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프리즘] ‘여기 그리고 바로 지금’

위성욱 2024. 9. 11.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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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욱 부산총국장

어느 날 수도꼭지에서 더는 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 닐 셔스터먼과 재러드 셔스터먼의 장편소설 『드라이』는 가뭄으로 물 공급이 중단된 이후 ‘워터 좀비’가 되어 서로를 공격하는 등 식수 부족으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들을 다양한 상상력으로 보여주면서 기후 재난의 심각성을 환기했다. 특히 이 소설은 기후 위기에 대한 거대 담론이 아니라 우리 실생활에서 기후 재난이 어떤 피해를 줄 수 있는지 현미경을 들이댄 것처럼 보여주면서 충격을 줬다.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닷새간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회 ‘하나뿐인 지구영상제’에서도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다양한 영상들이 상영됐다. 대표적인 것이 개막작으로 선정된 ‘히어나우 프로젝트(The Here Now Project)’다.

세계 환경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6월 4일 한 시민이 국회에 세워져 있는 기후위기시계를 바라보고 있다. [뉴스1]

폭우로 물에 잠긴 도로를 한 자동차가 위태롭게 지나간다. 자동차 안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던 아이가 “아빠 무서워”라며 울먹이자, 아빠는 “빨리 기도해”라고 재촉한다. 그러자 아이는 황급히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신이여, (우리를) 안전하게 하소서”라며 절박하게 기도한다.

이처럼 영상은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한 홍수, 가뭄, 폭설과 폭염, 초대형 화재 등 일반인들이 직접 겪은 자연재난을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을 다큐멘터리 형태로 편집해 묶어냈다. 영상 곳곳에서 사람들은 놀랍고 충격적인 자연 재난 앞에서 “내 평생에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어” “숨쉬기가 너무 힘들어”라며 놀라움과 탄식의 말을 쏟아냈다. 기후 과학자들은 뉴욕 브루클린 거리나 시베리아 숲에서 발생하는 자연재난에 대해 반세기 동안 예측해 온 극한 날씨가 ‘여기 그리고 바로 지금’ 도래했다고 경고한다.

개막작이 보여주듯 이번 영상제의 가장 큰 메시지는 더는 기후 위기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난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십수 년 전부터 과거 경험하지 못한 폭우와 폭염, 가뭄 등 이상 기후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올해도 현재까지 폭염과 이상 열대야 현상이 지속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는가.

굳이 기후 위기 시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대로라면 지구 온도가 1.5도 이상 상승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거라는 위기감은 누구나 가질 정도로 환경이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 더 이상 누군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서다. 따라서 영상제는 끝났지만 ‘여기 그리고 바로 지금’ 나부터 행동에 나서야 한다. 지금 변하지 않으면 단순한 목마름을 넘어 씻지 못하고 화장실도 가지 못해 인간의 존엄마저 지킬 수 없는 소설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할지도 모른다.

위성욱 부산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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