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총선 때는 실각"...이스라엘 안팎서 네타냐후 압박 커졌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국내외 압박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튀르키예 출신 미국인이 이스라엘군이 쏜 총에 사망한 사건에 대한 조사를 재차 촉구하고 나섰다. 이스라엘 내에선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게 끌려갔던 인질 시신이 발견되고 휴전 협상이 공전하면서 민심 이반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조기 총선이 열리면 네타냐후 총리가 실각할 것이란 여론조사도 나왔다.
9일(현지시간) 베단트 파텔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지난 6일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대 반대 시위에 참여하던 튀르키예 출신 미 시민권자인 인권운동가 아이세뉴르 에즈기 에이기(26)의 피격·사망 사건에 대해 이스라엘에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파텔 부대변인은 “이스라엘이 이번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있고, 조사 결과가 무엇이든 철저하고 투명하게 공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조정관도 “(이스라엘이) 신속하게 조사 중인 것으로 보인다”며 며칠 내 조사 결과가 발표될 것이라고 전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에이기를 애도하며 “이스라엘의 점령과 대량 학살 정책을 중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망한 미국인 가족, 바이든 정부에 조사 촉구
이날 서안 지구에선 에이기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그의 시신은 팔레스타인 국기에 싸인 채 옮겨졌고 군중은 정의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에이기의 사망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평화운동가 조나단 폴락은 AP통신에 “두 명의 이스라엘 군인이 근처 집 지붕에 올라 그룹을 향해 총을 쏘고 총알 중 하나가 에이기 머리를 맞추는 것을 목격했다”며 “이번 살해는 군인들과 시위대 사이의 충돌이 있은 뒤 평온한 시간에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군인들에게 돌을 던지고 위협을 가하는 등 폭력 행위를 한 주요 선동자들에게 총격을 가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에이기의 가족은 바이든 행정부에 독립적인 조사를 시작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 간 관계가 악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가자지구 휴전이 지연되는 가운데 하마스에 납치된 미국인 인질이 지난달 31일 숨진 채 발견되면서 미국 내 이스라엘에 대한 불만 여론이 큰 상황이어서다.
“조기총선 땐 네타냐후 120석 중 49석 그쳐”
이스라엘 내 민심 이반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하마스에게 인질로 끌려갔다 지난달 31일 시신이 발견된 오리 다니노의 부친인 랍비 엘하난 다니노가 네타냐후 총리와 지난 주말 나눈 대화 녹음이 이날 공영방송을 통해 공개돼 여론이 들끓었다.
다니노는 네타냐후에게 “내 아들은 당신이 하마스를 감시하기 위해 만든 터널에서 살해당했다”며 “분열을 조장하고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우선시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간청했다. 이어 그는 아들을 장사지낼 수 있었던 게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네타냐후 총리는 “인질을 되찾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현지에선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여과 없이 나오고 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날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최북단 도시 나하리야 주민들 사이에 “정부로부터 버림 받았다”는 원망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헤즈볼라의 드론 공격으로 살던 아파트가 파괴된 주민 탈 마사드는 “정부가 전쟁이 계속되도록 방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공개된 이스라엘 매체 채널12의 여론조사 결과 당장 선거가 치러진다면 네타냐후가 이끄는 연정이 이스라엘 의회(크세네트) 120석 중 49석만 확보하는 데 그치고 야권이 61석을 확보할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 503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다.
이 경우 현재 64석을 차지하고 있는 네타냐후 연정은 과반의 지위를 잃게 된다. 인질 사망과 휴전협상 공전에 실망한 민심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향후 이스라엘 야권이 조기 총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한층 높일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텐트촌 폭격 “온 가족이 모래 밑으로 사라졌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군은 10일 가자 지구에서 피란민이 몰린 텐트촌을 폭격해 대규모 사상자를 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의 인도주의 구역 내에서 하마스 조직원들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이번 난민촌 공습으로 최소 40명이 숨지고 60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가자지구 민방위 마무드 바살 대변인은 “온 가족이 모래 밑으로 사라져버린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민간인 사상자 발생에 국제사회의 비난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맞춰 팔레스타인 당국은 이스라엘에 6개월 이내 가자지구와 서안에서 완전히 떠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유엔 총회에 제안하기로 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은 해당 결의안을 오는 22일 열리는 유엔 총회 고위급 회담에서 표결에 부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백일현 기자 baek.il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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