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재의 시선] 삼성반도체사관학교에 만족할 건가

이상재 2024. 9. 1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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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재 경제산업부디렉터

요즘 국내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는 ‘굴욕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10일 삼성전자 주가는 6만6200원으로 마감해 전 거래일(6만7500원)보다 1.93% 하락했다. 6거래일 연속으로 주가가 빠지더니 급기야 시총 400조원이 무너졌다. 지난 7월 10일 연고점(8만7800원) 대비로는 24.6%가 쪼그라들었다.

특히 외국인과 기관 투자가에게 인기가 시들해졌다. 최근 한 달 새 외국인·기관은 삼성전자 주식을 6조원 이상 팔아 치웠다. 개인 주주도 등을 돌리고 있다. 삼성전자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6월 말 기준으로 소액 주주는 424만여 명으로, 1년 새 142만여 명(25.1%)이 줄었다. 증권가 눈높이도 낮아졌다. 지난달 초 iM증권은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10만1000원에서 9만7000원으로 낮췄다. 비슷한 시기 목표 주가 13만원을 제시했던 KB증권은 한 달 만에 9만5000원으로 하향했다. 현대차증권과 DB금융투자도 마찬가지다. 시총 1위 대장주에 대한 목표 주가 하향이 이례적이라고 하지만, 시장에선 ‘뒷북’이라는 견해가 더 많다.

「 주식시장서 시총 400조 무너져
단기 목표 치중, 인재 유출 심각
과감한 비전과 기술 해자 필요해

‘삼성전자=10만 전자’ 기대감이 컸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8만 전자에서 7만 전자로 하락하더니, 이제 6만 전자로 내려앉았다. 한국 증시가 출렁일 때마다 방어벽 역할을 했다는 것도 옛말이 되고 있다. 하루에 3% 안팎으로 주가가 하락하면서 ‘삼성전자 때문에 국장(한국 주식시장)이 부진하다’는 목소리가 나올 판이다.

이유는 여럿이다. 미국발 경기 침체 우려와 인공지능(AI) 반도체 버블론이 불거졌고, D램 상승세가 꺾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고점을 준비하다’ 보고서를 통해 반도체 다운사이클 진입을 내다봤다. 세계 경기가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면서 3분기 스마트폰과 전자제품 판매도 부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5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3E) 공급으로 반전이 가능하다는 반론도 있다.

국내 증시가 외부 변동성에 취약하다는 한계도 있겠지만, 최근 삼성전자의 주가 부진은 시장이 삼성의 미래 경쟁력에 대해 물음표를 갖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주가는 그 기업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가늠자 가운데 하나다. 한 마디로 ‘혁신 DNA’를 어필하든, 아니면 경쟁자의 진입을 억제할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라도 보여줘야 한다. 아이폰을 선보인 애플, 챗GPT로 AI를 대중화한 오픈AI 등이 전자일 것이다. AI 칩 시장을 독점한 엔비디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지존으로 불리는 TSMC 등은 확고한 진입장벽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은 물론 좋은 기업이다. 반도체와 스마트폰·TV 등에서 세계 1등을 놓치지 않고 있으며, 우수 인재와 리더십, 브랜드 파워도 자랑한다. 하지만 혁신 DNA도, 확실한 경쟁 우위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가 혁신적 테크기업이 아니라 견실한 제조기업, 성장주가 아니라 배당주로 전락할 판이다. 이미 글로벌 증시에서는 이렇게 평가받고 있다.

내부 분위기는 어떤가. 삼성 안팎에 따르면 설비 투자 의사결정은 늦어지고, 연구조직은 양산 지원에 치중하는 모양새다. 현장에선 재고 감축에 더 신경 쓰고 있다. 당장 돈 되는 것만 하겠다는 얘기 아닌가. 게다가 파운드리와 시스템LSI 사업부는 경쟁사와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임원 주말 근무나 회식비 삭감 같은 구태의연한 허리띠 졸라매기도 여전하다.

여기에다 기술 인력 유출이 ‘심각’ 단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서 들리는 말이 ‘삼성반도체사관학교’다. 애써 키워 놓은 젊은 두뇌를 SK하이닉스는 물론 미국 마이크론·인텔 등에 빼앗기면서, 거칠게 말해 경력직 조달창구가 됐다는 얘기다. 취업 커뮤니티엔 ‘(삼성전자에서 가까운) 동탄에서 이천(SK하이닉스 본사)까지 셔틀이 다니느냐’ ‘이천은 주택자금을 얼마나 빌려주나’ 같은 글이 자주 올라온다. 유능한 경영진을 길러내고, 이들이 여러 기업으로 스카우트되면서 ‘최고경영자(CEO) 사관학교’로 불렸던 삼성으로선 자존심 구겨질 일이다.

삼성전자 주가 반등 모멘텀은 내부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 시장을 압도할 신기술 해자를 제시하고, CEO가 직접 기업설명회(IR)에 나서 주주와 소통해야 한다. 무엇보다 인재 블랙홀이 돼야 한다. 젊은 직원에 대한 사기진작 방안도 마련하되, 고급 두뇌를 스타급 대우로 모셔와야 한다. 정부와 국회도 거들어야 한다. 첨단산업 지원·육성을 위한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이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전기를 원활히 공급하기 위한 국가전력망특별법 같은 반도체 지원 방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삼성반도체사관학교에 만족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상재 경제산업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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