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5성 호텔만 5개…KT의 외도?
‘통신 공룡’ KT가 유휴 부동산 개발로 호텔업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서울 5성 호텔 기준 KT는 이미 국내 유통 대기업 롯데와 신세계를 앞질렀다. 인공지능(AI) 등 KT가 강점을 가진 IT 기술을 접목해 시너지를 도모할 수 있다는 점도 호텔 사업 확대에 공을 들이는 이유로 분석된다.
내년 ‘앰배서더 풀만’ 문 열어
통신업계와 대체투자업계에 따르면 KT가 자회사인 KT에스테이트를 앞세워 옛 전화국 부지를 잇따라 개발하면서 국내 호텔 시장점유율을 빠른 속도로 늘리고 있다. 내년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들어설 ‘앰배서더 풀만’을 포함, KT가 서울 요지에 보유한 5성급 호텔만 5개다. 서울에서 5성급 3개를 가진 롯데(소공동 호텔롯데·잠실 롯데호텔 월드·시그니엘 서울)와 신세계(소공동 웨스틴 조선·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JW 메리어트 서울)를 이미 앞질렀다.
앰배서더 풀만은 글로벌 호텔 체인 아코르 브랜드로 자양동 옛 KT강북지역본부 자리에 내년 문을 연다.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바로 옆으로 접근성이 뛰어나다. 광진구에는 비스타 워커힐, 그랜드 워커힐 등 5성 호텔이 2개 있지만, 지하철역이나 도심과 다소 거리가 있다. 앰배서더 풀만이 영업을 시작하면 광진구 일대 호텔 간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KT는 공기업 시절 확보해둔 전화국 주변 토지, 건물 등 유휴 부지를 활용하려 KT에스테이트를 설립하고 부동산 임대주택과 호텔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지역별로 운영하던 전화국이 통신 기술 발달로 통폐합되면서 유휴 부지 개발이 과제로 대두됐다. 전화국 대부분은 역세권에 위치해 부동산 가격이 높았던 터라 알짜 부지로 평가됐다.
KT는 2014년부터 호텔 사업 닻을 올렸다. 2014년 서울 역삼동 영동전화국 부지에 신라스테이를 들인 것을 시작으로 호텔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을지전화국 부지를 개발해 2018년 노보텔 앰배서더 동대문(5성급)을 들였고, 이듬해 신사전화국 부지에는 안다즈 서울 강남(5성급)을 유치해 주목받았다. 2021년 송파전화국 부지에선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5성급)이 영업을 시작했다. 2022년에는 명동전화국 자리에 메리어트 계열 르메르디앙 서울 명동(5성급)과 목시 서울 명동(3성급)을 열었다. 하얏트 계열 안다즈, 아코르 계열 소피텔, 메리어트 계열 목시는 KT가 국내에 처음 들여왔다. 지금까지 국내에 없던 브랜드를 KT가 유치했다는 점에서 국내 호텔 시장 다양성을 키우는 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부동산 개발 사업을 주도하는 계열사는 KT에스테이트다. KT에스테이트는 KT 보유 부동산 개발·투자와 임대·운영관리가 핵심 업무다. 2021년 3월부터 삼성물산 건설부문 부사장 출신 최남철 대표이사가 이끈다. 2010년 8월 KT 완전자회사로 설립돼 2012년 KT 보유 부동산을 현물 출자받아 사업 여력을 키웠다. KT에스테이트는 지난해 말 별도 기준 자산총계 2조5241억원 중 약 45%(1조1391억원)가 투자부동산이다. 지난해 영업수익(매출) 5918억원 중 31%가 부동산임대수익(1845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특수관계자 KT와 거래로 벌어들이는 임대수익만 매년 900억원 안팎이다. 나머지 수익원은 부동산분양수익, 부동산위탁관리수익, 용역수익 등이다.
사업 확장으로 KT에스테이트는 KT 연간 영업이익의 10% 이상을 책임질 정도로 위상이 커졌다. 호텔부문 매출도 급증세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2020년 297억원이었던 KT에스테이트 호텔부문 매출은 2021년 497억원, 2022년 1279억원, 2023년 1836억원으로 늘었다. 전화국 부지 개발이익에 글로벌 호텔 체인에 받는 위탁수익 덕을 톡톡히 봤다. 특급 호텔을 들여 자산 가치도 크게 올랐다.
사업 구조도 대부분 위탁경영으로 수익성이 뛰어나단 평가다. 위탁경영은 글로벌 호텔 체인에 경영을 맡기고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다. 일종의 전문경영인 체제로 글로벌 호텔 체인이 주로 사용하는 성장 전략이다. 건물을 소유한 기업(KT)이 호텔경영 노하우가 있는 업체(아르코 등)에 경영을 맡기는 형태다. 호텔 사업자 입장에서는 대규모 고정비 투자에 따른 사업 리스크를 줄여 자산 경량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덕분에 KT에스테이트는 모회사 KT 배당수익 기여도가 가장 높은 알짜 계열사로 탈바꿈했다. KT에 현물 출자받은 부동산을 그룹 계열사에 임대하며 기본적인 현금흐름이 깔려 있는 데다, 호텔 등 사업 다각화에도 나서고 있어서다. 최근 수년간 KT 배당금 기여도는 BC카드와 KT스카이라이프 등 자회사가 높았지만 지난해에는 KT에스테이트가 175억원을 배당해 가장 많았다. KT는 KT에스테이트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어 배당금 외부 유출이 없어 배당 수익원으로 존재감은 더욱 부각된다.
투자 다각화 속도
KT는 호텔 사업을 AI 관련 B2C(기업 대 소비자 시장) 사업 확대의 지렛대로 삼을 계획이다. 최근 통신업계에서 AI 등 비통신 사업 다각화가 화두로 떠올랐는데, 아직 유의미한 수익을 창출하는 곳은 거의 없다. KT 입장에선 호텔 서비스에 AI를 접목해 운영·비용 효율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체 레퍼런스를 축적한 뒤 다른 호텔을 대상으로 B2B(기업 대 기업) 다각화까지 확대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미 KT는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동대문 호텔 앤 레지던스에 ‘AI 컨시어지’ 서비스와 호텔 로봇 ‘엔봇’을 도입했다. KT의 AI 음성 인식 플랫폼 기가지니 인사이드를 활용한 AI 컨시어지 서비스 메인 화면에는 실제 사람을 촬영해 AI 휴먼 기술로 모델링한 AI 호텔 직원이 띄워져 있다. 고객이 원하는 정보를 음성으로 질문하면 실시간으로 답변을 해준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 위치 알려줘”라고 물으면 호텔 레스토랑 위치를 안내해주는 식이다. 사람을 인식하는 센서가 내장돼 고객이 접근하면 먼저 인사도 건넨다. 기존 키오스크 형태 호텔 안내 기기보다 편의성이 높고 IT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자율주행과 공간 매핑 등 기술이 적용된 호텔 로봇 ‘엔봇’도 운영 중이다. KT는 호텔 특화 시나리오를 AI 딥러닝에 적용하는 등 지속적인 개선으로 AI 서비스 고도화에 나선다.
다만, 부동산 사업 확대 과정에서 ‘공기업 시절 자산으로 땅 짚고 헤엄치기’식 사업을 벌인다는 눈총도 받는다. 이에 KT에스테이트는 기존 전화국 등 유휴 부지 기반 개발·임대 사업에서 외부 부동산으로 수익 다각화를 서두른다. 기존 유휴 부지를 임대주택·호텔·물류센터 등으로 개발·임대하는 사업이 임계점에 도달하자 외부 부동산으로 시선을 돌린 셈이다.
당분간 KT에스테이트는 비용 절감 등 손익 구조를 점검하면서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연결 기준 KT에스테이트 현금성자산은 지난해 말 1641억원으로 전년 동기(344억원)보다 약 4.7배(377%) 증가했지만 대형 부동산 매매에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이 오가는 점을 감안하면 여력이 충분친 않다. 특히 지난해 순이익이 전년 대비 500억원 가까이 감소하는 등 수익성이 악화한 만큼 손익 구조를 점검할 시점이라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통신 사업이 낮은 성장세를 보이지만, 자회사 KT에스테이트 호텔 사업이 양호하며 KT클라우드 IDC(서버와 인터넷 회선을 대여하는 설비) 매출이 늘고 BC카드(케이뱅크)도 성장세”라며 “추가 성과에 따라 자사주 매입과 배당금 증가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내다봤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6호 (2024.09.11~2024.09.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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