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 글쓰기 두려움 없애는 방법
2024년 2월부터 주 1회 어르신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싣습니다. <기자말>
[최은영 기자]
끝나지 않는 더위가 짜증날 법도 한데 오늘은 이 더위가 반갑다. 어르신들과 하는 글쓰기 수업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에서 쓰일 좋은 소재가 될 거 같기 때문이다.
마침 수업하는 복지관은 추석 행사 준비로 시끌벅적하다. 오호, 더 잘 됐다. 내가 할 말을 복지관이 만들어 주는구나!
"복지관은 추석 행사를 한다고 이리 시끄러운데 날씨는 추석 같나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더운 날씨 하소연이 터진다. 잠깐 듣던 내가 다시 끼어들었다.
"글쓰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먼저 필요하다고 했어요. 지금 이 날씨, 하실 말 많으시죠? 오늘 글쓰기 시작은 <여름 날씨>로 해볼게요."
멈칫하더니 바로 쓰시는 분, 창밖 보며 한숨 쉬시는 분, 나를 보며 입 모양으로 '못 쓰겠어!' 하시는 분,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 늦더위 매일 온도를 확인하신다는 어르신 |
ⓒ 픽사베이 |
"점점 가파르게 더워지는 날씨가 무섭다. 아침에 일기예보부터 확인한다. 아이고, 오늘은 34도라네."
'아이고'에서 여기저기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입말 그대로 쓰셔도 좋다고 지나가듯 말했는데 그걸 쓰셨다. 강사의 설명을 바로 실행주셔서 감사하다고 나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 나가도 되는 나는 다행이다. 한편으로 이 늙은이는 밖에서 일하는 사람 생각하면 마음이 좀 그렇다. 그래도 여름은 지나간다. 겨울이 오면 지난 날들의 그 뜨거운 것을 잊고 또 그리워지겠지."
글을 처음 써보신다는 83세 어르신은 날씨에 대한 글을 이렇게 마무리 하셨다. 71세 다른 어르신이 많이 써보신 분 같다며 먼저 박수를 보냈다. 아이고 어르신은 종이에 얼굴을 파묻으며 '아이고 진짜인데...'라고 하신다. 그 '아이고'에 또 한번 웃음이 터진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반 젊은이, 65세 어르신이 손을 드신다. 복지관 60대는 청년중의 청년이다.
"후덥지근한 날을 벗어나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다. 국회 도서관과 시청 도서관이 좋다. 연배 비슷한 사람들이 모였다. 90프로 이상이 졸고 있다."
90프로가 졸고 있다는 말에 대놓고 웃음이 터졌다. 그런 웃음이 나는 고맙다.
복지관에 글쓰기를 배우러 오신 어르신이지만 대부분 본인 글을 공개하는 것을 불편해 하신다. 어떤 분은 발가벗는 기분이 든다고까지 하신다.
그분들이 한참 활동하실 때의 글쓰기는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신성한 영역이었다. 그러니 불편해 하는 게 당연하다.
▲ 내풀책 수업 중 어르신들께 목표와 계획을 여쭤봤더니 |
ⓒ 최은영 |
▲ 목표 예시 15주동안 어떤 목표를 갖고 갈지 예시를 보여드렸다 |
ⓒ 최은영 |
어떤 선택을 하셨든지 간에 매주 글을 공개하고 같이 고치는 건 필수라고 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신다. 처음에 날씨로 같이 웃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쉽게 끄덕이셨을까. 늦더위를 고마워 할 이유다.
출석부에 적어놓은 메모를 사진찍어 왔다. 이 메모를 바탕으로 다음 시간에는 개별 계획을 세워드리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어르신들 앞에 선다. 계획은 여전히 흐릿하지만, 그분들의 미소와 기대 가득한 눈빛이 내 나침반이 된다.
쓰는 과정에서 느끼는 작은 성취들이 어르신들의 마음을 채우고, 그걸 바라보는 나는 그저 돕는자로 한 걸음 나갈 뿐이다.
글쓰기란 결국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다. 계획이 틀어져도 괜찮다. 어르신들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 이야기가 종이에 흘러나오는 순간이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목표는 이루어진 셈일 테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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