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퍼스트 젠틀맨 도전이라는 관전 포인트
정치가 난장(亂場)이 된 건 태평양 건너 미국도 마찬가지. “아이는 안 낳고 고양이나 기르는 여자들이 나서는 게 문제”라는 전근대적 주장, “이민자들이 반려견을 식용으로 먹고 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후보들 입에서 버젓이 오르내린다. 그럴수록 대비되는 신선한 존재가 있으니,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의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다.
그가 2022년 부통령의 남편, 즉 세컨드 젠틀맨 자격으로 방한했을 때 진행한 인터뷰에서 유독 인상적이었던 말이 있다. “내가 최초의 세컨드 젠틀맨이지만, 마지막은 아닐 것이다”라는 말. 그의 장모, 즉 해리스 부통령의 어머니가 어린 딸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해 자주 했다는 말을 부러 차용한 답변이었다. 부인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자 국가의 성공이라는 확신이 그에겐 있었다. “아내의 일을 돕기 위해 나의 경력은 잠시 접어두는 게 진짜 남자다운 것”이라는 말과 함께 기억에 오래 남았다.
인터뷰 후 동행한 광장시장 나들이에서 김치전과 빈대떡을 맛보는 그를 보고 시민들은 “저분이 부통령이 아니고 부통령의 남편이라고요?”라고 자주 물었다. 세컨드 젠틀맨이라는 말도 아직은 귀에 설다. 그런 그가 이제 미국 최초의 대통령 남편 즉 퍼스트 젠틀맨이 되기 위해 동분서주 중이다. 현지시간 10일 진행될 첫 TV토론에서도 누구보다 손에 땀을 쥐고 있을 사람은 엠호프일 터. 백악관의 새 주인은 약 50일 후 결정된다.
엠호프의 존재가 중요한 까닭은 그의 러브스토리 때문은 아니다. 그의 존재는 기득권에 도전하는 소수의 조력자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여성이자 유색인종 대통령 후보의 특수성에도 불구, 백악관에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해리스 후보와 그의 남편 엠호프는 이미 역사를 썼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08년 11월 4일 첫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후 했던 말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이 여전히 모든 것이 가능한 나라인지 묻는 당신에게, (내가 당선된) 오늘밤이 바로 답이다. 변화가 드디어 찾아왔다.” 실제 엠호프가 퍼스트 젠틀맨이 될 것인지 아닌지를 떠나, 출생과 함께 타고난 성별이나 피부색을 떠나 모두 공정한 기회를 누리고 도전을 꿈꿀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미국 정치엔 여전히 희망이 보인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궁금하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여전히 모든 것이 가능한 나라일까. 변화가 찾아올 순 있을까.
전수진 투데이·피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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