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이런 적 없었다"…나주 농가 울린 '흑성병'의 습격

황희규 2024. 9. 1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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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전남 나주시 봉황면 한 배 과수원에서 농민이 흑성병 치료가 된 배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 농민은 재배면적(1만5000평) 중 30~40%가 흑성병이 발생했다고 호소했다. 황희규 기자

“잦은 비와 폭염 때문인지 올해 검은 흑성병이 과수원 곳곳을 덮쳐 배나무만 쳐다봐도 가슴이 타들어 갑니다.”

추석 연휴를 닷새 앞둔 지난 9일 오후 전남 나주시 봉황면 한 배 과수원. 30여 년째 배 농사를 지어온 김모(56)씨가 수확한 배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해 동안 정성껏 가꾼 배 과수원 곳곳에 병해충인 흑성병(검은별무늬병)이 창궐해 큰 피해를 봤기 때문이다. 이날 김씨 앞에 놓인 배 중 상당수에서도 검은색 별 모양의 흑성병 생채기가 생긴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30년 동안 이랬던 적 없어”


지난 9일 오후 전남 나주시 봉황면 한 배 과수원에서 농민이 나무에 열린 배를 수확하고 있다. 이 농민은 재배면적(1만5000평) 중 30~40%가 흑성병이 발생했다고 호소했다. 황희규 기자
추석 대목을 앞두고 전국 배 최대산지인 나주 지역에 흑성병이 퍼지면서 농가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10일 나주시에 따르면 올해 나주 전체 배 재배면적(약 1700㏊)의 40% 수준인 680㏊에서 흑성병 피해가 발생했다. 나주는 전국 배 재배면적의 20%를 차지한다.

김씨의 과수원은 나주에서도 흑성병 피해가 큰 곳이라고 한다. 그의 과수원 5㏊(약 1만5000평) 중 30~40%가 흑성병에 걸려 판매를 하기 힘든 상태다. 김씨는 “흑성병은 사실상 매년 발생하곤 했지만, 지난 30년간 올해같이 심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흑성병은 곰팡이 균으로 어린잎이나 줄기·과실에 그을음 병반이 생기는 과수병이다. 4월부터 발생하기 시작해 5~7월에 최성기를 이룬다. 발생 원인은 잦은 강우와 높은 습도로 지목되지만, 정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나주시 관계자는 “흑성병은 약제 살포가 제때 이뤄지지 않은 농가나 통풍이 잘되지 않는 지형에서 주로 발생한다”고 말했다.


치료제 일일이 발라도…도매가 30%↓


지난 9일 오후 전남 나주시 봉황면 한 배 과수원에서 농민이 흑성병 치료가 된 배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 농민은 재배면적(1만5000평) 중 30~40%가 흑성병이 발생했다고 호소했다. 황희규 기자
배 농가는 올해 잦은 비 때문에 방제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도 흑성병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보고 있다. 흑성병을 막기 위해선 비가 내리기 전 식물보호제를 살포해야 하지만 비가 자주 내리는 바람에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예년처럼 방제했는데도 올해는 약품을 뿌리면 비가 와 씻겨지고, 약을 또 뿌려도 계속해서 비가 와 손쓸 재간이 없었다”고 했다.

흑성병에 걸린 배는 약품을 바르면 감염 상태가 호전되기도 하지만 상품성은 떨어진다. 김씨도 지난 7월까지 흑성병에 걸린 배를 일일이 확인해 치료제를 바르기도 했지만, 꼭지 부분에는 검은 얼룩 흔적이 남았다. 김씨는 “일반 최상품 배는 1㎏당 5000원에 출하되는데, 약품을 발라 상태가 나아진 배는 30%가량 가격이 내려간다”며 “나머지 배는 배즙 등 가공식품으로 판매되는데 1㎏당 500~600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나주 배 680㏊ 피해…보험 보상도 안 돼


지난 6월 전남 나주시 왕곡면 한 배 과수원에서 농민이 흑성병이 발생한 배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배 농가는 “흑성병으로 인한 피해를 농작물재해보험으로 보상받도록 해달라”고 촉구했다. 농작물재해보험 약관에 ‘과실과 나무에 대해 자연재해로 인한 손해를 보장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흑성병은 매년 발생하는 병해충으로 분류돼 ‘자연재해’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남도 관계자는 “이상기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흑성병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지난 6월 농림축산식품부에 ‘병해충 보장 범위에 흑성병도 포함해 달라’고 건의했다”라고 말했다.

나주=황희규 기자 hwang.heeg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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