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본사에서 활약하는 자랑스런 한국인!
LEGO I 유미나
한국을 떠난 이유 뉴욕에 있는 미술 대학교에서 장난감 디자인을 전공할 때부터 희망했던 1순위 기업이 레고였어요. 본사가 있는 덴마크로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독자와 공유하고 싶은 기업 문화 직급에 관계없이 누구와도 자유롭게 피드백을 주고받고, 협업할 수 있는 수평적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무엇보다 디자이너의 판단을 우선적으로 신뢰하고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사내에는 ‘피플 리더’라는 직책이 있는데 개인의 성장과 성취를 지원하는 사내 상담사이자 직원들의 든든한 지원군 같은 존재죠. 이런 직책이 있다는 게 특별하게 느껴져요.
타지에 정착하며 겪은 불합리한 상황 긴 해외 생활을 하며 차별받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기억이 희미해졌어요.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미국에서 취업을 준비할 때 한 기업이 영주권을 지원해주겠다는 명목으로 현지인보다 연봉을 낮게 제안하더라고요. 바로 거절했습니다.(웃음)
자라온 문화적 배경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땐 똑같은 머리 스타일을 하고 교복과 양말, 신발까지 교칙에 맞추는 생활을 했는데, 교환학생으로 간 미국 학교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더라고요. 또 상대평가로 경쟁식 교육이 이루어지는 한국에 비해 미국은 개인의 성취가 중요했어요. 이러한 교육 시스템 덕분에 제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빨리 깨우칠 수 있었죠.
일하며 가장 성취감을 느낀 순간 첫 한국인 여성 레고 디자이너로 사내에서 입지를 다지는 것이 개인적인 주요 과제였는데, 이제 ‘귀여운 것을 잘 만드는 사람’ 하면 동료들이 ‘미나’를 떠올려서 뿌듯해요. 회사 직원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일을 하며 큰 동기부여가 되죠. 그리고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제가 만든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SNS에 인증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기뻐요. 최근에는 강아지 레고 세트를 제작했는데 조립한 제품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을 보며 감동받았어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과 레고로 연결된 느낌이었죠.
한국을 떠나는 여성에게 하고싶은 조언 목적이 뚜렷하고 꿈을 펼칠 계획을 세웠다면 주저 말고 떠나라! 확실히 해외에 나오면 여성에게 좀 더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커리어를 쌓는 일은 정말 정말 값져요.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것 몰랐던 새로운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 사실 내 나라가 아닌 곳에 산다는 것은 두려움이 동반되는 일이에요. 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할 수도 있고, 비자 문제로 언제든 신분이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들을 극복하며 살아갈 만큼 해외에서 하는 경험은 경이로워요. 삶의 신념 10살 때 급성폐렴으로 응급실에 실려가 전기 충격과 심폐소생술을 받고 살아났어요. 그때 두 번째 삶을 얻었다고 생각해서 내일 죽어도 후회 없는 삶을 살자고 다짐했죠. 제가 살아난 데는 분명 어떤 소명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오래도록 레고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세상에 행복한 에너지를 주고 싶어요.
POLENE I 이해인
한국을 떠난 이유 휴학 후 즉흥으로 떠난 파리 여행이 인생을 바꿨어요. 패션의 중심지,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는 사회적 분위기, 여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좋았거든요.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불어를 공부하고 직장을 다니며 파리 이주를 위한 자금을 모았죠. 그로부터 4년 후, 파리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날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나기도 한다.” 제가 애타게 찾던 마음의 고향이 어쩌면 파리가 아니었을까요?
파리에 정착하며 겪은 불합리한 상황이나 차별 프랑스는 법 앞에서 누구나 평등한 나라임은 확실해요. 유학생 신분일 때도 현지인과 다름없이 주택 보조금, 건강보험 등 다양한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었어요. 다만 일상에서 겪는 인종차별은 어쩔 수 없죠. 이젠 너무 일상이 돼서 일일이 예를 들 수도 없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자라온 문화적 배경 저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순도 100% 한국인이에요. 다만 부모님이 저를 키울 때 성 역할에 구애받지 않도록 교육에 신경 쓰셨다고 해요. 그래서 이름도 중성적으로 지었대요. 그 덕에 한국 사회에 대한 답답함을 더 크게 느꼈을 수도 있어요.
독자와 공유하고 싶은 기업 문화 폴렌느에서 전개하는 프로젝트인 ‘레 망(Les Mains)’은 가방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가죽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에요. 얼마 전에는 가죽을 가루로 분쇄한 뒤 구슬 모양으로 구워내 엮은 ‘솔레(Solé)’라는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죠. 제로 웨이스트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점이 직원으로서 자긍심이 느껴지는 부분이에요.
일하며 가장 성취감을 느낀 순간 지난 6월, 가로수길에 한국 1호 매장을 오픈한 것. 파리 본사 내 유일한 한국인으로서 잘해내고 싶다는 책임감이 있었죠. 다행히 한국 론칭이 성공적으로 끝났고, 회사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어 기뻤어요. 론칭 이벤트로 한국의 전통 공예와 차 문화 소개를 준비하며 파리 본사분들께도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소개할 수 있어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을 떠나는 여성에게 하고 싶은 조언 완벽한 타이밍이라는 것은 없어요. 준비가 완벽할 필요도 없고요. 떠나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훌쩍 떠나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무언가를 이뤄내야 된다는 부담감에서도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어요. 더 넓은 세계에서 살아보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점이 많을 거예요.
LANEIGE I 곽예나
한국을 떠난 이유 시애틀에서 태어나 LA에서 유년 시절을 지내고 학창 시절은 한국 국제학교에서 보냈어요. 그때부터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아 자연스레 패션과 메이크업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일을 하고 싶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뉴욕으로 미대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 후로 13년째 뉴욕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뉴욕은 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도시예요.
미국에 정착할 때 가장 도움이 된 3가지 첫 번째는 언어예요. 한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영어에 능숙했던 게 도움이 많이 됐고요, 두 번째는 자주적인 태도입니다. 기회를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태도를 키우고 도움이 필요할 땐 속으로 앓기보다 주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길 바라요. 그러기 위해선 자신만의 커뮤니티와 네트워크를 쌓는 것이 중요하죠. 마지막은, 저처럼 타지에서 온 대학 친구들이에요. 비슷한 처지에 있기 때문에 힘든 점을 공유하고, 유용한 정보는 교환하며 함께 적응해나갔죠.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인연들은 지금까지도 서로에게 든든한 파트너가 돼주고 있어요.
지금 직면한 가장 큰 과제미국 시장에선 뷰티 브랜드의 경쟁이 정말 치열해요. 그 틈에서 라네즈만의 개성을 잘 살린 바이럴 콘텐츠를 제작하고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인플루언서 컬래버레이션, 앰배서더 프로그램, 팝업 스토어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죠. 각각의 홍보 활동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뤘기 때문에 라네즈가 미국 뷰티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일하며 가장 성취감을 느낀 순간 어렸을 때 어머니와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물을 바라보며 “언젠가 저런 좋은 회사에서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대화했던 게 생각나요. 지금 그 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뿌듯하고요, 올해 3월 라네즈 US 인스타그램 계정이 100만 팔로어를 돌파했을 때 라네즈의 미국 내 인지도가 정말 높아졌다는 것을 실감했죠.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우리 팀에게 감사했어요. 홍보업계는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크지 않으면 일하기가 쉽지 않은데 저를 포함한 저희 팀원들 모두 라네즈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한국을 떠나는 여성에게 하고싶은 조언 후회 없는 삶을 사세요!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을 찾았다는 것만으로 당신은 다른 사람보다 한 발 앞서 나가고 있는 겁니다.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는 스스로를 더욱 믿어주세요. 눈앞에 보이는 손실이 클지라도 결국엔 얻는 게 더 많을 거예요.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것어릴 때는 잘 몰랐던 가족의 소중함. 뉴욕에서 저만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죠.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함께하는 시간을 보물처럼 여기고 있어요. 삶의 신념 ‘직감은 내면의 나침반이다!’ 저는 제 직감을 믿어요. 스스로를 굳게 믿는다면 못 해낼 건 없을 거예요.
VOLVO CARS I 송미숙
한국을 떠난 이유 뉴욕에 거주할 때 스웨덴 사람인 현재 남편을 만났어요. 결혼을 준비하며 한국과 스웨덴 중 어디에서 살지 이야기를 나누다 아이를 낳고 커리어를 병행하기 좋은 환경인 스웨덴을 선택했죠. 지금 돌이켜봐도 그때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스웨덴에 정착할 때 가장 도움이 된 것 3가지 적응력, 영어, 한 우물만 판 뚝심. 해외로 이사를 많이 다녀서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훈련이 돼 있었고요, 태어날 때부터 영어권에 살았기 때문에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이 아주 큰 도움이 됐어요. 마지막으로, 대학 때부터 착실하게 쌓아온 디자인 이력과 커리어예요. 디자인 일을 하며 힘들 때도 많았지만 한 우물만 팠기 때문에 어떤 나라에 던져져도 직장을 찾는 데 어려움이 없었죠.
자라온 문화적 배경 어렸을 때부터 2~3년 주기로 해외 곳곳으로 이사를 다녔어요. 어릴 때는 전학을 많이 다니는 것이 참 힘들었는데 나중엔 익숙해져서 새로운 상황이나 사람을 맞닥뜨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죠. 지금처럼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데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생각해요.
출근 루틴 오전 7시에 잠에서 깨 15분 동안 요가를 합니다. 전철이 없는 예테보리에선 주로 트램을 타고 출근하는데, 볼보 본사로 향하는 직원의 대부분이 입사 때 동일하게 받은 백팩을 메고 있어요. 제 업무상 미팅이 많아 오후 4시까지는 미팅에 참여하고 5시 반쯤 퇴근을 합니다. 한국에선 ‘칼퇴’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사실 늦는 편이에요. 대부분의 제 동료들은 4시 반쯤 퇴근하거든요. 업무 시간이 짧은 편이지만 업무 집중도는 굉장히 높죠. 집에 도착하면 저녁을 먹습니다. 주중엔 남편이, 주말엔 제가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죠. 식사 후에는 책을 읽거나 팟캐스트를 들으며 영감을 충전합니다.
일하며 가장 성취감을 느낀 순간 우선 적지 않은 나이의 동양인 여성이 88:1의 경쟁률을 뚫고 볼보 본사에 입사한 것이 제가 이룬 가장 큰 성취였고요,(웃음) 지난 5월 볼보 XC90이 출시됐을 때 광고를 찍으러 노르웨이에 갔어요. 촬영장에서 총감독부터 촬영 감독, 배우, 스타일리스트, 헤어·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 수많은 북유럽 국적의 스태프가 저의 디렉션으로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갈 때 정말 큰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것 가족의 중요성. 주위 사람들이 자기 부모나 형제를 쉽게 만나는 것을 보며 늘 부러웠어요. 스웨덴이 한국과 가까우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하고요. 삶의 신념 가진 것에 만족하고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삶을 사는 사람은 없어요. 그렇기에 실패하더라도 자신을 너무 혹독하게 몰아세우지 않으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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