DJ가 “해방공간에서 민족을 구하려고 동분서주했던 빼어난 인물”이라고 본 건준위원장 여운형을 두고 당시 미국은 “일본이 패망하면서 여운형에게 거금을 주고 구명도생(苟命圖生)했다. 도덕적 용기가 부족하다”(신복룡)고 봤다.

극단적 사례겠지만, 식민지 조선 출신으로 일제의 포로감시원으로 잔혹한 행위를 해 전범이 된 이들은 또 어떤가. 우리 사회는 뭉뚱그려 피해자의 범주에 넣는다. 사학자 임지현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에서 “자신에게 적대적인 외부 세계를 전유하며 꾸불꾸불 살아가는 역사적 행위자의 구체적인 삶은 추상적인 이념의 잣대로 측량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것”이라며 “집합적 무죄의 코드가 기억 문화를 지배하는 한, 식민지 조선인이나 탈식민지 한국인이 가해자일 수도 있고 또 가해자이기도 했다는 기억이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은 더욱 제한된다”고 했다.

역사를 박제해 두어선 안 된다. 다양한 면을 볼 수 있어야 배울 수 있다. 논쟁적 주장이라면 논쟁으로 맞서면 된다. 그러나 지금의 근대사는 엄청난 열정으로 휘두르는 무기가 되고 있다. 당시에 대한 지적 호기심은 위험천만한 일이 되고 있다. 어찌해야 하나. 안 배우기? 배우더라도 얼버무리기? 참 볼품없는 시대다.

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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